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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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치혐오 부추기는 ‘나경원 사태’ 조속히 매듭지으라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의 3·8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윤(친윤석열) 진영과 나경원 전 의원 간 갈등이 이전투구로 치닫고 있다. 나 전 의원이 어제 잠행에 들어간 가운데 친윤계는 인신공격에 가까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장(場)만 서면 얼굴 내미는 장돌뱅이인가”라고 직격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부부가 좋은 의미로 부창부수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출세 욕망으로 부창부수한다면 그건 참 곤란하다”고 썼다. 나 전 의원 남편인 김재호 부장판사의 ‘대법관설’을 겨냥한 것이다. 비주류 주자의 대표 출마를 저지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갈등을 표출하는 것은 국민은 물론 여당 지지층까지 등 돌리게 하는 작태다.

그제는 이례적으로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직접 나서 나 전 의원을 공격했다. 나 전 의원은 자신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대사 해임에 대해 “대통령 본의가 아니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자 김 실장은 입장문을 내고 “대통령의 정확한 진상 파악에 따른 결정”이라고 반박했다. 여당 초선 의원 50명은 성명서에서 “(나 전 의원이 대표) 출마 명분을 위해 대통령 뜻을 왜곡한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며칠 전에는 친윤 지도부에서 “윤 대통령을 공격하면 제재하겠다”는 민망한 소리까지 나왔다. 집권세력이 서로 당권을 쥐겠다고 이 난장을 벌이고 있으니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윤석열정부는 출범 직후 이준석 전 대표 징계 문제로 석 달 넘게 내홍을 겪으며 휘청거렸다. 가까스로 혼란을 수습하고 전열을 정비하나 싶었는데 전당대회가 시작되자마자 계파 싸움이 재연됐다. 지금 여당 내분을 보면 양쪽 모두 합리적 판단력을 잃어버린 듯하다. 대통령은 여당 경선에 엄정중립을 지키는 게 바람직하다.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거나 특정 후보를 경원시한다는 인식을 주면 반드시 부작용과 후유증이 생긴다.

나 전 의원이 두 가지 중책을 맡았음에도 당 행사를 돌며 출마와 정부직 모두 저울질한 것은 무책임한 처사가 분명하다. 그렇다고 대통령 뜻에 맞지 않는 후보면 누구든 밀어내려는 친윤의 행태도 정상이 아니다. 이미 정당 민주주의는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여당의 전당대회는 분열을 증폭하고 정치혐오를 부채질하는 장으로 변질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뽑힌 당 대표가 민심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국민의힘은 조속히 내분을 매듭짓고 집권당의 본분이 무엇인지 각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