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비리 핵심 인물인 김만배씨(화천대유 대주주)가 대법관에게 로비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관련된 판결 두 건을 뒤집었다는 진술이 나와 파장이 크다. 두 건은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 무죄와 이 대표와 관련 있는 성남 제1공단 공원화 무효 소송 판결이다. 구속 만기로 출소한 남욱(천하동인 4호 소유주) 변호사가 2021년 10월 검찰에서 한 진술이다. ‘재판 거래’ 의혹이 사실이라면 사법부를 뒤흔드는 국기문란이 아닐 수 없다.
이 대표는 2018년 경기지사 선거 토론에서 “친형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발언을 해 허위사실 공표로 항소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이 이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지난 대선 출마가 가능했다. 당시 대법관 중 최선임이던 권순일 대법관은 유무죄 견해가 5대 5인 상황에서 무죄 의견을 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김씨가 ‘동향 선배인 권 대법관에게 부탁해 판결이 뒤집히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는 남 변호사의 진술과 부합한다. “김씨가 2019년부터 권 대법관에게 50억원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고도 했다.
‘재판 거래’ 의혹은 합리적 의심 범주 안에 있다. 김씨는 이 사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 다음날과 무죄선고 다음날 등 8차례나 권 대법관 사무실을 방문했다. 대법관이 이토록 자주 김씨를 만난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다. 더 결정적인 건 권 전 대법관이 퇴임 두 달 만에 화천대유 고문을 맡아 매달 1500만원씩 모두 1억5000만원을 받은 사실이다. 김씨와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면 대법관 출신이 들어갈 만한 회사가 아니다. 이 시장이 베푼 특혜로 수천억원의 이익을 챙긴 김씨가 권 전 대법관에게 로비했고, 그 결과 무죄가 나왔다고 의심할 만하지 않나. ‘사후수뢰’ 냄새가 풀풀 난다.
이 대표의 무죄 판결에 대해 당시 법조계에선 “매우 이례적인 판결”이란 말이 무성했다. “적극적 거짓말이 아니면 허위사실이 아니다”는 법리가 궤변에 가까워서다. 신이 아닌 이상 적극적 거짓말과 소극적 거짓말을 어떻게 가릴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자의적 법 해석이란 비판이 많았다.
성남 1공단 사건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 때 대장동 개발 연계 차원에서 공단 부지 공원화를 추진하자 앞서 개발 허가를 받았던 시행사가 제기한 행정소송이다. 대법원은 2016년 시행사 손을 들어준 항소심 판결을 뒤집으면서 이례적으로 직접 최종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에 대해서도 남 변호사는 “당시 김씨가 대법관 누군가에게 부탁했다고 하는데 이름이 기억 안 난다”고 진술했다.
남 변호사의 진술은 문재인정권 시절 검찰에서 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2021년 말 두 차례 권 전 대법관을 비공개로 소환 조사한 게 전부다. 법원 역시 물증 확보를 위해 검찰이 청구한 대법원 압수수색 영장을 두 번이나 기각했다. 대법원은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 권 전 대법관과 김씨 사이의 문제라고 선을 긋고 있다. 법관대표회의도 조용하다. 가재는 게 편인가. 국민 시각으로 보면 납득하기 어렵다.
권 전 대법관을 비롯해 박영수 전 특별검사 등 법조계 거물들이 대장동 업자들로부터 50억원씩 받았다는 ‘50억클럽’ 의혹 수사도 감감무소식이다. 이들 중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만 지난해 기소됐을 뿐이다. 자신의 딸이 화천대유에 근무하면서 대장동 아파트까지 특혜분양받은 박 전 특검에 대한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최근에는 김씨가 전·현직 판사들의 술값을 대납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대법원은 사법정의의 수호자이자 인권옹호의 최후 보루이다. 그런 대법원에서 재판 거래가 있었다면 국가와 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에도 검찰 수사가 진척되지 않는 건 유감이다. 이번에도 적당히 뭉개려 했다간 거센 역풍을 맞을 것이다. 검찰은 수사 재개를 통해 진실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국민이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