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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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배구, 트레이드 조항에 '친정팀 경기 출전 제한' 논란

설 다음날인 23일 광주 페퍼스타디움. 프로배구 여자부 최하위 페퍼저축은행은 홈 팬들에게 귀한 명절 선물을 안겼다. 프로배구 도드람 2022-2023 V리그 경기에서 GS칼텍스와 접전 끝에 세트 스코어 3-1(26-24 24-26 25-23 25-23)로 짜릿한 승리를 거둔 것. 올 시즌 첫 홈 경기 승리이자, 프로배구 여자부 홈 최다 연패(13패) 기록을 끊은 의미있는 승리였다. 페퍼저축은행이 홈 관중 앞에서 승리한 건 지난해 2월 11일 흥국생명전 이후 346일 만이다. 아울러 최근 4연패를 끊으면서 올 시즌 두 번째 승리(21패)를 거뒀다. 선수와 팬들 모두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국가대표 출신 주전 리베로 오지영(35)이 빠진 가운데 거둔 승리라 더욱 값졌다. 오지영이 코트 밖에서 누구보다 열렬히 후배들을 응원하면서 간절하게 승리를 염원하는 모습도 중계 카메라에 여러 번 잡혔다.

 

여자 프로배구 GS칼텍스에서 페퍼저축은행으로 옮긴 국가대표 리베로 출신 오지영. 연합뉴스

이 경기를 지켜 본 많은 배구 팬은 오지영이 부상 등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경기를 뛰지 않고 응원만 한 것으로 여겼을 듯싶지만 실상은 다르다. 전 소속팀인 GS칼텍스가 오지영을 페퍼저축은행으로 트레이드하면서 ‘올 시즌 전 소속팀 상대 경기 출전 불가’ 조항을 달았고 페퍼저축은행도 동의한 결과다. 

 

페퍼저축은행은 전날 GS칼텍스와 홈 경기에 오지영을 투입하지 않은 이유에 관해 “트레이드 과정에서 양 구단이 해당 조항을 합의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두 구단이 트레이드를 단행한 건 지난달 26일이다.

 

당시 개막 후 16연패에 빠졌던 페퍼저축은행은 2024-2025시즌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넘겨주는 대신 GS칼텍스에서 뛰던 오지영을 영입했다. GS칼텍스는 논의 과정에서 균형이 맞지 않는다며 ‘오지영을 올 시즌 남은 GS칼텍스전에 투입하지 않는다’라는 출전 불가 조항 삽입을 요청했고, 페퍼저축은행은 이에 응했다. 결국 오지영은 양 팀 합의에 따라 전날 GS칼텍스전을 뛰지 못했다. 올 시즌 남은 두 차례 GS칼텍스전에도 나서지 못한다.

 

공개되지 않았던 양팀의 트레이드 관련 세부 조항이 첫 맞대결이 열린 날 알려지면서 논란이 불거졌고, 팬들은 비판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배구연맹(KOVO) 홈페이지 자유게시판과 각종 커뮤니티엔 KOVO 사무국과 두 구단을 비판하는 글이 잇따랐다. 한 팬은 KOVO 자유게시판에 “트레이드 조항으로 선수의 출전을 제한하는 건 공정성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양 구단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페퍼저축은행 관계자는 “한국배구연맹 규정에 위배되는 내용은 아니다”고 했고, GS칼텍스 관계자 역시 “트레이드의 균형적인 측면에서 해당 조건을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특정 선수 출전 불가 조항’은 리그 생태계를 혼탁하게 할 수 있는 등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에 무게가 실린다. 오지영이 이런 내용을 모른 채 트레이드를 했어도 문제가 되겠지만 알고 있었다 해도 논란이 남는다. 선수 입장에선 3경기 출전 기회 박탈로 자유계약선수(FA) 자격 취득이나 개인 기록 타이틀 경쟁 등 선수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당한 셈이어서다. 아울러 특정 선수의 특정 경기 출전 불가 조항이 정상적인 계약 조항으로 인정받는다면 다양한 형태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좋아하는 선수의 플레이를 보고, 각 팀이 최선의 경기력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며 경기장을 찾는 팬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스포츠 정신에도 어긋난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이 임대 선수를 원소속 구단과 경기에서 제외하는 계약 규정을 위법이라고 판단하고 엄중하게 제재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스포츠의 순수성 유지를 위해서다. 한국프로축구연맹도 2020년 FIFA의 판단에 따른다며 상무 선수들이 원소속 구단을 상대로 경기에 나설 수 없다는 규정을 삭제했다.

 

한 배구인은 “그동안 프로배구계에선 비슷한 조항이 들어간 트레이드가 암묵적으로 발생했다”며 “프로배구 발전과 선수 권익 보호 등을 위해 관련 규정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KOVO 측은 “선수의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구단들과 상의해 개선점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이강은 기자, 연합뉴스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