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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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판자촌에 반복되는 전기 요인 화재… “주거환경이 바뀌어야”

지난달 20일 설 연휴를 앞두고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발생한 화재는 감식결과 전기적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기적 요인으로는 전선이나 전기기구의 합선·누전·과부하 등이 꼽힌다.  

 

지난달 20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 난 화재로 소방대원들이 출동해 있다. 김나현 기자 

서울강남소방서 관계자는 2일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 증거물 분석을 의뢰해둔 상태”라며 “감식 결과가 나오는 데 일반적으로 1개월은 소요된다”고 밝혔다. 구룡마을처럼 집이 다닥다닥 붙은 곳은 안전 사각지대가 쉽게 발생할 수 있는 구조다. 불이 나면 옆집으로 확산이 빠르고 비닐 계통의 가연성 소재로 만들어진 집이 많아 불도 잘 붙는다. 

 

구룡마을에 지어진 지 오래된 집이 많다는 점도 안전사고 위험을 높인다. 오래된 구조물은 비나 눈이 샐 확률이 높아서 전선이 부식되기 쉽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장은 “화재가 일어나는 전선은 대부분 서로 들러붙었거나 피복이 벗겨진 부식된 부분”이라며 “특히 난방을 많이 하는 겨울철에 해당 부분에 전기가 흐르다가 과열돼서 화재가 잘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쪽방촌이나 고시원, 전통시장처럼 인원이 밀집된 시설도 화재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건물이 노후화한 경우가 많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취약성이 누적될 수 있다. 지난달 29일 취재진이 찾은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있는 쪽방 건물 위로는 전선 수십 줄이 얽혀 있었고 옥상에는 액화석유가스(LPG) 가스통이 보여 위태로워 보였다. 쪽방 건물 입구마다 소화기가 비치됐지만 일부 층은 빨래걸이와 잡동사니가 소화기함을 가리고 있어 유사시 즉각 대응이 어려워 보였다.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판잣집 위로 전선이 낮게 드리워 있다. 박유빈 기자 

이곳 주민인 정지영(63)씨는 전기장판 위에서 몸을 녹이고 방 안에서 휴대용 가스레인지로 물을 끓여 컵라면이나 즉석밥을 조리해 먹고 있었는데 한 평(3.3㎡)짜리 방에 스크링클러를 설치하고 소화기를 놓을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정씨는 “이 건물에 소화기 있는 방은 없고 사용할 줄도 모른다”며 “지난해 가을 근처 한 여관에서 불이 났는데 그때도 합선이 원인이라 들었다”고 전했다.

 

서울 강남구청은 이번 구룡마을 화재 후 점검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구청 관계자는 “유관기관 합동 점검을 기존 주 1회에서 2회로 확대하고 소방시설을 추가 설치할 예정”이라며 “유관기관 합동 점검 요일이나 소방 시설 개수는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방시설 확대와 점검, 안전교육 등이 능사는 아니란 조언이 제기된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교수(소방방재학)는 “단순히 화재예방이 아니라 주거환경 개선과 맞물린다”며 “획기적인 전환점 없이 주거공간에 생긴 문제를 임시방편으로 해결하려니 환경의 취약성이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밀집한 주택을 분산시키거나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방법이 (안전사고 예방에) 현실적”이라고 밝혔다.


박유빈·이민경·김나현·이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