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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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때 평양 입성한 노병 "전우의 나라 튀르키예 돕자"

화랑무공훈장만 세 번 받은 김기열 선생
"참전한 튀르키예 장병들 기억하고 있어"

구순의 6·25전쟁 참전용사가 지진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튀르키예(터키)를 ‘전우(戰友)의 나라’라고 부르며 훈장 수당의 일부를 피해 구호 성금으로 내놓아 감동을 자아낸다.

 

23일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에 따르면 튀르키예 지진 구호를 위해 이 단체가 회원들한테 모은 성금 약 9000만원 중에는 예비역 육군 하사 김기열(95) 선생이 기부한 돈도 포함돼 있다. 전북 전주에 살고 있는 선생은 6·25전쟁 당시 세운 공으로 화랑무공훈장 3개 등 도합 10여 개의 훈장을 받았다. 그의 기부금은 바로 이 훈장 수훈자에게 주어지는 수당을 아껴 쓰고 모은 돈이라고 한다.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가 23일 튀르키예 지진 구호를 위해 모은 성금 9000여만원을 ‘사단법인 따뜻한 하루’에 전달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네 번째가 김정규 무공수훈자회 회장, 오른쪽 네 번째는 김광일 사단법인 따뜻한 하루 대표. 연합뉴스

선생은 무공수훈자회에 성금을 내며 “6·25전쟁에 참전한 튀르키예 장병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튀르키예를 전우의 나라라고 부른 선생은 “하루속히 어려움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에서 모금에 동참했다”고 덧붙였다.

 

튀르키예는 6·25전쟁 당시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연인원 2만여명의 병력을 한국에 보내 우리를 도왔다. 북괴군, 중공군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1000명 이상의 전사자가 발생했으며, 그중 절반에 가까운 460여명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묻혀 있다. 한국인들이 튀르키예를 ‘형제의 나라’, ‘형제국’ 등으로 부르며 각별한 애정을 느끼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선생의 기부가 더욱 뜻깊은 것은 그가 6·25전쟁 당시 국군의 평양 입성에 앞장선 전쟁영웅이기 때문이다. 김제에서 태어난 선생은 1950년 6월25일 북한의 기습남침 당시 이리(현 익산)의 농림학교 학생이었다. 전쟁 발발 1개월 만에 학업을 중단하고 학도병으로 입대했다. ‘칠성부대’란 별칭을 지닌 육군 제7사단에 배치된 그는 낙동강·포항 전투를 비롯해 대구 팔공산 전투, 서울 수복 전투, 평양 탈환 전투 등 주요 전투를 치렀다. 특히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본격적으로 북진을 하던 시기 ‘평양을 점령하라’는 임무를 받은 7사단 소속으로 1950년 10월18일 국군 장병 가운데 가장 먼저 평양 땅을 밟기도 했다. 7사단이 배출한 ‘6·25 전쟁영웅 3인’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지금도 사단 후배 장병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다.

예비역 육군 하사 김기열 선생

끝내 조국 통일을 못 보고 1954년 7월 하사를 끝으로 전역한 선생은 공무원 생활을 오래했다. 무공수훈자회 전주시 지회, 전주시 재향군인회 등에서 열심히 활동하며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해왔다.

 

한편 무공수훈자회는 선생이 낸 성금을 포함해 모은 돈 총 9000여만원을 이날 ‘사단법인 따뜻한 하루’에 전달했다. 무공수훈자회는 “회원 2885명이 훈장 수당과 유족연금 등으로 십시일반 모금에 동참했다”고 전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