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각국에 전차와 장갑차, 무인기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한 계기가 됐다.
폴란드를 비롯한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세계 각국에서는 냉전 이후 주춤하던 차세대 전차와 장갑차 개발이 빨라지는 모양새다.
한국군도 40여년째 쓰던 M계열 전차, 러시아산 T계열 전차를 퇴역시키고 K2 전차를 도입하는 등 2020년대 이후 북한 지상군을 상대할 기계화부대 재편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북한군은 최근 건군절 제75주년 열병식 등에서 능동방호체계(APS)와 대전차미사일을 갖춘 것으로 추정되는 신형 전차를 선보이며 지상전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에 따라 북한군의 눈에 띄지 않고 움직이는 차세대 전차, 원격 조종이 가능한 기갑장비, 레이저로 드론과 미사일을 파괴하는 장갑차 등의 소요와 관련 기술이 국내에서 등장하고 있다.
◆드론 위협 저지하며 적 전차 파괴
K2 전차와 차륜형장갑차를 만드는 현대로템은 지난 8일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과 한국국방안보포럼이 지난 8일 개최한 유·무인 전투체계 관련 세미나에서 무인 기술 등을 반영한 지상장비 연구개발 현황을 소개했다.
네트워크와 인공지능(AI)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선진국에서는 조종사가 통제하는 일반 전투기와 AI 탑재 무인기가 팀을 이뤄 항공작전을 수행하는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MUM-T)가 주목받고 있다. 무인기가 공격 등을 맡으면 전투기 조종사는 정보를 융합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도 소형무장헬기(LAH)나 상륙공격헬기에 무인기를 더해 유·무인 복합 전투체계를 구축하는 등의 방안이 추진 중이다.
지상장비 분야에서도 이와 유사한 시도가 나올 모양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전차나 장갑차에 적용 가능한 유·무인 복합 기술이 소개됐다.
2024년까지 응용연구 형태로 개발이 진행되는 이 기술은 승무원이 운용하지만, 필요시 원격조종으로 전환해서 주행과 사격을 하는 형태다. 도중에 장애물을 만나면 회피하거나 정지하고, 통신이 끊어지면 자동으로 복귀한다.
이를 위해 원격 사격·고장 진단·주행 등을 지원하는 기능이 탑재된다. 주행 과정에서 외부 상황을 원격 조종수에게 전해줄 주행카메라와 후방카메라, 모니터링 장비 등도 설치된다. 기본적으로는 K1 전차와 K9 자주포를 대상으로 하지만, K2 전차 성능개량에도 적용될 수 있다.
지난 2020년부터 육군에 배치된 K600 장애물개척전차의 원격무인화 기술도 등장했다.
지뢰 지대나 대전차 장애물을 돌파하려면 공병이 출동해서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적군의 사격과 폭발물 위험을 무릅쓰고 움직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따라 육군은 전문 장비와 방어력을 갖춘 K600 장애물개척전차를 개발, 이같은 임무를 맡겼다.
문제는 폭발물의 위력이 높아지면서 전차 승무원 안전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운용요원이 안전한 지역에서 전차를 원격으로 조종하면, 인명 피해를 걱정하지 않고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현대로템측은 4.5㎞ 거리 이내에서 원격 주행·운용·환경인식이 가능한 체계를 제안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뢰제거쟁기와 통로 표식장비, 굴삭기, 무장을 원격으로 운용한다.
육군 기계화부대에서 쓰이는 K2 전차의 성능개량 방안도 제안됐다. 세계 각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교훈을 반영하면서 최신 기술을 적용해 전차 성능개량 작업을 지속하는 것처럼 한국도 K2 전차 성능개량을 기획 단계서부터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상당수의 러시아군 전차들이 능동방호장치를 갖추지 않은 채 진격하다 대전차미사일 공격을 받아 파괴된 전례를 감안해 능동방호장치를 강화한다.
승무원이 전차 밖으로 나와서 사격하지 않도록 원격사격통제체계(RCWS)를 갖춘다. 전면 특수장갑을 개선하고 360도 상황인식장치를 확보하며 조준경과 포탑구동장치를 개선한다.
드론과 대전차미사일 공격을 저지할 다층방호체계가 더해지면, K2 전차의 안전성은 더욱 높아진다.
지난해 운용개념 연구용역이 이뤄진 다층방호체계는 기갑장비에 대한 위협 대응 수단을 거리별로 세분화한 형태다. 전차와 장갑차에 탑재된 센서, 무장을 활용하면서 신규 장비와 연동하는 방식으로 비용 대비 효과를 높인다.
최대 8㎞ 거리에서 레이더로 드론이나 미사일을 포착하면, 5㎞ 거리에서 광학장비로 식별을 한다. 2㎞ 이내로 접근하면 기관총이나 능동방호장치, 전파방해장비 등으로 무력화한다.
2030년대에 실용화될 차세대 전차도 소개됐다. 적에게 포착되지 않는 스텔스 설계가 적용된 차세대 전차는 130㎜ 활강포를 탑재, 공격력을 높였다. 다목적 드론과 미사일을 운용해 작전반경을 넓혔으며, 무인 포탑을 사용해 승무원 수를 줄였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통해 자율주행 및 원격운용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다. 승무원이 탑승한 전차가 무인 전차를 원격조종하면서 적군에 대한 정찰과 공격을 할 수 있다. 적군이 도로 등에 설치할 급조폭발물을 무력화하는 장비도 장착된다.
수소에너지에 기반한 전동화 장치와 능동형 현수장치를 통해 기동력을 높이고, 전차 측면에는 반응장갑을 추가해 방어력 강화도 꾀한다.
차세대 전차는 현재 군 당국에 장기 소요가 제기되어 있으며, 올해 응용기술 개발이 진행될 예정이다.
◆장갑차에 레이저포 탑재…드론·미사일 제압
일선부대에서 운용중인 K808 차륜형장갑차에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용, 파생형 차량을 만드는 방안도 제시됐다.
현대로템측은 국방기술진흥연구소 주도로 지난해부터 개발중인 30KW급 레이저무기를 차륜형지휘소용차량에 탑재하는 컨셉을 공개했다.
이동과정에서 장비에 전해지는 충격을 흡수하는 기술과 고효율 냉각 기술 등을 갖추면, 기갑부대를 노리는 미사일과 드론 등을 쉽게 요격하는 기동형 레이저 방공무기가 만들어진다.
육군 정보대대와 전자전소대의 능력을 강화할 이동형 지상전술 전자전장비도 처음 공개됐다. 차륜형장갑차에 탑재되는 컨셉으로 지난해 말 소요제기가 이뤄졌다.
적 통신망 신호를 탐지하고 감청하며 교란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중장기적으로는 2018년 전력화된 지상전술 전자전장비-Ⅱ(TLQ-200K)를 대체할 수 있다.
지난해 말에 소요제기가 된 대류권산란파 장거리통신장비는 차륜형장갑차에 직경 2.4m짜리 안테나 2개가 부착된 형태다. 대류권(고도 10㎞)과 성층권(고도 10~50㎞) 경계면에서 발사하는 산란 현상을 활용해서 100㎞ 이상 떨어진 부대와 교신할 수 있다.
차륜형장갑차에 대한 성능개량 방안도 제시됐다. 기존의 기관총은 원격사격통제체계(RCWS)로 교체한다. 최신 체계인 대대급 전투지휘체계(B2CS)를 탑재한 단말기와 탑승보병용전시기 등을 갖춰 이동 중에도 차량 외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을 반영해 미사일과 드론 위협을 저지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대전차미사일 공격을 무력화하는 능동방호장치를 탑재하면, 레이더와 광학장비 4개가 차체 상부와 측면에 장착된다. 대응탄 발사장치는 차체 양쪽 측면에 1개씩 탑재한다. 드론 방어체계만 사용할 경우에는 탐지 및 추적장비 4개와 전파방해장비가 설치된다.
AI와 지율주행, 수소연료전지 기술이 적용된 차세대 차륜형장갑차 컨셉도 모습을 드러냈다.
무게 30t으로 시속 100㎞로 주행할 수 있는 차세대 차륜형장갑차는 30~40㎜ 무인 포탑을 장착한다. 차세대 전차처럼 유·무인 복합운용이 가능하다.
AI 기반 상황인식체계와 무인체계를 적용해서 원격조종과 자율주행 등 미래형 조종 기술을 구현한다. 다양한 임무장비 탑재가 가능해 미래 위협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과거 미국에서 전차와 장갑차를 원조받아 사용했던 한국은 3세대 전차를 개발해 수출할 정도로 기술력이 급성장했다.
하지만 북한군도 신형 전차와 장갑차를 제작하면서 전력증강을 지속하고 있고,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전차 성능을 높이려는 시도가 세계 각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무기체계 연구개발과 생산에는 10여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부터 준비해도 2030년대 지상전 준비까지는 시간이 부족하다. 미래 전장을 주도할 수 있는 선도형 핵심기술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