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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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기아 뛰어든다”… 중고차 시장 들썩 [이슈 속으로]

대기업, 2023년부터 시장 참여 본격화

온라인 판매 플랫폼 등 기본 틀 구축 박차
현대차, 5년·10만㎞ 이내 자사 차량 대상
품질검사 통과한 인증 중고차 판매 예정
기아, 미리 한 달 동안 차량 체험 후 결정
‘先구독 後구매 프로그램’ 운영 준비 중

허위 매물 등 신뢰도 떨어진 중고차 시장
이 기회 ‘레몬마켓’ 이미지 씻고 변화 기대
소비자 선택의 폭도 넓어지는 계기될 듯

올해부터 대기업 완성차업체가 중고차 사업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중고차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그동안 중고차 시장은 소비자가 판매자보다 제품에 대한 정보가 적어 허위 매물, 이중 계약 등 악명이 자자했다. 대기업이 업계에 진출해 경쟁이 치열해지면 소비자의 선택 폭이 넓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 성동구 장안평중고차매매시장에 차량들이 주차된 모습. 뉴시스

◆현대차·기아 등 대기업, 중고차 사업 진출

 

17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하반기 인증중고차 판매 시범 운영을 시작으로 정식으로 중고차 사업에 뛰어든다.

 

현대차와 기아는 높은 수준의 인증중고차와 정교한 대고객 서비스를 내놓기 위해 온라인 판매 플랫폼을 구축하고 가격산정 체계를 마련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현대차는 중고차 관련 통합 정보 포털을 구축하고 정밀한 성능 검사와 수리를 거친 후 품질을 인증해 판매하는 인증중고차를 공급할 예정이다. 5년·10만㎞ 이내 자사 브랜드 차량을 대상으로 국내 최대 수준인 200여개 항목의 엄격한 품질 검사를 통과한 차량을 선별해 판매할 계획이다. 고객이 타던 차량을 매입하고 신차 구매 시 할인을 제공하는 보상판매 프로그램도 내놓는다. 

 

판매 채널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기반의 온라인 가상전시장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구입 전 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온라인 원스톱 쇼핑을 구현할 예정이다. 상품을 직접 보고 싶은 고객을 위해 전국 주요 거점 지역에 대규모 전시장과 함께 도심 랜드마크 딜리버리 타워도 순차적으로 구축한다. 

 

기아는 인증중고차 판매와 함께 기존 구독서비스와 인증중고차사업을 연계한 중고차 구독 상품 개발을 추진한다. 고객이 중고차 구매 결정에 앞서 차량 성능과 품질을 면밀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최장 한 달 동안 차량을 체험(구독)해 본 후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선구독 후구매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리컨디셔닝센터에서는 소비자가 차량 성능 진단과 상품화, 실시간 점검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시승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쌍용차, 한국GM, 르노 등 국내 완성차 3사도 인증중고차 시장에 참여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 중이다.

 

롯데렌탈은 기존에 보유한 경매장 롯데오토옥션을 오프라인 공간으로 활용하고 온라인과 연계해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온라인으로 중고차 판매, 중개, 렌털을 비롯해 인증, 사후관리까지 비대면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승, 정비 체험과 같은 오프라인 서비스와 연계한다는 구상이다. 롯데렌탈은 오는 2025년까지 중고차 전체 시장 점유율을 1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고차 사업은 2013년부터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분류되면서 국내 대기업의 진출이 막혔다. 이후 시장 상황이 바뀌면서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는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를 열고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위원회는 “기존 중고차업체 매출 규모가 비교적 크고 소상공인 비중이 낮아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요건인 ‘규모의 영세성’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최근 경기침체와 고금리 상황을 맞아 중고차 시장이 침체되며 대기업의 본격적인 중고차 시장 진출 시기는 예상보다 다소 늦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중고차 시장 진출을 준비해왔던 현대차그룹은 원래 상반기 시범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중고차 시장 신뢰 회복할까

 

중고차 시장은 소비자가 판매자보다 제품에 대한 정보가 적은 특성 때문에 허위 매물이 넘쳐나는 대표적인 ‘레몬 마켓’(품질 낮은 제품이 유통되는 시장)으로 꼽힌다. 

 

한국소비자원이 우리나라 중고차 시장 관련 인식을 설문조사한 결과, 소비자와 사업자 모두 허위·미끼 매물 등의 문제점이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들은 국내 중고차 시장의 문제점으로 ‘허위·미끼 매물’(79.8%·복수응답)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불투명한 중고차 가격 정보’(71.7%), ‘중고차성능·상태점검기록부에 대한 낮은 신뢰도’(59.1%)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특히 사업자 98.1%는 ‘허위·미끼 매물’을 가장 심각한 문제점으로 선택해 소비자보다 더욱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면 제조사가 직접 인증하는 고품질 중고차가 늘면서 중고차 시장도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기준 중고차 거래는 약 387만대로, 신차 등록 대수(약 173만대)의 2배 이상이다.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미국, 유럽(EU) 등 선진국은 이미 신차 대비 중고차 시장이 3배에 달한다. 

 

소비자들은 허위 매물과 불투명한 가격 등의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부품 정비, 차량 구독 서비스 등 모빌리티 관련 사업도 함께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기업 독과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영세 중고차 매매업계는 이미 신차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까지 진출할 경우 쏠림 현상이 강해지며 독점이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는 중고차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결국 소비자에게도 불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완성차업체의 참여로 중고차 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며 “미끼 매물 해결부터 교환·환불 절차 등을 명확하게 해결해 판매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관건이며, 이를 갖추지 못하는 곳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존 중고차 업계도 경쟁력 강화 ‘잰걸음’ 

 

현대자동차그룹 등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앞두고 중고차를 직영으로 판매하거나 중개하는 관련 업계도 분주하게 대비하고 있다.

지난 1월 5일 서울 장안평 중고차매매시장에서 관계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업계에 따르면 직영중고차 플랫폼 기업 케이카는 매장에 방문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매매할 수 있는 ‘내차사기 홈서비스’의 품질 향상을 위해 원스톱 상품화 공정을 갖춘 온라인 전용 매장을 지난해 11월 열었다.

 

경기 이천시에 설립된 케이카 홈서비스 메가센터는 내차사기 홈서비스 전용으로 판매되는 직영중고차의 품질 점검 및 관리, 상품화를 한 번에 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이를 위해 케이카는 자동차 애프터마켓 서비스 전문 업체 탈것(TALGUT)과 함께 최신 설비를 활용해 차량 진단과 경정비, 도색, 광택, 세차까지 상품화 과정을 효율적으로 관리·운영할 예정이다.

 

중고차 중개 플랫폼 엔카닷컴은 투명하고 믿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엔카 비교견적 거래확인센터’를 열었다. 엔카에서 비교견적을 진행할 때 고객과 딜러 간 최종 거래가 합당한지 엔카에서 직접 확인 및 관리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이다.

 

엔카닷컴은 등록된 차량이 사전 확인한 차량의 상태와 다르거나 존재하지 않을 경우 매장에 방문한 고객에게 10만원을 보상해주는 ‘헛걸음보상’ 서비스도 진행하고 있다. 모델명, 등급, 주행거리, 옵션 유무, 연식, 가격 등 정보가 대상이다. 헛걸음보상 차량으로 등록된 누적 차량 대수는 지난해 말 21만대를 돌파했다.

 

중고차 중개 플랫폼 헤이딜러는 이용자가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딜러에게 자기 차량을 직접 판매할 수 있는 체계를 갖췄다. 거래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중고차 거래 결과를 자체 감가심사센터에서 모두 모니터링해 부당한 감가는 돌려주는 부당감가 보상제를 실시하고 있다. 회원가입 없이 번호판과 소유자명만 입력하면 100만대 이상 누적된 빅데이터로 적정 시세를 산출해주는 번호판 시세조회 서비스도 제공한다.

 

중고차 매매업 단체인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중소업체들의 중고차 매입·판매 채널을 준비해 올해 중 서비스 예정이다. 중고차 업체로부터 받는 수수료를 업계 최저 수준으로 낮춰 다수의 중고차 업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향후 온라인 중고차 판매 플랫폼도 내놓을 예정이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