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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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아프다는 말의 무게

“격리기간 동안 많이 주눅 든 것 같았어요….”

지난 12일 36사단에서 혹한기 적응 훈련을 받다 숨진 이등병 최민서씨의 어머니는 아들과 마지막 통화를 떠올리며 말끝을 흐렸다. 올해 스물두살이 된 최씨는 코로나19 격리가 해제된 지 이틀 만에 연병장에 설치된 텐트 안에서 잠을 자다가 세상을 떠났다.

구현모 외교안교부 기자

그는 가족들에게 ‘부대에서 찍힐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대에 배치받은 지 나흘 만에 코로나19에 확진돼 일주일간 병원에 격리됐기 때문이다.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은 부대에서 훈련 준비, 막사 청소, 불침번 어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병원에서 쉬다 온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원래는 자기 몸을 끔찍이 챙기는 애지만 군대 가서는 눈치가 많이 보인 것 같다”는 게 최씨 어머니의 설명이다.

아프니까 쉬겠다고 말하는 이등병이 있을까. 군 복무를 해본 사람들은 안다. 아프다는 말의 무게는 군 생활 기간과 반비례한다는 것을. 이제 막 자대에 배치된 최씨에게 아프다는 말은 천금처럼 무거웠을 거다. 그는 격리기간 중 가족들에게 몸이 안 좋다는 말도 수차례 했다고 한다. ‘아프면 훈련 빠져도 되지 않냐’는 가족들의 물음에 “이등병이라 그럴 처지가 못된다”던 그의 대답이 유독 서글프게 느껴지는 이유다.

코로나19로 인한 의무격리 7일은 바이러스의 전염성이 유지되는 기간이지 바이러스가 사멸하는 기간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건강한 사람도 최소 2주간은 무리한 활동을 피하라고 조언한다. 특히 추운 환경에 노출되면 바이러스 활동량이 증가해 증상이 악화할 가능성도 크다. 군, 경찰, 소방처럼 야외에서 강도 높은 활동을 하는 특수직업군의 경우 7일 격리의무 이외에도 세심한 지침들이 필요한 이유다.

세계일보는 지난 17일 군에 코로나19 확진자들이 격리해제 이후 훈련을 받을 수 있는지 판단하는 매뉴얼이 없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방역 당국이 설정한 7일 격리의무만 따를 뿐, 격리 이후 훈련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부대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스스로 몸이 안 좋다고 신고하면 다행이지만 신고를 주저하게 된다면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격리해제 후에도 일정 기간은 무리한 활동을 자제시키거나, 군의관의 검진 후 훈련에 참여시켰더라면 어땠을까. 국방부에서 이런 지침이 하달됐더라면 아프다고 말하기 주저하는 장병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보도 직후 군 관계자는 “훈련과 연계된 지침은 없지만 코로나19 확진자들의 건강 상태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격리가 끝난 장병 중 몸이 안 좋다고 이야기하는 확진자들은 휴식 여건을 보장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매뉴얼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부대 지휘관의 재량에 맡기거나 장병들의 자진 신고에 기대는 방식이라면 안타까운 사고는 또다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병들이 느끼는 아프다는 말의 무게를 먼저 이해해줬으면 한다. 최씨의 아버지도 “아들을 보낸 것은 비통하지만 이번 기회라도 장병들의 입장에서 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확립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해왔다. 역지사지가 문제 해결의 첫 단추다.


구현모 외교안보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