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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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성당 매력에 반하는 강화 레트로 여행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100년 넘은 강화 온수리성당 작지만 단아/궁궐 도편수 솜씨 담긴 강화성당 빼어난 건축미 돋보여

/소창체험관·고려궁지· 용흥궁 등 가볍게 걸어서 떠나는 원도심 시간여행 

 

강화 온수리성당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아무런 색도 칠하지 않은 원목 기둥과 서까래. 눈보라 몰아치는 추운 겨울 공간을 조금이나마 데우던 유일한 난방기구인 쇠난로. 그리고 녹슨 촛대와 작은 손풍금까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성안드레성당 빛바랜 작은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자 과거의 시간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강화로 레트로 여행이 시작된다.

 

온수리성당 종루
온수리성당

#작지만 단아한 온수리성당을 마주하다

 

‘온수리 성공회’.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성당 입구 전통 기와를 얹은 종루에 적힌 빛바랜 아주 작은 현판이 대한성공회 성당임을 알린다. 종루 천장에 매달린 종은 지금도 매일 오후 6시면 청아한 소리를 울려 세상을 따뜻하게 덮는다. 원래 영국해군 군함에서 사용하던 종으로 소리가 아주 좋았단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무기로 만들기 위해 교회의 종을 수탈해간 아픈 역사가 전해진다.

 

온수리성당 난로

종루 오른쪽 성공회 사제관 안내문이 온수리성당의 역사를 말한다. 우리나라에 성공회가 처음 전파되기 시작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대 선교사 고요한 주교와 함께 영국에서 온 조마가 신부가 1900년 사제관을, 1906년 성당을 지었으니 100년이 훌쩍 넘었다. 사실 이보다 앞서 외과 의사인 로스 선교사가 1879년 이곳에 진료실과 기도처를 설립했다고 한다.

 

온수리성당 내부

성당 본관 외관은 전통 한옥 팔작지붕 형태로 지었다. 내부는 서유럽 교회 양식을 융합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초기 성공회 교회양식을 볼 수 있는 목조건물로 역사적 가치가 크다. 안으로 들어서면 길강준, 원정덕, 심도마 신부 등 한글 이름을 얻은 파란 눈의 신부들과 역대 신부들의 사진이 내걸려 성당이 지나온 시간들을 전한다. 특히 입구를 차지한 쇠난로에 세월의 흔적이 잔뜩 묻어난다. 영문 ‘ROUND OAK’가 새겨진 쇠난로는 성당 건립 초기에 외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작은 성당마저 따뜻하게 데우기는 턱없이 부족했으리라. 두꺼운 옷을 껴입고도 밝은 표정으로 미사를 드리는 신자들의 모습이 눈앞을 스친다.

 

온수리성당 제의

 

온수리성당 고해소

벽에는 흰치마저고리를 입은 1937년 교인들 모습과 1950년대 합동결혼식 사진이 내걸려 당시 생활상을 전한다. 성령·수난·순교를 상징하는 홍색 의복, 생명·성장·희망을 상징하는 녹색제의와 촛대 등 당시 사용하던 물품들이 전시돼 있고 성당 안쪽에서 고해성사를 하던 작은 고해소도 만난다. 현재 성당은 기념관으로 사용 중이고 옆에 새로 지은 이국적인 성당에서 미사가 진행된다.

 

강화성당 외삼문

#궁궐 도편수 화려한 솜씨 담긴 강화성당

 

강화는 조선 후기 많은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다. 1866년(고종 3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함대가 정족산성 전투에서 패해 철수할 때까지 1개월 정도 머물렀고 1871년 신미양요 때는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가 미국 함대에 차례로 함락되기도 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강화는 서양에 문호를 개방할 때 전진기지 역할을 했다.

 

강화성당

서양인들의 선교도 활발해 당시 세워진 교회가 강화에만 온수리성당, 강화성당, 서도중앙교회 등 3곳이 남아있다. 모두 한옥으로 지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그중 1900년 고요한 주교가 강화읍에 지은 성공회 강화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성당으로 지금도 미사가 열린다. 온수리성당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화려하다. 특히 외관은 한옥과 불교 사찰 형태를 구현했고 내부는 서유럽 바실리카 양식을 조합한 점이 이색적이다. 기독교의 자연스러운 토착화를 위해 성당 건축 디자인부터 동서양의 조화를 꾀한 것으로 짐작된다.

 

돌계단을 오르면 외삼문과 내삼문이 차례로 등장하고 내삼문은 종루를 겸한다. 원래 영국에서 들여온 종이 있었지만 1943년 일본이 강제로 공출해 가면서 1989년 다시 만들었다. 일제는 심지어 성당 난간까지 뜯어 갔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일본성공회 성직자와 신자들이 과거 일제가 일으킨 침략전쟁을 참회하면서 2010년 강화성당 축성 110주년을 기념해 정문 계단 난간을 복원했다.

 

강화성당 사제관

내삼문을 지나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팔작지붕 아래 ‘天主聖殿(천주성전)’이라 쓴 현판이 걸린 운치 있는 한옥 건물이 펼쳐진다. 건축을 잘 모르는 이들도 한눈에 아주 빼어난 건물임을 금세 알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한 한옥 건축양식에 감탄이 쏟아진다. 경복궁 중건에 참여한 도편수가 지었다니 역시 보통 솜씨가 아니다. 뗏목으로 운반한 백두산 소나무를 사용했는데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전통방식대로 일일이 끼워 맞춰 만들었다. 몇 차례 보수가 있었지만 처음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본당 입구 왼쪽에는 돌로 만든 배 모양 조각이 눈에 띈다. 성당 건물은 하늘에서 보면 배의 형상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라는 의미를 담았단다. 밖에서는 2층 구조로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천장까지 탁 트인 개방형 구조로 디자인됐다.

 

강화성당 세례대

팔각형 모양 세례대에 한자로 적힌 글귀가 심오한 울림을 준다. 오른쪽부터 세로로 修己(수기), 洗心(세심), 去惡(거악), 作善(작선)이라 적혔는데 ‘자신을 닦고 마음을 씻어 악을 떨치고 선을 행한다’는 뜻이다. 성당 중간쯤 양쪽에 보이는 아치형 출입문은 건축 당시 영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지금도 열쇠로 문을 여닫으며 사용한다. 건물 앞마당 커다란 나무는 불교를 상징하는 보리수로 기독교의 토착화에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다. 1900년 영국 선교사 트롤로프 신부가 인도에서 10년생 보리수나무 묘목을 가져와 심었는데 세월이 지나 둘레 3m, 높이 18m 거목으로 성장했다. 반대쪽에는 유교를 상징하는 회화나무도 있었지만 2012년 태풍 볼라벤이 닥쳤을 때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고려궁지

 

소창체험관

#강화의 추억을 만나는 원도심 투어

 

강화 원도심은 주요 여행지가 옹기종기 몰려 있어 걸어서 둘러보기 좋다. 고려 역사를 만나는 고려궁 성곽길 코스, 조선 철종의 한양행렬을 따라가는 왕의 길 코스, 체험·전시 코스, 강화의 과거와 현재를 만나는 강화역사 코스 중 입맛대로 고르면 된다. 강화성당 바로 아래 한옥은 용흥궁. 조선 25대 왕 ‘강화도령’ 철종이 왕이 되기 전까지 살던 곳이다. 1896년 개교해 127주년을 맞은 강화초등학교를 따라 언덕을 오르면 고려궁지가 등장한다. 몽골 침략에 대항하던 고려 왕조가 1232년(고종 19년) 6월부터 개경으로 환도한 1270년(원종 11년)까지 머물던 궁터다. 병자호란과 병인양요를 겪으며 건물 대부분이 소실됐고 2003년 복원

 

소창체험관

한 외규장각과 조선시대 지은 행궁, 유수부 동헌이 남아있다.

 

소창체험관은 1960∼70년대 우리나라 직물산업을 이끌던 강화의 옛 영화를 만날 수 있다. 소창은 목화솜 100%로 만든 순수 천연직물로 예전에 집집마다 옥상 빨랫줄에 휘날리던 새하얀 기저귀가 바로 소창이다. 당시 강화에는 크고 작은 직물공장 60곳에서 일하는 직원이 5000여명, 천을 짜는 역직기가 1000여대에 달했을 정도로 직물산업이 번창했다.

 

소창체험관  1938한옥
 

 

그중 1956년 마진수씨가 세운 평화직물이 큰 역할을 했는데 강화군이 2016년 평화직물 염색공장을 매입해 생활문화체험간으로 꾸민 곳이 소창체험관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전남 여수에서 온 초등학생 20여명이 눈을 반짝이며 해설사의 설명에 집중하고 있다. 소창을 직조하던 기구들이 전시돼 있고 소창을 체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소창기념품전시관에는 리넨, 인조견, 마 등 천연소재로 만든 식탁 매트, 침구 등 생활용품을 판매하며 미리 신청하면 한복 체험도 가능하다. 사택으로 쓰이던 1938한옥은 다기, 소반 등 소품들이 전시됐다. 여행자들이 강화 특산물인 순무를 덖어 만든 순무차를 즐기던 곳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중단됐다. 실내 마스크가 해제돼 조만간 다시 차를 낼 예정이다.

 

카페 조양방직

 

1933년 강화에 처음 설립된 방직공장인 조양방직은 레트로 감성이 물씬 풍기는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금풍 양조장은 1931년부터 3대째 운영 중인 레트로 양조장으로 2층 목조건물이 예전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막걸리를 직접 빚고 시음할 수 있다. ′


강화=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