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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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제한 지워지고 노면표시도 제각각…운전자 혼란 부르는 ‘어린이 보호구역’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초등학교 인근 살펴보니

속도제한 표시 ‘빨·흰·검’ 사용이 원칙
일부 구간은 흰색만 사용… 규정 어긋나
규격·형식도 임의대로 설치한 곳 많아
“교통사고 땐 분쟁 소지 될 수도” 우려

‘어린이 보호구역 3….’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서교초등학교 인근 폭 7m 도로에 새겨진 어린이 보호구역 속도제한 노면표시는 애초 ‘(30)’이었을 숫자의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지워져 있었다.

이날 마포구 서교·성산초교 인근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살펴본 안내·노면표시 일부는 행정안전부의 ‘어린이·노인·장애인 보호구역 통합지침’과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기준에 완벽히 들어맞지 않았다. 보호구역 안내표지에 대한 무관심이 빚은 민낯이다.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서교초등학교 인근 폭 7m 도로에 새겨진 어린이 보호구역 속도제한 표시. 거의 지워져 애초 ‘(30)’이었을 숫자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다. 김동환 기자

◆바탕색은 안내표지 규정에 어긋나고…노면표시도 제각각

“‘100m’라는 글자를 빼야 하고, 흰색이 포함된 안내표지 바탕도 규정에 맞지 않네요.”

강수철 도로교통공단 경영지원본부장은 ‘어린이 보호구역, 여기부터 100m, 속도를 줄이시오’라는 서교초 인근 어린이 보호구역 시점(始點) 안내표지(사진2)의 적절성을 평가해달라는 요청에 행안부 통합지침을 근거로 이처럼 답했다. 강 본부장은 안내표지 바탕은 황색(한국산업규격 기준 색 표기 ‘10YR 7/14’)만 쓰도록 한 지침 규정을 설명하면서 문구도 ‘어린이 보호구역, 여기부터, 속도를 줄이시오’로 수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3일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실 주최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안전한 스쿨존 조성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어린이 보호구역 내 표지판 문제와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지방자치단체의 높은 관심을 촉구했던 강 본부장은 과거 행정안전부 통합지침 제작에도 기여한 바 있다.

가로·세로 ‘200×280㎝’ 규격이어야 하는 속도제한 노면표시에도 문제가 있었다.

지난해 개정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30) 노면표시 테두리는 적색, 원 안의 바탕과 글자는 각각 흰색·검은색이어야 한다. 글자와 테두리가 모두 흰색인 노면표시가 종종 눈에 띄었는데, 관련 규정에 어긋난 셈이다.

성산초 인근 왕복 4차로 도로의 어린이 보호구역 시점 안내표지는 ‘어린이 보호구역/여기부터 속도를 줄이시오’라고 적혀 관련 통합지침을 지키기는 했다. 다만 가로·세로 ‘230×320~500㎝’ 규격의 ‘어린이/보호구역’ 두 줄 노면표시를 규정한 시행규칙과 달리 현장에는 ‘어린이/보호/천천히’가 세 줄로 나눠 도로에 새겨졌고, (30)도 바닥에 보이지 않았다.

강 본부장은 “‘어린이/보호구역’ 두 줄로 노면표시를 설치해야 한다”며 “‘어린이/보호/천천히’는 운전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고 지침과도 다르다”고 강조했다.

통합지침은 (30) 안내표지와 노면표시로 운전자 주의 환기가 어려운 장소에서 보완을 목적으로 ‘천천히’라는 노면표시를 쓸 수 있다고 밝힌다.

보호구역 노면표시는 시점부에서 차로별로 반드시 설치하고 규격·형식을 임의대로 바꾸지 말아야 한다. 시점 판단에 혼란을 줄 수 있어서 운전자 시선을 기준으로 안내표지보다 먼저 노면표시가 나오게 하는 것도 금지다.

◆“기준 안 지키면 운전자 혼란 야기하고, 보호구역 인정 여부 분쟁 소지 될 수도”

현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에서는 일찌감치 지자체를 상대로 어린이 보호구역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자체의 어린이 보호구역 정기 점검을 골자로 한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안’을 지난해 1월 대표 발의하고 “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어린이 보호구역 교통안전시설로 어린이 보호 효과가 떨어지고 있다”고 그 배경을 밝혔다.

보호구역 신규 지정 시 설계·준공 단계에서 보호시설의 규정 준수 여부를 확인하고, 과거에 지정된 보호구역은 안내표지 등을 3년마다 점검해 어린이에게 안전한 통학환경을 조성하자는 제안도 더했다.

국회 행안위 박규찬 전문위원은 개정안 검토보고서에서 “어린이 보호구역 내 교통사고로 인한 어린이 치사상죄는 가해자의 가중처벌을 고려하면 교통안전시설 등의 체계적인 운영·관리가 바람직하다”고 그 취지를 긍정 평가했다.

박 의원은 2021년 도로교통공단에서 받은 ‘어린이 보호구역 내 지침 미준수 불량 시설물 설치’ 관련 자료에서 보호구역 지침에 어긋나는 사례가 확인됐다며, 운전자 혼란 야기와 보호구역 인정 여부를 다투는 분쟁 소지가 될 수도 있다고도 우려한 바 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