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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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모의창의적글쓰기] 마키아벨리의 편지

‘독서의 역사’에 관한 글을 읽다가 마키아벨리의 편지 한 구절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 편지 구절에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쓰게 된 배경과 책읽기에 관한 열정이 담겨 있어 학자들의 관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서재에 들어간다네. 더러워진 평상복을 벗고, 왕후장상에나 어울릴 만한 관복으로 갈아입는다네. 그리고 고대인들이 노니는 궁정에 들어가 그들로부터 따뜻한 영접을 받는다네, 나는 그들과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물어보지. 그러면 그들도 친절히 대답을 해준다네. 그렇게 네 시간 동안 모든 고뇌도 잊고, 가난도 두렵지 않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느끼지 않는다네.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 전심전력으로 몰입하기 때문이겠지.”

편지의 구절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책읽기에 집중하는 그의 몰입감이다. 오래된 선인들의 책을 읽을 때 그는 의관을 정제하고 그들과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눈다. 마키아벨리가 묻고 이들이 답을 한다. 그는 이런 대화가 얼마나 귀중한지 대화를 나누는 시간에는 가난도, 두려움도, 죽음에 관한 공포도 잊는다고 말했다. 숲속 옹달샘을 산책하면서 단테나 오비디우스의 연애시를 읽었고, 집의 서재로 돌아와 키케로나 리비우스의 고전적인 철학서나 역사서를 읽었다. 읽는 책도 두 종류이며 읽는 방식도 달랐다. 특히 고전을 읽는 그의 방식은 이후 ‘군주론’과 같은 저작을 쓰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편지를 쓴 당시가 마키아벨리에게 가장 큰 불행과 고난의 시기였다는 사실이다. 소델리니 정권이 붕괴되면서 서기관의 자리에서 쫓겨났고, 쿠데타 음모로 감옥에 들어가 고문을 당했다. 그의 편지를 보면 “나를 향한 운명의 장난”, “운명의 신이 나를 괴롭히는 것”에 관한 분노가 행간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이런 삶의 불행과 달리 저술가로서의 명성은 커졌다. 마키아벨리의 전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의 말처럼 정치가인 마키아벨리는 사라지고 작가인 마키아벨리가 나타난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마키아벨리를 보면서 창작에는, 특히 독창적인 창작에는 약간의 불행이 불가결한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마키아벨리에게는 정치적 좌절과 실패가 독서를 가능하게 했고, 뛰어난 저작들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예부터 뛰어난 저작은 삶의 처절한 패배 속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괜한 말은 아닌 것 같다.


정희모 연세대 교수·국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