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구나 매화로다/ 어야 더야 어허 야/ 에헤디여라/ 사랑도 매화로다.”(이춘희)
“코끝이 시큰해지는/ 아직은 이른 봄날/ 여린 꽃잎 같은 너/ 내겐 사랑이로다.”(이한철)
지난 3일 디지털 음반으로 발매된 국립국악원의 ‘생활음악 시리즈 22집; Part Ⅱ’에 실린 ‘매화타령’의 일부다.
이춘희(76·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보유자) 명창과 가수 이한철(51)이 만나 전통과 팝(대중음악)을 조화한 듀엣곡이다. 이 명창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요 ‘아리랑’이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지정될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심사 무대에 올라 ‘아리랑’을 시원하게 불러 심사위원과 각국 대표단의 갈채를 받는 등 유네스코 유산 등재에 크게 기여했다. 이한철은 ‘괜찮아 잘 될 거야’ 등의 노랫말과 함께 국민 격려송으로 유명한 ‘슈퍼스타’를 만들고 부른 싱어송라이터다. 앞서 지난해 발매된 21집 제작에도 참여한 그는 22집(Part Ⅰ∼Ⅳ 총 17곡)에서 ‘매화타령’을 포함해 Part Ⅱ에 수록된 ‘싸름’, ‘이야홍타령’, ‘배꽃타령’과 오는 4월 발매 예정인 Part Ⅳ 4곡을 모두 작곡했다.
‘매화타령’은 남녀 간 상사(相思)의 정을 읊은 동명의 경기민요에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를 더해 세련된 팝으로 재창작한 곡이다. 이 명창의 낭랑한 소리에 이한철의 부드러운 음색이 포개지고 섞인 노래는 귀에 감기는 맛도 일품이다.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에서 두 사람을 만나 이번 곡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해 11월 녹음실에서 처음 본 뒤 이날 두 번째 본 거라고 한 둘은 이한철의 제안을 이 명창이 흔쾌히 수락하면서 녹음하게 됐다고 한다.
이한철은 “(국악의 생활화라는 음반 취지에 맞춰) 사람들이 많이 듣고 활용할 수 있는 국악이 되도록 좀 더 팝이나 가요 범주에도 들어갈 만한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며 “선곡을 하러 많은 민요를 유튜브로 듣다가 선생님이 부르는 ‘매화타령’이 맘에 들어 ‘직접 불러주셨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 명창은 “평생 국악만 하고 살아왔는데 (민요를 가요처럼) 편곡해서 노래한다는 아이디어가 굉장히 신선했다”면서 “젊은 사람과 이런 음악을 한다는 것도 너무 좋았다”며 웃었다.
서로 처음 만나 진행한 녹음은 단 한 번 만에 끝났을 만큼 완벽했다. 가수 겸 작곡가로 음반 녹음 경험이 많은 이한철도 놀랄 수밖에 없는 경험이었다. “만화가들이 중심인물을 그리고 나서 배경을 그리는 방식처럼 선생님이 원래 부르시던 ‘매화타령’에다 (어울리는) 풍경을 그려 넣는 기분으로 곡을 만들었어요. 녹음 스튜디오를 3시간 반가량 빌리기로 하고 오전 10시에 시작했는데 한 번 부르고 15분 만에 끝났습니다. 그 전에 편곡된 ‘매화타령’을 들어보고 오시도록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예상 못 했어요. 선생님께서 맞춤옷을 입은 듯 완벽하게 노래하셔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너무 빨리 녹음이 끝날 경우 스튜디오 관계자들도 당황스러워할까 봐 이 명창에게 요청해 두 번 더 부른 뒤 10시30분쯤 마쳤다고 한다.
작업을 마친 소감으로, 두 사람은 “진짜 전통만 해왔었는데 이렇게 해보니 재밌고 되게 마음에 들었다”(이 명창), “‘내 선택이 맞았고, 선생님과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이한철)며 흡족함을 표시했다.
이 명창은 바로 이한철에게 “(음악 만들 때 필요하면) 언제든 콜하세요”라고 해 웃음을 안겼다. 이어 “‘매화타령’처럼 정형화된 민요가 아니라 토막 낸 가사들을 엮은 ‘휘모리잡가(빠른 장단으로 부르는 민요)’로 리드미컬한 팝 음악을 만들어도 참 좋을 것 같다”며 휘몰이잡가를 몇 소절 들려주기도 했다.
소중한 연을 맺은 명창과 가수는 우리 음악의 명맥이 죽 이어지고 저변이 확대되길 바라는 마음도 같았다.
이 명창은 “나는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이지만 전통만 고집해선 안 된다고 본다. 이렇게 우리 민요를 다양하게 연구해 현대에도 어울리도록 하는 사람도 많이 나와야 국악 대중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나는 늦어서 어렵겠지만) 그런 후배나 제자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열심히 지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한철은 “목소리만으로 듣는 사람의 밑바닥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수 있는 국악의 힘과 에너지는 엄청나다”며 “사람들이 국악의 매력을 느끼고 접하는 경로가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 나도 한 경로를 열고 있는 거라 생각하고 선생님이 주신 숙제를 잘 풀어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