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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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외 문화재 관리, ‘환수’ ‘현지 활용’ 두 토끼 모두 잡아야 [심층기획]

국외소재 문화재 보존사업 현주소

해외 소재국 예산·관심 부족으로 방치
조기 발굴해 훼손 방지·보존복원 거쳐
양측 협업 통해 문화재 지속 관리 관건
‘공동 유산’ 인식… 보존·활용 노력 필요

국민 대다수 일제 수탈의 역사 떠올려
무조건 국내 환수 주장 등 감정적 반응
외교통상 등 우호적 절차 밟은 문화재
전시회 등 열어 문화첨병 역할 바람직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12폭 병풍 ‘해학반도도’는 높이 2m10㎝, 가로 7m20㎝(장황 포함 225×735㎝) 규모로 조선 병풍 중 가장 크다. 금박을 사용하고 학을 소재로 삼아 중국이나 일본 작품으로 분류됐었으나, 2017년 한·중·일 병풍회화 연구 일환으로 미술관을 방문한 이도 미사토 박사와 김수진 박사에 의해 한국 작품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림의 바탕으로 종이 대신 비단을 쓰고 십장생이 주제인 데다 대형, 12폭 형식인 점을 이유로 들었다.

한국 왕실과 관련된 20세기 초 작품일 가능성을 확신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곧장 전문가들과 논의를 거친 뒤 2019년 봄 작품의 보존처리 지원에 나섰다. 미국에는 전문가가 없는 탓에 그해 6월 국내로 보내진 이 병풍은 앞서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해학반도도’를 보존처리한 경험을 가진 고창문화재보존(대표 송정주)에 의해 새 삶을 얻었다.

해학반도도. 조선 후기 유행한 바다, 학, 복숭아 등을 주제로 그린 그림으로 소나무, 바위, 해 등 십장생의 도상도 함께 묘사됐다. 궁중의 각종 행사에 펼쳐져서 왕실의 번영과 무병장수를 기리는 역할을 했다. 미국 데이턴미술관 소장.

‘국외소재문화재 보존복원 및 활용 지원 사업’은 해외 소재국의 예산이나 관심 부족 탓에 방치된 우리 문화재를 조기 발굴해 훼손을 방지하고 보존복원을 거쳐 현지 활용 기반을 구축하자는 취지의 사업이다. 국외 문화재에 대한 우리의 무한책임으로부터 출발해 우리나라와 국외 소장 기관 간의 협업을 통한 나라 밖 문화재의 지속적인 관리(보호와 활용)라는 입장에서 채택한 정책이다.

2014∼2022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나라 밖 우리 문화재 보존처리 지원 실적을 찾아보면, 미주와 유럽, 아시아 등 8개국 20개 기관 소장품 105점에 달한다. 공예품류 45점, 복식류(갑주 등 포함) 35점, 회화류 25점이다. 한 해 평균 10건 이상의 실적을 올린 셈이다. 연간 보존처리 지원 예산이 2억7000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실로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 직전 3년간 69점(65.7%)의 보존처리를 지원한 반면 지난 3년간 실적은 6점(5.7%)에 불과한데,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외국 박물관들이 대거 폐쇄됐기 때문이다.

보존처리된 후 국내에서 공개된 경우는 총 4회로, 5개국 9개 기관의 소장품 23점이 전시됐다. 2020년 12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선보인 ‘해학반도도’는 우리 미술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금병풍’을 국내에 널리 소개했다. 조선왕조 금병풍 제작의 전통과 역사를 조명하는 계기도 됐다. 희소가치가 큰 나라 밖 문화재의 ‘교류’가 국내 학술연구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잘 보여준 사례다.

22만9655점. 2023년 1월1일 기준 27개국에 나가 있는 우리 문화재 현황이다.

청자상감포도동자무늬표주박모양주자. 고려 13세기. 손잡이와 주구, 머리 부분과 뚜껑을 복원했다. 손잡이는 띠형이었지만 동체에 일부 세 줄 꼬임 형태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세 줄 꼬임형 손잡이를 붙였다. 벨기에 왕립예술역사박물관 소장.

국외문화재 숫자를 접했을 때 대다수 국민은 ‘환수’부터 떠올리며 감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수탈의 역사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등 수많은 외침을 겪었던 시대 배경 탓에 나라 밖 우리 문화재를 약탈당한 문화재로 인식하고 무조건 국내로 되찾아와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환수 대상 문화재는 도난이나 약탈 등 불법 반출된 문화재에 한정된다. 정당한 거래나 선물, 외교통상 등 우호적인 경로로 전해진 문화재는 환수 대상이 아니다.

빼앗긴 것은 반드시 찾아와야 하겠지만, 우호적 절차를 밟아 나간 문화재는 현지에서 전시회 등으로 활용해 우리 역사와 문화를 올바르게 알리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금 있는 그곳에서 문화 첨병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외국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중국관, 일본관에 비해 수량, 질적 측면 모두 현저히 뒤떨어지는 한국관의 빈약한 처지를 목격할 때면 위축감을 느끼기도 한다. 현지 관리와 지원이 절실한 이유다. 되찾아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더 멀리 보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설정할 때다.

사실 소장하고 있는 한국 문화재의 수량이 적어 현지 단일 기관만으로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어렵다. 상설전 외 특별전이나 관련 교육 프로그램은 시도조차 쉽지 않다. 한국어와 소재국 언어에 능통한 큐레이터는 한국 관련 프로젝트 기획과 진행에 필수지만 고용 비용과 현지 인력 조달이 문제다.

국내 해외 유학생 중 문화재 관련 학생 육성이 한 방법일 듯싶다. 한국 고고학이나 문화재에 대한 열정으로 유학을 온 만큼 귀국 후 관련 업종에 종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장학금 등 혜택을 주고 해외 한국 문화재 전문 인력으로 길러 내, 국내 연구자의 해외 파견과 함께 투트랙으로 고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표작도. 조선 19세기. 표범의 주둥이와 눈을 둘러싼 부분을 밝은 빨간색으로 채색하고 눈의 흰자위는 금색 안료로 강조해, 바짝 긴장한 듯 사나운 느낌을 표범에게 부여하고 있다. 스웨덴 동아시아박물관 소장.

디지털 영상 콘텐츠의 제작과 활용은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다. 우리의 시각 기술과 영상미 구현 수준은 이미 세계적이다.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원활용부장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은 물론 유물의 상태를 뛰어넘어 한국 문화재를 널리 향유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면서 “전 세계적 한류 열풍으로 한국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늘고 있는 만큼, 영상 콘텐츠는 나라 밖 우리 문화재가 처한 한계를 일부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한다.

때마침 한류와 관련지은 특별전이 해외 박물관에서 종종 열리는 추세다. 영국 런던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은 ‘한류! 코리안 웨이브’라는 주제의 특별전(2022년 9월∼2023년 6월)을 열고 있다. 한류의 진행 과정, 팬덤 현상, 영화, 음악, 미용, 패션 등이 예술산업에 끼친 영향을 조망한다. 앞서 네덜란드 북부 레이우아르던에 있는 프린세스호프국립도자박물관은 지난해 7월 개최한 ‘한국 특별전’에서 ‘한류’라고 쓴 대형 한글을 내걸기도 했다.

‘국외사적지’란 외국에 소재한 건물 또는 장소 가운데 우리나라와 역사적 문화적으로 직접 관련이 있는 곳을 말한다. 비록 해외에 있지만 ‘한반도 너머 또 하나의 대한민국’이며, 우리가 함께 알고, 찾고, 가꾸어야 할 역사의 현장이다.

국외사적지의 보존과 활용 문제는 동산문화재에 비해 훨씬 어렵고 복잡하다. 사유재산이 많아 시간과 비용이 더 들고 조사와 연구를 더디게 만든다. 현지 법과 제도가 뒷받침하지 못하면 보존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한민국과 소재국이 ‘공동의 유산’으로 인식하고 함께 보호해야 한다. 정부 차원의 외교와 현지 동포의 참여가 중요하다. 특히 현지 동포들이 나서지 않으면 실효성과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교육 콘텐츠를 보급해 인식을 개선하고 현지 한국문화원과 동포 단체가 함께 진행하는 현장 프로그램 운영이 시급해 보인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