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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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자리는 이제 내꺼” 대한항공 2년차 OH 정한용의 넘치는 자신감

남자 프로배구 대한항공의 아웃사이드 히터 정한용(22)은 홍익대 재학 시절 신입생 때부터 맹활약했고, 2학년 땐 주포 역할을 맡아 홍익대의 전승 우승과 대학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했다. 2학년을 마치고 얼리로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한 정한용은 강력한 1순위 후보로 꼽혔지만, 1,2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던 현대캐피탈이 홍동선과 정태준을 지명하면서 전체 3순위로 대한항공의 유니폼을 입었다.

 

강한 서브와 준수한 공격력과 리시브 능력을 겸비하고 있음을 증명하며 가능성을 보인 신인 시절을 보내고 2년차를 맞이한 2022~2023시즌. 정한용은 코트보다는 웜업존을 지키는 시간이 많았다. 대한항공의 주전 아웃사이드 히터 두 명이 남자 프로배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선수들인 정지석(28), 곽승석(34)이기 때문이다.

 

원포인트 서버, 그리고 전 아웃사이드 히터 선배들이 흔들릴 때만 간간이 코트에 얼굴을 내비치던 정한용에게 존재감을 드러낸 기회가 왔다. 선배 곽승석의 종아리 컨디션이 온전치 못하자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은 정한용에게 주전으로 기용했다.

 

지난 2일 한국전력전 4세트부터 주전으로 출장한 정한용은 이후 7일 삼성화재전, 10일 현대캐피탈전에 모두 주전으로 나서 정지석과 대각에서 활약했다. 두 경기 연속 18점에 50%가 넘는 공격성공률을 보였음에도 정한용은 웃을 수 없었다. 대한항공이 2-3, 1-3으로 패배했기 때문이다. 어느덧 대한항공의 연패 수는 4까지 늘어났다. 2위인 현대캐피탈에게 패배하면서 어느덧 선두 자리를 위협받을 상황까지 놓였다.

 

14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KB손해보험전에서도 선발로 나선 정한용은 앞선 두 경기와 달리 공격에선 그리 큰 존재감을 뽐내지 못했다. 11점에 공격성공률 39.13%로 40%를 밑돌았다.

 

다만 공격만이 자신의 장점이 아님을 알렸다는 게 큰 수확이다. 이날 서브에이스는 딱 1개 나왔는데, 그 타이밍이 좋았다. 1세트 14-15로 뒤지던 상황에서 정한용은 서브를 KB손해보험 코트에 내리꽂았고, 기세를 이어 연이어 강한 서브로 KB손해보험의 리시브를 흔들며 팀 득점을 발판을 놓았다. 정한용의 서브 타임이 지나자 스코어보드는 18-15로 바뀌어 있었다. 4연패 중이던 대한항공으로선 이날 1세트까지 내줬다면 또 다시 패배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정한용의 서브에이스 값어치는 매우 높았다. 리시브 역시 팀내에서 가장 많은 39개를 받아 22개를 정확히 세터 머리 위에 전달했다. 리시브 효율은 무려 53.85%에 달했다.

 

정한용의 맹활약 속에 대한항공은 KB손해보험을 3-1로 누르고 4연패에서 벗어났다. 승점 3을 쌓음과 동시에 20승(8패)에 선착한 대한항공은 승점 59로 2위 현대캐피탈(승점 52, 17승10패)과의 격차를 벌리며 정규리그 우승 가능성을 드높였다.

 

이날 중계방송사인 KBSN스포츠에서 MVP로 선정해 팡팡플레이어 신고식도 치른 정한용은 동료들에게 물세례도 받았다. 물에 흠뻑 젖은 채로 인터뷰실에 들어선 정한용은 “물 세례를 받으니 속이 좀 뚫리는 느낌이었다”면서 “(곽)승석이형이 빠진 이후로 제가 주전에 들어갔는데, 제 잔실수로 경기가 힘들어진 적이 많아서 생각이 많아졌다. 오늘도 그런 생각이 든 순간들이 꽤 있었는데 이겨서 다행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곽승석이 돌아와도 주전 자리를 지키고 싶다고 방송 인터뷰에서 얘기했느냐고 묻자 정한용은 멋쩍게 웃으며 “승석이형이 나이도 나이인지라...제가 어떻게든 한 자리를 차지해야죠”라고 말했다. 문제는 같이 인터뷰실에 온 선수가 유광우였다는 점이다. 1985년생인 유광우는 1989년생인 곽승석보다도 네 살이 더 많다. 정한용의 “나이가 나이인지라...”라는 말을 듣던 유광우는 정한용을 장난 섞어 째려봤고, 그 순간 인터뷰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정한용은 한국 최고의 아웃사이드 히터인 곽승석을 대신해 뛰고 있기 때문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는 “아무래도 승석이형이 하던 자리라 아무리 잘해도 승석이형이 했던 플레이에 비해 부족함이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저 제 장점을 보여주자라는 마음으로 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격력은 지금까지 잘 보여줬으니, 승석이형 자리에서 뛰는 거니까 리시브에서도 훨씬 더 좋아진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덧붙였다.


인천=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