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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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는 확 줄고 툭하면 의료분쟁… 분만의료기관 4년 새 80곳 폐업 [심층기획-붕괴 위기 필수의료 살리자]

아이 낳을 곳 없는 소도시 주민들

전국 250개 시·군·구 중 42% ‘분만 취약’
정부, 산부인과 분만 수가 인상안 발표
현장 “인력·시설 유지비론 턱없이 부족”

강원 철원군은 3년 전 자체 예산을 투입해 철원병원에 산부인과를 개설했다. 하지만 이용률은 저조하다. 지난해 이 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한 산모는 31명. 철원군보건소에 등록된 산모 271명 중 11%만이 지역에서 출산한 것이다. 타지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한 산모는 “의사나 장비·시설 부분이 미덥잖고 무엇보다 여성 의사 선생님이 없어 진료받기가 꺼려진다”고 말했다.

울산의 한 종합병원 산부인과는 10년 전쯤부터 분만 등의 산과 진료는 하지 않고 부인과 진료만 한다. 환자들이 병원에 오지 않아서다. 병원 관계자는 “지역 소아환자는 아동전문병원을, 산모들은 산후조리원과 연계된 산부인과를 찾는다”며 “많은 돈을 들였는데도 환자가 오지 않으니 병원 입장에선 해당 과를 없애는 게 낫다”고 말했다.

한 시민이 유모차에 유아를 태우고 산부인과를 지나는 모습. 뉴스1

산부인과는 저출생 추세와 빈번한 의료분쟁 등으로 전공의들이 기피하는 진료과목 중 하나다. 아이를 낳는 산모가 크게 감소한 데다 잔뜩 줄어든 ‘파이’를 대도시 병원들이 차지하다 보니 지역 병·의원들은 줄폐업하고 원정 출산은 일상이 된 상황이다. 2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2021년 분만의료기관 80곳이 감소했고, 이에 따라 전국 250개 시·군·구 중 42%(105곳)는 분만취약지로 분류된다.

이에 정부는 시·군 지역 분만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일정 정도의 수익 보전을 위해 지역수가(100%)와 안전정책수가(100%)를 지급하고 신생아실·모자동실의 입원료를 30% 인상한다는 내용의 ‘분만 기반 유지를 위한 지원 강화 방안’을 제시했다. 뇌성마비 등 분만 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액은 최대 3000만원으로 높이고, 국가 분담률 또한 70%로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지역 산부인과 의사들 반응은 시큰둥하다. 수가를 올리더라도 한 달 분만 인원이 5명도 채 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 달에 200만원 더 받겠다고 관련 인력과 시설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볼멘소리다. 산부인과의 기본 수가가 워낙 낮은 탓에 100%, 200% 인상으로는 현재 산부인과의 줄폐업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22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소아의료체계 개선대책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지역 산부인과 붕괴 위기의 주된 요인이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에 있는 만큼 정부가 지역별로 세분화한 지원대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지역민들이 원정 출산을 가지 않고 본인의 지역에서 분만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방 분만병원이 적자로 문을 닫지 않도록 파격적인 보조를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번 문 닫은 이후엔 ‘개원 지원’으로 몇 억원씩 준다고 하더라도 다시는 문을 열 수가 없다”며 “산부인과 문을 다시 여는 게 쉽겠는가, 망하지 않게 하는 게 더 쉽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정부의 조속하고 실효적인 지원을 촉구했다.


송민섭·정진수 기자, 철원·울산=박명원·이보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