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러 침공 2년… 韓, 우크라에 방어용 무기 지원 불가피” [차 한잔 나누며]

권기창 前 우크라이나 대사

“2023년 봄이 전쟁 중대 분기점 관측
尹 나토 언급 ‘가치 외교’ 시험대
우회 수출 등 러 반발 사전 대비
국내 기업, 재건사업 기회 올 것”

2021년 6월 권기창 당시 주(駐)우크라이나 대사는 2년간 근무한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떠났다. 그리고 6개월 뒤인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는 기어이 전쟁터로 변했다.

 

이후 1년이 지났다. 권 전 대사는 “전쟁이 시작될 시점만 해도 1년 넘게 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정권이 이토록 성공적으로 항전할 것이라고는 서방 국가, 특히 미국도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권 전 대사의 귀임 직전까지 반복되던 러시아군과 벨라루스군의 공동 훈련 역시 실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어질 징후로 보는 관측은 적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예상을 벗어난 일의 연속이었다.

2019∼2021년 주우크라이나 대사를 지낸 권기창 전 대사가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방어용 무기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또 준비해야 할 때가 됐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지난 2일 서울 양재동 국립외교원에서 만난 권 전 대사는 전쟁 향방에 대해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돈바스 지역 중심으로 밀고 당기는 전투가 금년 말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관측했다. 우크라이나든, 러시아든 상대를 압도할 만큼의 군사력은 갖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그럼 전쟁 2년차인 2023년 한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요구받게 될까. 권 전 대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란 점을 상정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불가피하다”는 표현도 썼다. 단, 공격용 무기가 아닌 방어용 무기에 한해서다. 권 전 대사는 “방어용 무기라고 살상무기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러시아의 반발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분출할 수 있는 러시아의 반발, 특히 한국에 대한 자원 수출규제 등 경제제재에 대해선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국내 기업들과의 사전 협의를 통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폴란드 등을 통한 우회 수출이나 우회 지원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이 방안이 불가능한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고 권 전 대사는 제안했다.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러시아의 반발이나 남북 대치 상황이라는 위험을 감수하고 무기 지원을 준비해야 하는 ‘불가피한 이유’에 대해 권 전 대사에게 물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한국과 나토가 보편적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빨리 그 말이 돌아올지 몰랐을 것’이라고 보도한 지난달 영국 이코노미스트 기사를 예로 들었다. 말하자면, 서방은 이 문제가 “윤석열정부가 지향해 온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가치 외교가 시험대에 든 것”으로 인식한다는 얘기다. 권 전 대사는 “전쟁 향방이 이번 봄 전투에서 갈릴 수 있는 분기점이라는 분석이 많다”며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정부가 고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4월에는 한·미 정상회담과 나토 외교장관 회의, 6월에는 나토 정상회의가 차례로 예정돼 있다.

 

권 전 대사는 올해 정부가 1억3000만달러(약 1688억원)를 공여할 예정인 인도적 지원에 대해 “우크라이나가 겨울이 굉장히 긴 만큼 발전기 등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우크라이나 측에서 공개적으로 한국에 지뢰 제거를 요청한 바 있는데, 그는 “우리 공병 부대가 전쟁 지역에 직접 갈 수 없는 만큼 비정부기구(NGO)를 통한 지뢰 제거 예산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거액이 드는 인프라 구축 지원은 무상원조보다는 수출입은행을 통한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형태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권 전 대사는 “파괴된 각종 인프라 시설을 재건하는 데 약 500조원이 투여될 것이라는 통계가 있었다”며 “우리 기업들이 참여할 사업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직업외교관인 권 전 대사는 우크라이나에서 정년을 맞이했다. 그는 “키이우, 르비우, 오데사 모두 저에게 아주 낯익은 풍경과 건물들인데 그런 곳들이 폭격당해 부서져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며 “우크라이나 땅에서 전쟁이 사라지고,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부패 등 고질적 문제들을 해소해 진정한 독립국가로 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