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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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시선] 국정원 대공 수사권 이양은 시기상조

달라진 간첩… 수사 기간만 최소 5년
국정원 대공 수사권 이양은 시기상조

간첩 수사는 최소 5년, 길면 강산이 변한다는 10년까지도 소요된다. 수사는 장기전이고 인내력을 시험하기 때문에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습니까?”라는 과거 유명 정치인의 발언이 진실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냉엄하다.

과거 냉전 시대에 간첩은 남파간첩이 대세였다. 수사도 이미 잠입한 남파간첩을 통해 남측 접촉자나 평양에서 파견할 간첩을 예상하여 일망타진하는 방식이었다. 2000년대 들어 북한의 대남 통일전선전술도 변신을 시도하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평양에서 훈련받은 직파간첩을 보내기보다는 남한의 친북 인사를 육성하는 공작이 효과적이었다. 평양 통전부는 남측의 반정부 및 좌경화 세력을 예의 주시하다가 제3국에서 포섭하여 무인기 조종하듯이 원격으로 컨트롤을 한다. 국내 자생 및 토착 간첩이 주류를 이루기 시작한 배경이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통상적으로 자생 및 토착 간첩은 3단계 과정을 거치며 반정부 투사로 변신한다. 1단계, 잘못된 국가관으로 남한 정부를 부정하고 북한의 주장에 동조한다. 2단계, 지하조직을 결성하고 북한 공작국의 지령에 따라 활동 방향 등을 정하면서 고정간첩으로 변신한다. 제3국에 가서 북한 공작원들에게 충성 맹세를 하고 향응과 공작금을 받으면서 투사가 된다. 북한 노동당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 김명성은 2016년 창원 총책을, 2017년엔 제주 총책을 각각 동남아에서 접촉하여 지하조직 건설을 지시했다. 이후 ‘윤석열 규탄’, ‘민노총 침투·장악’ 같은 지침을 하달했다. 진보정당 간부는 2017년 북한 공작원을 만나 제주에 ‘ㅎㄱㅎ’라는 지하조직을 만들고 농민단체 관계자 등과 북측 지령을 받아 활동했다.

마지막 3단계에는 단순히 국내 관련 사항을 수집해서 북한에 전달하는 하급 수준에서 벗어나 노조 및 정치권 등의 간부로 신분을 세탁하여 거점을 구축하고 공식 활동을 전개한다. 정당 등 제도권에 진입하여 남한 사회의 상층부를 대상으로 고도화된 공작을 전개한다.

정치권 인사가 연루된 대표적인 사례는 2006년 일심회 사건이다. 일심회 조직원은 중국 등지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한 뒤 국가기밀을 북측에 전달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일련의 사례는 노조 간부, 정당원 등 합법적인 신분으로 위장하기 때문에 수사가 어려운 ‘그럴듯한 직장인 간첩’ 스타일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친북 좌파 분위기와 일부 좌경 정치권이 간첩 활동에 방어막을 형성해준다. 간첩 수사가 내사에만 6∼7년이 걸리는 이유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청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는 민주노총 등 기관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해당 노조원들이 보인 반응은 무소불위다. 압수수색을 강제로 막고 욕설로 공권력 집행관들을 모욕하고 유튜브로 생중계를 한다. 명백한 증거로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는데도 막무가내다. 요컨대, 국내 헌법 질서를 위반한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수사로 물증을 수집해야 한다. 전문적인 수사 기법은 필수이고 장기적으로 수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최근 간첩 수사는 대공 수사권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시사하였다. 2024년 국정원 대공 수사권의 경찰 이양은 재고되어야 한다. 지난 정부 국정원은 남북정상회담 성사에만 매달렸고 간첩 수사는 안중에도 없었다. 2011∼2017년 26건이던 간첩 적발 건수가 문재인정부 때 3건으로 급감한 이유다. 간첩이 없어서 안 잡은 것이 아니고 알고도 안 잡은 것이다.

문 정부는 2020년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내년에 경찰이 대공 수사권을 독점하는 근거다. 이태원 참사에서 보았듯이 경찰은 민생 치안만도 벅차고 해외 방첩망도 없다. 최소 5년이 소요되는 수사를 지속할 수 있는 근무체계도 없다. 평양이 대남 적화 노선을 포기하지 않는 분단체제하에서 국정원의 대공 수사는 불가피하다. 전문성과 특수성의 기준에서 국정원과 경찰의 대공 수사는 차원이 다르다. 창원·제주 간첩단의 전모가 밝혀지면 대공 수사권의 경찰 이관 문제를 원점에서 논의해야 한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