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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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민연금 작년 투자 손실 최악, 지배구조 개선 시급하다

수익률 -8.22%, 79조6000억원 날려
최고 인재 영입·조직 혁신 서둘러야
연금특위, 개혁 초안 마련 지지 부진

국민연금이 지난해 사상 최대의 손실을 냈다. 어제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2022년 운용수익률이 -8.22%로 집계됐다. 1988년 국민연금제도가 도입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손실액이 79조6000억원에 달했고 적립금도 890조5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글로벌 금융 긴축과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내외 주식과 채권값이 이례적으로 동반 하락한 탓이 크다. 가뜩이나 기금이 2055년 바닥난다는데 막대한 손실로 그 시기가 앞당겨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기금운용본부는 “해외 주요 연기금과 비교해 성과가 상대적으로 양호했다”고 했지만 실상과는 거리가 멀다. 운용 규모가 세계 3위 수준인데 몸집에 비해 수익이 저조하다는 평가가 많다. 일본과 캐나다의 경우 수익률이 -4.5%, -5%에 그쳤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SWF에 따르면 2016∼2021년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연 6.0%로 글로벌 연금·국부펀드 30곳의 평균수익률(8.01%)을 크게 밑돌았고 순위도 26위였다. 정권과 정치권 입김에 좌우되기 쉬운 취약한 지배구조 탓이 크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위원장을 맡고 있고 위원들도 정부 인사 6명, 사용자 단체 3명, 노동계 3명 등 비전문가로 채워져 있다. 정치 논리에 국민연금 본사가 이전하면서 운용 인력까지 이탈했다. 국민 노후자금 관리가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이 와중에 국회 연금 개혁 작업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니 한숨이 절로 난다. 국회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는 어제 국회서 전체회의를 열어 특위에 제출할 보고안을 최종 논의했다. 보고서에는 개혁 초안 없이 연금 제도 전반에 대한 백화점식 정책 제안을 담을 것으로 전해졌다. 특위는 애초 1월 말까지 연금 개혁 초안을 만들어 국회에 보고해달라 요청했지만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정부가 10월 중 종합운영계획안을 마련한다지만 앞날은 어둡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연금 개혁이 정치 셈법에 휘둘려 좌초할 것이라는 우려가 가실 줄 모른다.

연금 개혁은 갈등 소지가 적은 수익률 개선부터 진척시키는 게 순리다. 수익률이 1%포인트 높아지면 고갈 시기가 8년 늦어진다. 기금 운용 지배구조를 전문성·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확 바꾸고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고급 인재 유치 등 조직 혁신도 서둘러야 한다. 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해야 보험료 인상과 수령 시기 연장 등 고통 분담 방안에 대한 대국민 설득이 가능하다. 2년 후 초고령사회가 현실로 다가오는데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