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디스크자키(DJ)’로 꼽히는 최동욱 옹이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턴테이블로 음악을 틀고 곡목을 소개하는 역할인 ‘DJ'라는 명칭을 국내에 굳힌 주인공이자, 대한민국 최초의 라디오 DJ라는 타이틀을 보유했다.
18일 방송가와 대중음악계에 따르면 고인은 평소 앓던 지병으로 전날 별세했다.
최 옹은 1936년생으로,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60년대 초 종로 2가에 위치한 뮤직홀 ‘디쉐네’(Die Shone) DJ를 맡아 음악 관련 일을 시작했다. 이는 국내 뮤직홀 DJ의 효시다.
이후 ‘메트로’, ‘카네기’, ‘쎄시봉’ 등 유명 뮤직홀 DJ를 거쳤다. 그는 턴테이블로 음악을 틀고 곡목을 소개하는 역인 ‘DJ’라는 명칭을 국내에 굳힌 주인공이다.
최 옹은 뮤직홀 DJ로 일하면서 KBS 라디오의 주간 팝송프로그램 ‘금주의 히트퍼레이드’ 구성작가 겸 진행자 일을 병행하다 1963년 동아방송(DBS) 공채 1기 PD로 입사했다.
이후 1964년 10월5일부터 동아방송 ‘탑튠쇼’의 제작과 진행을 맡아 국내 방송 DJ 시대를 열었다. 뮤직홀이 아닌 방송에서 음악을 선곡하고 전문적인 해설까지 더해준 DJ 시스템의 도입된 신호탄이었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는 이 해를 국내 DJ 탄생 원년으로 삼고 있다.
최 옹에 이어 이종환, 피세영, 박원웅, 황인용, 김기덕, 김광한 등의 DJ들이 1980년까지 전국적인 인기를 누렸다.
최 옹은 이밖에도 라디오 방송에서 DJ로서 선구자적인 역을 했다. 1960년대 동아방송 ‘세시의 다이얼’에선 국내 생방송 처음으로 전화로 음악 신청을 받았고, 1970년 방송한 동아방송 ‘영시의 다이얼’은 심야 생방송의 시초다.
그는 1970~80년대에는 서울신문, 스포츠동아 등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특히 레저 분야도 담당했는데, 자동차·운전 기술 등의 칼럼으로 유명했다. 자동차와 관련된 책도 10여 권이나 펴냈다.
최 옹은 1991년에 미국으로 이주해 로스앤젤레스(LA) 미주한인방송의 소규모 라디오 방송국 사장을 지냈고, 2010년 설립된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초대회장을 맡기도 했다. 2019년에 ‘3시의 다이얼’ 방송 55주년을 기념한 대공연도 열었다.
유족으로 부인 최승수 씨와 아들 성원·성기 씨 등을 남겼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6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0일 오전 5시20분,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벽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