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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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오류에도 뒤흔들리는 '초연결 사회'… 우리나라도 예외 아니다

약한 고리가 끊어지면 전체 시스템이 붕괴하는 초연결사회 최대 취약점은 국내에서도 수차례 문제가 됐다. 지난해 카카오 데이터센터에 불이 나면서 국민 대다수가 이용하는 카카오가 ‘먹통’이 되자 시민 일상이 멈췄고, 2018년 KT 아현지사 화재 때도 유·무선통신 장애로 소상공인 등 뭇 시민이 피해를 보았다. 이 같은 사고는 일어날 확률이 낮지만 발생한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파급력을 지니는 만큼 사고 예방·방지 및 사태 발생 시 복구 대책과 사후 피해 보상 등을 놓고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0월 15일 경기 성남 소재 판교 SK C&C 데이터센터 화재 현장. 발화 지점인 지하 3층 전기실의 배터리가 불에 타 있다. 이기인 경기도의원 페이스북 캡처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초연결사회의 핵심은 ‘선호적 연결’이다. 선호적 연결은 하나의 허브에 연결이 집중될수록 연결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네이버나 구글 등 특정 포털에 이용자가 몰리고, 그러면서 해당 포털에 쌓이는 정보가 더 많아지면서 원하는 정보를 찾을 가능성이 높은 게 대표적 예시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선 인터넷과 전력망, 항공망, 고속철도 등도 이같은 선호적 연결로 서로 이어져 있다. 그래서 이용자 편의면에선 효율적으로 빠르게 연결할 수 있지만, 연결을 총괄하는 허브가 무너지면 시스템 전체가 다운된다는 게 치명적 단점이다.

 

지난해 10월 15일 경기 성남 SK C&C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한 화재가 대표적이다. 카카오 주요 서버가 당시 화재가 발생한 데이터센터에 몰려있었고 비상시에 대비한 이중화 작업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카카오톡에 연결된 부수 서비스가 대거 마비됐다. 월간 사용자가 4750만 명에 달해 국민 메신저라 불렸던 카카오톡 서비스가 가장 먼저 끊겼고, 카카오택시와 대리운전, 카카오페이, 다음 메일 등 곳곳에서 장애가 발생했다. 장애가 완전히 정상화하기까지는 127시간 33분이 걸렸다.

 

지난해 10월 15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SK판교캠퍼스에서 화재가 발생해 관계자들이 복구작업을 위해 현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당시 화재는 카카오 서비스를 이용해 영업하는 택시기사들과 자영업자 생계를 위협했다. 택시 호출 시장에서 카카오T의 점유율이 압도적이었기에 택시기사들이 강제 휴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자영업자들은 카카오톡과 연동돼 들어온 주문에 응대하지 못했다.

 

2018년 11월 24일 KT 서울 아현지사 건물 지하 통신구 연결통로에서 발생한 화재도 초연결사회의 민낯을 드러냈다. 이날 화재로 서울 강북지역과 경기 고양 일부, 북서부 수도권 지역에서 유·무선 통신 장애가 발생했다. 자영업자들은 결제를 못해 영업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었고, 서울 마포구 용강동에서는 70대 노인 A씨가 빠른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기도 했다. 당시 A씨는 심장에 답답함을 느껴 119 신고를 하려 했으나 휴대폰이 먹통이라 하지 못했다. 뒤늦게 행인의 도움으로 119에 신고를 했지만 통신 불능으로 119 대원들이 늦게 도착했다.

 

지난 2018년 11월 25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아현지사에서 KT 관계자들이 전날 발생한 화재 복구에 매진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021년 10월에는 어이없을 정도로 단순한 네트워크 경로 설정 오류로 KT 전국 유·무선망에 1시간 29분간 장애가 발생했다. 지난해 8월엔 백신 프로그램 알약이 업데이트된 후 정상 프로그램을 랜섬웨어로 오인하면서 알약이 설치된 수많은 컴퓨터와 노트북이 한동안 먹통이 됐다.

 

전문가들은 초연결사회에 이 같은 일이 발생하는 걸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다고 본다. 사고 가능성을 10분의 1로 줄이는 조치를 취한다고 가정했을 때 해당 조치를 위해 드는 비용은 10배가 아닌 수천배 혹은 수만배가 될 수 있어서다. 결국 사회가 경제성과 안전성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네트워크분석 등을 연구한 이재열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미국 항공정보 시스템 오류 사태 등은 일어날 확률이 0%에 가깝지만 한 번 발생했을 때 예상되는 피해가 엄청나게 파국적”이라며 “피하기 어려운 재난”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사고를 줄이기 위한 여러 노력이 가능하지만, 이런 노력을 할 땐 대개 비용이 아주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며 “우리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제언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