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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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은어떼 돌아오는 굴구지마을 왕피천 트레킹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꾸미지 않은 자연 즐기는 울진 왕피천 생태탐방로 트레킹/얼음장 밑으로 “졸졸졸” 봄 오는 소리/청암정 계곡 기암괴석 푸른물 절경에 “탄성”/불영사 가는 드라이브 코스 계곡도 절경 

 

굴구지마을 왕피천 트레킹

깊고 푸른 물이 기암괴석 절벽과 바위들을 돌고 돌아 흐른다. 겨우내 두꺼워진 얼음장을 조금씩 깨뜨리며 봄을 향해. 굽이굽이 물길 따라 넓고 푸른 동해로 달려갔던 은어는 봄이 오면 다시 힘차게 물살을 거스르며 집을 찾아 돌아오겠지. 아홉 고개를 넘어야 만날 수 있는 오지, 굴구지마을 왕피천 돌다리에 서자 얼음장 밑으로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마치 서둘러 오는 봄소식처럼 따스하다.

 

왕피천 생태탐방로 코스

#은어가 돌아오는 굴구지마을 왕피천

 

왕피천은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발원해 울진군 서면과 근남면을 거쳐 동해로 흘러드는 65.9㎞의 물길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오지다. 산과 절벽으로 둘러싸여 접근이 쉽지 않아서다. 덕분에 사람의 발길이 적어 생태경관이 아주 잘 보존돼 있는데 우리나라 최대 규모다. 하늘다람쥐, 산양, 수달 등 포유류 14종, 조류 60여종, 양서류·파충류 23종이 서식한다. 또 버들치, 꺽지, 피라미가 뛰어놀고 동해로 떠났다 돌아오는 은어도 만난다.

 

굴구지마을 왕피천 징검다리
굴구지마을 왕피천 징검다리

꾸미지 않은 자연의 모습을 즐길 수 있어 트레킹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지루할 새가 없다. 강을 따라 걷다 산에 올랐다가 어느새 다시 물이 발목까지 차오르는 계곡을 만난다. 생태탐방은 사전에 예약한 뒤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 멸종위기 동식물을 보호하고 탐방객의 안전을 위해서다. 수·목·일은 당일코스, 금·토는 당일 또는 1박2일로 이용 가능하다. 월·화는 쉰다. 홈페이지(www.wangpiecotour.com)를 통해 원하는 구간을 예약할 수 있으며 1구간 금담비길(10.5㎞), 1-1구간 천년고찰탐방길(13.4㎞), 2구간 왕피천마을길(12.4㎞), 2-1구간 왕피천따라가길(17.6㎞), 3구간 천천길(14.3㎞), 3-1구간 보부상과 명당길(10.4㎞), 4구간 불영따라나그네길(14.5㎞)로 코스가 다양하다.

 

굴구지마을 은어 조각

 

굴구지마을 왕피천 트레킹

이 중 2구간 종착지이자 3구간 출발지인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굴구지마을은 농촌체험 휴양마을. 왕피천 하류에서 아홉 고개를 넘어야 마을이 나타난다고 해서 예로부터 구고동 또는 굴구지로 불린 오지다. 마을로 들어서자 왕피천 입구에 나무를 통으로 깎아 만든 은어 조각이 서 있어 이곳이 은어의 고향임을 알린다. 오랜 세월이 흘러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부러져 쓰러진 채 방치됐는데 그것조차 자연스러운 풍경. 맑은 물에만 살며 수박향이 나는 은어는 9월 태어나자마자 동해로 나갔다 겨울을 넘겨 3∼4월이면 이곳으로 돌아오는데 은어 떼가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모습이 장관이다. 왕피천은 아직 곳곳에 두꺼운 얼음이 덮여 있지만 물살은 활기차게 흐른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왕피천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위에 서서 사진을 찍으면 낭만적인 추억을 건져 올린다. 맑은 왕피천은 마을을 한 바퀴 휘돌아 나간다. 또 남수산과 통고산 지맥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사시사철 청정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계곡 트레킹에 이만큼 좋은 곳이 또 있으랴.

굴구지마을 왕피천 트레킹
청암정 계곡

#청암정 오르니 산수화 풍경이 쉬어가라 말하네

 

굴구지마을에선 소박하지만 8경을 만나는데 왕피천, 금강송, 구산리 삼층석탑, 이심소, 청암정, 칠성봉, 용소, 학소대다. 그중 굴구지마을에서 3구간 천천길을 따라 2㎞쯤 걷다 만나는 청암정이 압권이다. 정자 앞에 서자 “와!” 하는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비스듬하게 세로로 포개진 지층의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절벽 위에 쭉쭉 뻗은 운치 있는 금강송. 그리고 그 밑으로는 굽이치며 흐르는 왕피천이 억겁의 시간 동안 절벽을 깎고 깎아 기기묘묘하게 다듬은 바위 조각들까지. 방금 신선이 놀다 간 듯한 절경에 입을 다물 수 없다. 여기에 서쪽 송로봉, 남쪽 칠성봉, 동쪽 향로봉이 더해져 빼어난 경관을 완성한다. 정자에서 내려다보면 물은 아주 짙은 녹색 에메랄드 보석을 쏟아부은 듯한데 내려가서 보면 바닥이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깨끗하다. 맑은 물에만 사는 은어가 산란을 할 만하다. 둥글넓적한 돌멩이가 많아 물수제비 뜨기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청암정 계곡
청암정 매화

일반적인 정자와 달리 단층으로 지은 청암정에 살림도구가 놓인 것을 보니 누가 거주하나 보다. 원래 청암정은 1750년경 원남면 매화리에 살던 윤상건의 동생 윤상일이 형을 위해 건립했다는 얘기 정도만 전해지고 자세한 사연은 알 수 없다. 유실됐던 정자는 1989년 후손 윤현수씨가 사재를 들여 복원했다. 기와지붕 뒤에서 자라는 몇 그루는 매화나무로 2월인데도 성급하게 하얀 꽃망울을 터뜨렸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성급한 꽃 덕분에 여심은 싱숭생숭해진다.

 

 

청암정 계곡

3경 구산리 삼층석탑은 2층 기단을 갖춘 통일신라시대 탑으로 규모는 작지만 신라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이 잘 담겨 있다. 건축 시기는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이곳에는 청암사가 있었지만 통일신라시대에 불에 타 석탑만 남은 것으로 전해진다. 1968년 복원된 석탑은 보물 제498호이며 2006년 주변 발굴 조사에서 금동 불상 및 철마, 중국 동전, 명문기와, 자기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됐다. 마을 사람들이 탑을 보고 소원을 빌어 마을 이름이 ‘탑동’이다. 4경 이심소는 하얀 바윗돌이 움푹 패 물이 맑고 깊은데 엄청나게 큰 이무기(이심)가 살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8경 학소대는 학이 노닐던 곳으로 많은 선비가 절경에 취해 시를 지었다고 한다.

 

불영사 전경
불영사 약수

#봄을 준비하는 고즈넉한 불영사

 

왕피천 유역 생태탐방로 1-1 구간에선 여성 스님만 기거하는 비구니 사찰 불영사를 만난다. 입구에서 1㎞ 남짓한 흙길을 따라 계곡의 비경과 울창한 금강송숲을 즐기며 걷다 보면 등장하는 불영사는 깊은 산속이라 아직 한겨울이다. 맑은 날이면 불영사를 둘러싼 봉우리에 있는 부처 형상 바위가 연못에 비치는 풍경을 보러 많은 여행자가 찾는다. 안타깝게도 연못은 꽁꽁 얼어 물 위에 뜬 부처바위는 볼 수 없다. 대신 겨울이라 맨 가지 사이로 드러난 부처바위가 아주 또렷한데 석가모니가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란다.

 

불영사 부처바위
불영사 대웅보전과 삼층석탑

651년(신라 진덕여왕 5년) 의상대사가 지은 고찰로, 길을 가다 잠시 쉬는데 연못에 부처의 형상이 비쳐 불영사(佛影寺)로 지었다. 인현왕후와 얽힌 얘기도 전해진다. 장희빈의 계략으로 폐위된 인현왕후는 복위를 기다리다 지쳐 자살하려다 꿈에 불영사에서 왔다는 스님이 나타나 며칠만 기다리면 복위된다고 예언했다. 실제 남인이 실권하는 갑술옥사(甲戌獄事)로 서인 소론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인현왕후는 왕후에 복위했다. 이에 인현왕후는 불영사 주지스님의 얼굴을 그려 보내라고 지시했는데 꿈에 본 스님과 같았고 숙종은 19리에 걸친 땅을 불영사에 하사했다.

 

불영사 대웅보전 거북이머리 석상
대웅보전 천정 거북이 몸통

대웅보전 앞 기단에 두 마리 거북 석상이 있는데 기단에 깔린 형상으로 머리만 있고 몸통이 보이질 않는다. 불영사가 있는 자리가 화산(火山)이라 불기운을 누르기 위해 거북 석상을 만든 것으로 전해지며 몸통은 대웅보전에 들어가면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서까래에 아주 작게 그려져 있어 잘 찾아봐야 보인다. 불영사에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문화재가 많다. 임진왜란도 버틴 조선 중기 목조건물 응진전을 비롯, 대웅보전, 후불탱화인 영산회산도가 보물로 지정됐다.

 

불영사 응진전
산수화같은 광천교 불영계곡 설경

근남면 행곡리에서 금강송면 하원리까지 15㎞에 이르는 불영사 계곡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하다. 기암괴석이 펼쳐지고 푸른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봄에는 연두색 생명력이 움트고 가을에는 불타는 단풍이 화려하다. 겨울엔 눈 덮인 계곡이 한 폭의 산수화를 펼쳐 보인다. 의상대, 창옥벽, 조계등, 중바위, 거북돌, 소라산 등 온갖 전설을 담은 절경이 끊임없이 펼쳐지며 선유정 전망대에 오르면 계곡이 S자로 휘어지며 흐르는 멋진 풍경도 만난다.


울진=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