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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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I 피해자들은 징역 4년을 받은 총책을 왜 또 고발했나

2014년 검찰 수사 피해 국외로
해외에서도 ‘다단계 총책’ 역할
“사기 혐의로도 처벌 받아야”
피해자 모임, 경찰청에 고발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8년 3월, 서울에서 직선거리로 약 4500㎞ 떨어진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MBI 투자설명회가 열렸다. MBI는 무등록 다단계 업체로, “투자금을 내면 지급되는 가상화폐 ‘GRC’의 가치가 시간이 갈수록 저절로 상승한다”고 사람들을 꼬드겨 세를 확장하고 있었다. GRC는 가치가 없는 가상화폐였음에도 말이다. 말레이시아에서 설명회가 있던 2018년, 국내에선 이미 MBI 영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다. 이로 인한 MBI 국내 피해자는 10만여명, 피해액은 조 단위가 넘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투자설명회엔 MBI 국내 총책이던 A(62)씨도 참석했다. A씨는 2014년 MBI 조직원들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그해 9월 말레이시아로 도주했다. 이후 계속해서 말레이시아에 머물고 있었다. A씨는 수배된 몸이었지만,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공식 석상에 참여했다.

경찰은 총책 A씨 등 주범들에 대해 인터폴 적색수배와 여권 무효화 등 절차를 거쳐 2022년 국내 송환해 구속했다. 사진은 송환되는 피의자 모습. 경기북부경찰청 제공

투자설명회에 참석한 모집책 B씨는 A씨를 이렇게 소개했다.

 

“제가 이름을 올리기에도 사실 가슴이 벅찬 분이에요. 여러분도 아마 예상을 하고 있을 거예요. (…중략…) 우리 MFC클럽(MBI의 다단계 조직·전 엠페이스)의 조상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촛불 켜고 제사 지내면 안 됩니다. 보시면, 어쩌면 대모죠. 우리한테 그렇죠. 그리고 지금 말레이시아에 계시면서 한국의 MFC클럽의 모든 것을 A씨와 B씨가 함께 주관하고 계세요.”

 

‘대모’라는 소개를 받고 나온 A씨는 1시간가량 강연을 이어갔다. A씨는 이날 강연에서 자신이 말레이시아로 오게 된 경위를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A씨는 “(2014년 당시 검찰에서) 모든 자료를 다 가지고 저에게 조사를 받으러 들어오라고 했다”며 “그런데 우리 변호사가 잠시 동안만 몸 좀 편안하게 쉬시라고 해외를 나가라는 거다”고 자신의 외유를 포장했다.

 

2014년 9월 해외에 나갔던 A씨는 7년 만엔 2021년 9월 귀국했다. A씨는 방문판매법 위반 혐의로 곧바로 구속기소됐다. A씨 재판 선고는 기소된 지 1년5개월 만인 이번 달에야 나왔다. 지난 10일, 대구지법 형사10단독 류영재 판사는 A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류 판사는 “피고인은 국내 MBI 조직을 실질적으로 운영·관리하면서 관련자들이 처벌된 이후에도 다단계 판매업이 계속되도록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위법성이 매우 중하다”고 설명했다.

 

A씨가 이 재판에서 받은 혐의는 방문판매법 위반 혐의 한 가지다. 공소장에 적힌 범죄 시기도 실제 범죄 시기보다 좁다는 게 피해자들 주장이다. A씨는 2013년 6월부터 2016년 5월까지 미등록 다단계 업체를 관리하며 업체 회원으로 가입하면 GRC를 통해 고수익을 보장한다면서 24억여원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A씨가 2014년 해외로 도피해 말레이시아에 거취를 마련한 뒤 2016년 5월부터 2019년 9월까지의 범죄 혐의는 해당 재판에 포함돼 있지 않은 것이다.

 

피해자들은 A씨가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지 않은 점에도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국내 총책이었던 A씨가 미등록 다단계 업체였던 MBI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리 없다는 이유에서다. MBI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이민석 변호사는 14일 본지 통화에서 “피해자들이 분노하는 건 A씨가 방문판매법 위반 혐의로만 기소됐다는 것”이라며 “다른 사람들은 사기인 걸 몰랐다고 우길 수 있을지 몰라도 A씨는 그렇지 못하다”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은 이날 오후 2시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A씨를 고발했다. 특경법상 사기 혐의는 범죄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때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MBI 사기로 인한 피해액이 국내에서만 5조원에 이른다고 주장하는 상태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