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멸망까지 남은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구 종말 시계(Doomsday Clock)의 초침이 파멸을 향해 10초 더 줄어들어 사상 최초로 100초 이내로 진입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24일(현지시간) 미국 핵과학자회(BAS)의 발표를 인용해 시계의 초침이 ‘자정까지 90초 전’이라고 보도했다.
일반상대성이론을 발견하고 미국 원자폭탄 연구의 기초를 세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주축이 돼 1945년 창설한 BAS는 지구 멸망 시간을 자정으로 설정하고 핵 위협 가능성을 고려해 1947년 이래 매년 지구의 시각을 발표해왔다. 이 시계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와 같은 주요 사건이 반영되지 않는 등 일부 비판이 있지만, 핵과 기후변화 등에 대한 인류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해온 지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술핵 사용 가능성이 커진 것이 이번 변동의 결정적 요인이다.
레이철 브론슨 BAS 회장은 이날 BAS 회보에 관련 내용이 발표된 뒤 기자회견에서 “전쟁 발발 이후 이어진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에 대한 위협을 통해 전 세계는 분쟁 확대가 끔찍한 위험임을 다시 깨닫고 있다”면서 “갈등이 통제 불가가 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최근 미국과 독일 등 서방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비 지원에 속도를 내자 전술핵 사용 가능성을 재차 언급한 바 있다.
1947년 7분으로 시작된 지구 멸망까지 남은 시간은 이후 전 세계 핵 위협이 고조되면 줄어들었다가 긴장이 완화되면 늘어나기를 반복해왔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계속 줄기만 하고 있다. 2012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영향으로 5분으로 줄어든 뒤 2017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영향 속 북한 등의 핵 위협이 고조되며 2분대로 진입했다. 2020년부터 BAS는 기존 분 단위로 발표하던 시간을 아예 초 단위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상황이 급박해졌다는 판단에서다.
미국·이란 간 긴장이 고조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2020년 100초에 이어 이번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으로 90초까지 시간이 줄었다. BAS는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구 종말에 가까워지는 데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기 위해 이번에 처음으로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로도 시간 변화를 발표했다.
브론슨 회장은 “우리는 전례 없는 위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최후 심판의 시간은 그러한 현실을 반영한다”면서 “우리는 지도자들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모든 능력을 탐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발(發) 핵 위협이 주된 요인이지만 그것만 인류 멸망 예상 시간을 줄인 건 아니다. BAS는 “새로운 시간은 기후위기로 인한 지속적인 위협, 그리고 코로나19와 같이 발전하는 과학기술·생물학적 위험 완화에 필요한 국제적 표준 및 기관의 실패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BAS는 2010년대부터는 기후위기 등도 종말 시간 설정에 함께 고려하고 있다. BAS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생화학 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한 위협도 높아졌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