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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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파 사고 등 사회재난 대응 인력난… “3각 공조 체계 꾸려야” [연중기획-안전이 생명이다]

지역축제 다시 기지개… 제도 보완 지적

폭설·지진 등 자연재해 위주 조직 구성
대형사고 때 마다 인력 부족 대응 ‘쩔쩔’
엇박자 행정에 사고 피해 더 커지기도

코로나 때 빛 발한 민·관 의료협력처럼
중앙부처·공공·지자체 유기 대응 필요
중구난방 매뉴얼 통합·업무분장 시급
민간전문가 참여 유도할 보상 마련돼야
#지난해 12월26일 충북 옥천군 대청호 주변엔 겨울철 빙어낚시를 즐기기 위해 관광객들이 모여들었다. 이날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대청호 주변에선 아찔한 순간이 몇 차례 연출됐다. 이날 기준 대청호 가장자리 얼음 두께는 8㎝로 최소 안전기준인 20㎝의 절반도 미치지 못했다. 이에 군은 관광객을 막기 위해 공무원 16명을 비상근무조로 투입, 순찰에 나섰다. 큰 사고는 없었지만 이곳은 안전지대가 아니기에 긴장감은 그만큼 컸다. 일례로 4년 전 이곳에서 트랙터를 몰고 빙판을 치우던 주민이 대청호 얼음이 깨지면서 숨졌다.

#‘산천어 축제’로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을 동원하는 강원 화천군은 손꼽히는 겨울 축제 지역이다. 화려함 뒤엔 안타까운 인명피해 경험도 갖고 있다. 일례로 2020년에도 겨울 축제는 화려했지만, 축제가 마무리된 뒤 시설물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그해 4월21일 오후 5시쯤 80대 노인이 산천어축제장으로 내려가던 중 차량출입 통제용 차단기와 충돌해 도로에 넘어졌다. 강한 충격을 받은 이 노인은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7시간 뒤 숨졌다. 유족들은 “축제기간 이외에도 시민들의 안전통행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며 화천군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여러 해에 걸친 소송에서 유족은 지난 1월 승소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시설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라며 유족에게 75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2019년 4월 서울 여의도 윤중로가 분홍빛으로 만개한 벚꽃을 즐기려 찾아온 인파로 붐비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최근 지역 곳곳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3년 혹은 4년 만에 정상 개최된 각종 축제로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다. 각 지자체는 지역 축제의 성공적 흥행만큼이나 ‘사고 없는 축제’를 강조, 안전관리에 행정력을 집중했다. 지난해 10월29일, 158명이 숨지고 196명이 다친 ‘이태원 압사 참사’ 이후 국민적 관심이 바로 안전에 쏠렸기 때문이다.

◆최근 5년 축제 투입 소방력 ‘2만1106명’

일부 축제장의 경우 여전히 안전관리가 미흡한 상태로 행사가 진행됐다. 게다가 인명피해도 발생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세계일보가 7일 지역 소방본부로부터 제공받은 ‘지역 축제 소방력 투입 현황 및 현장활동 실적’에 따르면 최근 5년(2019년 1월∼2023년 2월) 동안 지역 축제에 투입된 소방력은 2만1106명에 달했다. 축제장에서 발생한 사건·사고로 진행된 구조·구급 활동은 948건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확산 기간(2020년 1월∼2022년)을 제외하면 2019년 한 해에만 2만명에 가까운 소방력이 지역 축제·행사장에 동원된 셈이다. 여기에 서울, 경기 등 일부 지역의 경우 지역 축제 소방력 투입·현장활동 실적이 집계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투입 인력과 현장활동은 더욱 늘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축제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안전사고가 끊이질 않자 지자체들은 앞다퉈 사회재난 관련 부서를 만들고 지역 축제 안전상황을 확인하는 등 안전 관련 자치법규 점검에 나서고 있다. 제도 보완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실제 운영되는 조직은 그 규모나 역할이 지역별로 다르다. 기존 자연재난 담당 업무 위주로 조직을 구축하되, 각종 축제·행사 등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담당하는 ‘사회재난’ 부서를 별도로 두는 형식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조직은 갖췄지만 인력 부족 등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강원도 한 지자체 사회재난 업무 담당자는 “각종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점검 등 명목으로 업무가 가중되고 있다”며 “재난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수십 명이지만 이 중 지역 축제나 행사 등 사회재난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행정안전부도 범정부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재난안전법 규정에 인파 사고를 추가하는 등 대규모 안전사고 대비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해당 업무를 담당할 지자체 인력 증원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중앙·지방·민간 재난에 공동 대응해야

전문가들은 사회·자연 재난이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게 발생한 점을 고려했을 때, 협업을 통한 체계적 관리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제언한다. 중앙·지방 정부 등 공공에서 전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경우도 많아 민간부문의 도움도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각종 사회·자연 재난 대응을 위한 공공과 민간 조직 간 ‘유기적 협업체계 구축’이 확실한 대안이라는 설명이다.

한국행정연구원에 따르면 기후변화 등 급격한 외부 환경의 변화로 재난 대응에서 여러 방식의 협업모델이 제안되고 있다. 일례로 2021년 3월에 강원도 폭설 당시 정보 공유와 보고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시의적절하게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다. 2016년 9월 경북 경주 지진 때에도 엇박자 행정이 비판받았다.

일선에서는 오랜 습관 때문에 유관기관 간 매뉴얼이 잘 작동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한 기초자치단체의 직원은 “교통통제나 폐기물 처리 등 특정 상황에 누가 어떻게 진행할지 규정이 있지만 우선 지자체에 떠넘기고 본다. 굳이 스스로 주도적으로 맡진 않으려 한다”고 토로했다.

부산불꽃축제가 열린 지난 2022년 12월 행사가 끝난 뒤 광안리 해수욕장 일대에서 관람객들이 한꺼번에 이동하고 있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정부 지침을 현장에서 수행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됐다. 중부지방 기준으로 역대 가장 긴 54일 동안 비를 뿌린 2020년 집중호우를 담당했던 공무원은 “행안부에서 예찰활동에 나선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해 황당했다. 우리도 위험에 처할 수 있는데, 지시사항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중앙부처·공공·지자체 간 협력이 절실하지만, 업무 범위 구분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매뉴얼의 통합·간소화 및 전문인력 확충이 요구된다. 한승헌 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관리계획 수립, 의사 결정, 문서 양식 등 재난 전반에 관해 실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의 충분한 사전 협의와 교육·훈련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어 “표준, 실무, 행동 각 단계별 체계 정비와 함께 가이드라인 경량화 및 전자문서화가 단기적 개선책”이라며 “이외 기관별 전담연락관 제도 신설로 현장에서의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는 한편 전문성 확보도 가능해진다”고 덧붙였다.

지난 2022년 7월 18일 대구 달서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보건소 관계자들이 코로나19 검사를 위해 찾아온 시민들을 안내하고 있다. 뉴스1

◆“코로나19 대구 집단감염 대응은 훌륭한 사례”

지역사회와 그 구성원들을 포괄한 민관 협력도 강조됐다. 앞서 대구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에 더해 빠르게 확산됐을 때 공공·민간, 다양한 협의체가 공동 대응한 게 대표적 우수사례로 꼽힌다. 대구시의사회의 자원봉사팀이 가동되면서 확진자에 대한 전화상담이 순조롭게 이뤄졌고, 병상 부족 사태를 겪는 입원대기 상태의 환자들이 숨지는 일도 없었다. 의료기관 책임보직자 합동 대책회의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중환자 이송이 원활히 진행됐다. 공중보건의들은 고위험 집단시설 환자의 방문검체를 도왔다.

전문가들은 해외의 모범적 사례에도 주목한다. 미국은 국가사건관리시스템에서 재난 발생 장소나 원인, 피해 규모와 관계없이 정부·비정부, 민간이 대응에 협력하도록 조정 방안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은 재난 대응 주체로서 국민의 책무를 법적으로 명시했다. 영국에선 자율영역시민보호포럼을 통해 민간도 입법, 지침 검토 및 개발에 참여시킨다.

한 부연구위원은 “민관의 원활한 협업을 촉진할 수 있는 물질·제도적 유인책 도입과 민간영역 참여가 핵심적이라면 적절한 보상 및 인센티브를 지급해야 한다”면서 “동시에 각계 전문가들이 중앙·지역 안전대책본부 같은 핵심적 의사 결정과 조정 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외연 확장도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춘천·인천·청주=박명원·강승훈·윤교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