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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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을 창업 공간으로… 불가능을 희망으로 바꾼 청년들 [창간34-지방시대, 위기가 기회다]

소멸 마을 살리는 ‘젊은 피’

5년 전 정부 주도로 시작된 ‘청년마을’
일정기간 지역체험·창업 교육 등 지원
특산품·관광 자원 등 이용해 이익 창출
어느덧 전국 27개 뿌리내려 지역 활기

기술기반 스타트업도 가파르게 성장
최근 5년간 대전에만 600여개 생겨
수도권보다 비용 적게 들어 매력적
“생태계 유지 위해 지자체 지원 필수”
#1. 전남 목포시의 옛 도심 유달산 입구 중턱에 위치한 ‘반짝반짝 1번지’. 이곳은 지역 경계 없이 누구든 마음껏 상상하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노마드 코워킹스페이스(작업 공간)다. 3층 구조의 이 건물은 국내 최초 청년마을 기업인 홍동우(37) ‘괜찮아마을’ 대표와 박명호(36) 공장공장 대표가 비어 있던 경양식 레스토랑 건물을 고쳐서 만들었다. 현재 이곳에선 전국 각지에서 ‘디지털노마드’ 등을 꿈꾸는 청년들이 찾아와 희망의 씨앗을 싹 틔우고 있다.

#2. 대전에 본사를 둔 자율주행 로봇 스타트업 ‘트위니’는 물류로봇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대덕연구개발특구와 우수한 인력이 대전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 부산의 핀테크 스타트업 ‘센트비’는 간편한 송금 절차를 내세워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친환경 모빌리티 서비스 플랫폼을 운영하는 ‘네이앤컴퍼니’는 제주가 전략거점이다.


청년이 소멸하는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현장이다. 요즘 지역에도 청년이 모여들고 있다. 일자리, 시장이 몰려 있는 수도권을 떠나 지역 곳곳에 청년들이 희망의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우고 있다. 청년들이 지역에 모여 자생의 기반을 닦으면서 지역을 살리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 청년들은 이젠 지리적 여건 등 물리적 요소보다 지역의 특색을 담은 장소에서 스타트업 성공의 기틀을 다지고 있다. 지역에서 청년 유니콘 기업이 생겨나는 등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지각 변동이 일고 있다.

괜찮아마을 1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30명의 청년이 스태프들과 단체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괜찮아마을 제공

◆전국 청년마을 27곳… 상생하며 변화 주도

전남 목포에서 최초로 시작된 ‘괜찮아마을’, 충남 서천군의 ‘삶기술학교’, 경북 문경시 ‘달빛탐사대’ 등 지방 주요 도시에서 청년마을 사업을 대표하는 이들 사업이 시행 5년 만에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며 안착하고 있다. 수도권을 떠나 지방으로 내려온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복잡하지 않은 지역에 살면서 ‘희망’ 내지는 ‘작은 성공’을 일궈가고 있다.

청년마을 사업은 청년들에게 일정 기간 지역에 머물 기회를 제공해 지역 체험, 창업 교육 등을 통해 청년들이 지역에 뿌리내리도록 지원하는 정책이다.

괜찮아마을은 5년 전 행정안전부가 실시한 ‘시민주도 공간 활성화 용역’ 사업에 참여, 지방의 유휴 공간을 확보해 시민 주도로 재생하거나 활성화하기 위한 사업에 선정되면서 시작됐다. 30명의 청년들이 6주간 지방에서 사는 프로그램을 2회 운영하는 것인데 서울에서 온 취준생, 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온 사람, 대학생 등 주로 30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주로 자신의 삶에 새로운 모색을 하기 위해 참가한 청년들이었다.

 

여행프로그램은 쉼에서 시작해 청년들끼리 서로 꿈을 이야기하고 상상을 나누며 그다음은 작은 성공을 이루게 하는 실천 프로그램으로 짜여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얻는 결과물은 장편 영화 1편, 매거진 섬 등 책 3권, 마을 축제 개최 등으로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현재 괜찮아마을(여행)은 후속사업으로 뚝딱뚝딱(메이커스페이스), 공장공장(기획사), F&B 채식 식당, 숙박업 등을 비롯해 기존 어묵 전문 오선당까지 인수해 투자를 늘려가고 있다.

충남 서천의 ‘삶기술학교’는 10년 넘게 방치된 서광장여관을 호텔로 재탄생해 2020년 말 문을 열었다. 이곳은 한때 한산모시를 거래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상인들로 북적였던 여관이다. 하지만 지금은 청년들이 버려진 빈집을 고쳐 살면서 모시와 소곡주를 비롯한 지역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실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청주의 고향 전북 군산에서 ‘술익는 마을’을 만들고 있는 청년들은 군산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법을 개발하고 술 빚는 주말 프로그램을 운영해 청주를 활용한 새로운 관광 코스를 개발·운영함으로써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경남 함양군의 ‘고마워, 할매’는 할머니와 청년, 두 세대가 함께 소통하는 마을을 꿈꾸며 요리법과 더불어 인생 수업도 전수받아 식당 개업을 준비 중이다. 지방시대를 이끌고 있는 이 같은 청년마을은 2018년부터 3년 동안 매년 1곳씩 시범 조성된 뒤 2021년부터 12곳으로 확대됐으며 지난해에도 12곳이 조성돼 현재 지방 27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행안부는 올해도 인구감소지역을 우대하는 조건으로 공모를 통해 12개 청년마을 만들기 지역을 선정해 최종 선정된 단체에겐 3년간 최대 6억원의 사업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올해 공모는 청년마을의 저변 확대와 실효적 청년 지원을 위해 청년 생활인구 증가와 지역 대학 활용, 청년 주거 확충 등에 중점을 두고 지원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수도권 청년이 보다 쉽게 지역으로 향할 수 있도록 ‘관계안내소’를 운영하고 청년들이 지역에서 직접 삶을 탐구하는 현장 체험형 ‘지역대학’을 도입하기로 했다. 청년마을 공유주거 지원사업도 새롭게 시작해 청년마을을 통해 유입된 청년들의 정착을 도울 계획이다.

최훈 행안부 지방자치균형발전실장은 “청년마을을 통해 지역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청년들이 점차 늘고 있고 지역에 대한 인식도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천영석 트위니 대표와 직원이 대상추종로봇 ‘따르고’를 점검하고 있다. 강은선 기자

◆대전·제주 스타트업 새 성지로

지난달 5일 대전 유성구에 있는 자율주행로봇 스타트업 트위니 본사. 테스트존에서 대상 추종로봇 ‘따르고’를 작동했다. 가로 975㎜, 세로 690㎜, 높이 1288㎜의 사각 로봇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기자를 따라 유연하게 쫓아왔다. 장애물을 식별해 부딪히지 않도록 이동하는데, 움직임은 가뿐했다. 한편에서는 직원들이 자율주행 오더피킹 로봇의 장애물 회피 주행 능력과 센서 감지 범위를 테스트 했다.

트위니는 카이스트 출신 천홍석(41) 대표와 쌍둥이 동생 천영석 대표가 2015년 대전에서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자율주행 로봇 ‘나르고’와 추적로봇 ‘따르고’, 대상추종과 자율주행 기술을 한데 담은 물류운송 로봇 ‘더하고’를 상용화해 2021년 매출만 33억원을 올렸다. 3명으로 시작한 트위니는 지난해 직원 164명으로 가파르게 성장했다.

천영석 대표는 “대전에 본사를 둔 이유는 좋은 인력이 많다는 것”이라며 “우리가 연구하는 분야가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데, 카이스트, 충남대 등 고급 인력이 있는 대전에 있었기 때문에 인재를 유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천 대표는 이어 “수도권에 비해 인재와 인프라가 부족하지 않은데, 비용은 수도권보다 적게 들어간다는 장점도 있다”며 “서로 교류가 더 활발하다면 미국 실리콘밸리 못지않은 환경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산에 본사를 둔 핀테크 스타트업 센트비는 2015년 부산에서 설립했다. 낮은 수수료, 빠른 송금 속도 등을 내세운 서비스로 경쟁력을 갖추며 이름을 알리고 있다.

K실리콘밸리 지도가 바뀌고 있다. 서울 강남과 경기 판교가 스타트업의 메카였다면 이젠 대전과 부산, 제주, 대구 등 지역을 거점으로 한 스타트업들이 성공을 향해 달리고 있다. 특히 대덕연구개발특구를 품은 대전과 제2의 도시로 불리는 부산이 스타트업의 새로운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대전은 비수도권 최대 스타트업 밸리이다. 최근 5년간 대전에서 일궈진 기술기반 스타트업은 600여곳에 이른다. 대전은 카이스트, 충남대 등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 각 분야 연구개발기관이 집적돼 있어 기술과 사람 확보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부동산 조각 플랫폼 ‘소유’를 운영하는 핀테크 기업 루센트블록 본사도 대전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기술창업 프로그램 지원으로 2018년 설립된 루센트블록은 지난해 12월 대전 엑스포타워에 입주했다.

투자 유치도 수도권 못지않다. 트위니는 2017년 시드투자 3억원, 2019년 시리즈A 투자 40억원에 이어 2021년 시리즈B 170억원을 투자 유치했다. 현재까지 누적투자금은 210억원 이상이다.

부산과 대구도 스타트업으로 지역 발전을 꾀하고 있다. 대구엔 2021년 11월 동대구 옆에 연면적 1만3954㎡ 규모의 창업센터 ‘대시’가 들어섰다. 이곳에만 40여개의 스타트업이 입주했다. 강원 춘천시엔 이재웅 다음 창업자가 세운 벤처캐피털 본사가 있다. 제주에도 스타트업이 몰리고 있다. 2019년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제주는 스마트시티 챌린지 대상 사업지로, 에너지·모빌리티 분야의 신기술을 규제 없이 서비스 실증할 수 있다.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지속 유지되기 위해선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필수 요건으로 제시된다. 김영태 카이스트 창업원장은 “지역에 스타트업 혁신 생태계가 구축되고 잘 운영되기 위해선 지자체나 중앙정부가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대기업 유치가 아닌, 지역에서 태생한 스타트업 생태계 구성원이 성장·발전할 수 있도록 플레이어의 공론의 장을 만들어주고, 장기적 플랜을 보여준다면 지역 곳곳에 유니콘·드래곤 기업이 생길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대전·목포=강은선·김선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