지난달 20일 시작된 2022 동남아시아축구연맹(AFF) 챔피언십(미쓰비시컵)은 베트남 축구 영웅 박항서 감독의 ‘라스트 댄스’ 무대다. 2017년 베트남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동남아시아에 한국축구 열풍을 불러온 그가 이번 대회를 마치고 베트남과 동행을 마무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박 감독이 베트남 대표팀과 마지막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9부 능선까지 올라섰다. 베트남이 9일 베트남 하노이 미딘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준결승 2차전에서 응우옌 띠엔린의 멀티골 활약을 앞세워 인도네시아를 2-0으로 꺾은 덕분이다. 1차전에서 0-0으로 비긴 베트남은 이로써 1, 2차전 합계 2-0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박 감독은 ‘동남아 월드컵’이라 불리며 격년제로 열리는 이 대회에서 2018년 이미 우승컵을 들어 올린 바 있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1년 순연돼 지난해 열렸던 2020 AFF 챔피언십에서는 준결승에서 태국에 패하며 우승에 실패했다. 이번에는 지난 대회 준우승팀이자 같은 한국 출신 지도자인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를 꺾고 또 한 번 우승 도전 기회를 만들어냈다.
베트남은 경기 시작 3분 만에 선제골을 넣었다. 후방에서 넘어온 장거리 로빙 패스를 경합 끝에 페널티박스에서 받아낸 띠엔린이 침착한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이후 한 골 리드를 기반으로 주도권을 잡은 뒤 후반 시작과 함께 공세를 펼쳐 2분 만에 골을 뽑아냈다. 띠엔린이 왼쪽 측면에서 올라온 코너킥의 방향을 머리로 돌려놓으며 멀티골을 완성했다.
이후 탄탄한 수비력으로 상대를 틀어막아 인도네시아에 유효슈팅을 하나도 내주지 않은 채 경기를 끝냈다. 이로써 베트남은 준결승을 포함해 이번 대회 6경기 모두를 무실점으로 끝마쳤다.
경기 뒤 박 감독은 “베트남은 지난 26년 동안 이 대회에서 인도네시아를 이기지 못했다”며 “미래의 후배들을 위해 이 같은 기록은 깨뜨려야 한다고 팀에 이야기했다. 오늘 우리 팀이 보여준 노력이 정말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베트남에서의 5년을 돌아보면서는 “성숙해진 선수들이 많다”면서 “베트남 선수들은 다른 동남아시아 팀들보다 한 단계 위에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다만, 자신을 향한 칭찬에는 “나는 평범한 감독”이라며 “우승을 위해 베트남 축구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1년 전 대회에서 인도네시아의 준우승을 이끈 신태용 감독은 이번에는 박항서 감독에게 패해 결승행에 실패했다. 두 감독은 이번 준결승전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여 관심을 모았다. 두 사령탑이 악수를 거부했다는 논란이 일었고, 신 감독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주심과 선수의 ‘페어플레이’를 요구하는 글에 박 감독이 불편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경기가 종료된 뒤 신 감독이 “베트남 팀이 오늘 좋은 경기를 했다”고 인정하며 승부는 깨끗하게 마무리됐다. 신 감독은 “베트남 팀은 미딘국립경기장이 익숙하지만, 우리에게는 낯선 곳이었다”고 패인을 설명하며 “인도네시아 팬들을 실망하게 해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