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의 정신은 ‘군주민수’예요. 국민 여론이 굉장히 중요하단 거죠.”
최근 책 ‘탄핵으로 본 미국사’를 펴낸 김병호 미국 변호사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 문제에 대해 “탄핵은 법리만 따져 협소하게 볼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군주민수는 백성은 물, 임금은 배란 뜻이다. 물과 배처럼 백성이 임금을 떠받들기도 하지만 화가 나면 뒤집을 수도 있단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 3당은 지난달 초 이태원 참사 대응 부실 책임을 물어 이 장관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이 장관 측은 탄핵 심판에서 참사에 대한 직접 책임이 없단 걸 강조하겠지만 헌법재판소는 보다 넓게 그의 책임을 봐야 한다는 게 김 변호사 설명이었다.
김 변호사는 지난달 28일 경기 성남시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어떤 경우든 헌재의 탄핵 결정에 국민 여론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이 같은 언급이 이 장관 탄핵소추에 대한 특정 결론을 염두에 둔 게 아니라 순전히 제도의 본래 취지를 고려할 때 도출되는 당위적 차원의 의견이라고 부연했다.
그가 탄핵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건 책 ‘탄핵으로 본 미국사’를 쓰면서라고 했다. 김 변호사가 미국 탄핵 역사에 대한 저술 작업을 시작한 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두 차례 탄핵소추를 접한 뒤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9년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2021년 국회의사당 난입 선동 사건으로 하원에 탄핵 소추됐다. 김 변호사는 “원래 미국 헌법을 대법원 판례로 해석하는 책을 쓰던 중에 그 뉴스를 보고 트럼프는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4년 임기 중 무려 두 번이나 탄핵소추를 당한 건가 하는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다”고 말했다. 미국 230여년 역사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하원 문턱을 넘은 건 트럼프 전 대통령 이전에 단 두 차례뿐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 개인에 대한 그런 관심은 자연스레 탄핵 자체, 그러니까 미국 헌법에 탄핵은 왜 들어갔는가 하는 의문으로 이어졌죠. 미국 탄핵사를 공부하다 보니까 분명해지는 게 있더라고요. ‘탄핵이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만 그치는 게 아니구나.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국민주권의 표상이구나’ 하는 확신이 생긴 거죠.”
김 변호사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조항이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게 만드는 게 바로 탄핵이라고 했다.
다만 한국과 미국의 탄핵 제도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당장 미국은 입법부인 상원이, 한국은 사법부인 헌재가 탄핵 심판을 한다. 미국 헌법을 만든 1787년 필라델피아 제헌회의에선 탄핵심판관할권을 상원에 두느냐, 사법부인 대법원에 두느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하나로 평가받는 알렉산더 해밀턴 미국 초대 재무부 장관은 상원의 탄핵심판관할권을 주장한 대표적 인물이다.
김 변호사는 심판기관이 입법부냐, 사법부냐보다 더 중요한 양국 간 차이가 있다고 했다. 그건 이들 심판기관이 탄핵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김 변호사는 “우리나라 헌재는 탄핵 대상 행위를 미국보다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 헌재는 탄핵 대상 행위를 ‘위헌 또는 위법 행위’로 규정한 적 있어요. 미국은 ‘중대한 범죄와 중대한 비행’을 모두 포함해요. 우려되는 건 우리 헌재가 ‘위헌’의 의미를 그저 ‘헌법 조항 위반’ 정도로 좁게 해석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거예요. 그건 탄핵 취지에 어긋난다고 봐요. 탄핵 목적은 범법행위 처벌이 아니에요. 국민이 맡긴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를 막고자 하는 거죠.”
헌재가 2021년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소추를 각하하면서 내놓은 논거에서도 탄핵에 대한 협소한 해석이 보인다는 게 김 변호사 주장이다. 당시 다수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이미 퇴임한 임 전 부장판사에게 파면을 선고할 수 없기 때문에 탄핵 심판을 진행할 이유가 없다고 봤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2차 탄핵소추 때 자신이 현직이 아니라는 사실을 들어 변론했다. 미국 상원은 이 변론을 대체로 기각했다.
“우리 헌재는 임 전 부장판사 사례에서 탄핵 목적을 공직자 파면으로만 본 거예요. 이런 식이면 임기 말에 비행을 저지르고 사임하는 공직자는 면죄부를 보장받는 거잖아요? 이건 탄핵의 본래 취지에 어긋나는 거예요. 탄핵의 진짜 목적은 파면보다 더 나아간 데 있어요. 공직자의 실정이나 비행을 방지하거나 끊어내는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