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배구는 안 봐요.”
최근 다른 신문사 기자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열 살 난 딸아이와 함께 하객으로 온 또 다른 동기 기자를 만났다. 그 딸은 아빠의 직업이 스포츠 기자이다 보니 프로배구 중계도 열심히 보고 유소년 배구교실에서 직접 배구도 배우고 있다고 했다. 문득 궁금증이 들어 “그럼 좋아하는 선수는 누구야?”라 묻자 “김수지 선수랑 강소휘 선수… 또 누가 있었지”라고 답했다. 남자 선수의 이름은 나오지 않길래 “오율아, 남자배구는 안 보니?”라고 물었더니, “남자배구는 안 봐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지난 1월 말 열린 프로배구 올스타전을 취재하러 갔다가 줄 서 있는 팬 10여명에게 ‘어느 선수를 보러 왔나요?’라고 물었을 때 모두 여자 선수들의 이름이 나오는 걸 보며 여자배구의 인기가 남자배구를 뛰어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린아이도 그렇게 얘기하는 걸 보며 새삼 놀랐다.
2012년 1월 수습기자 신분으로 체육부에 배치받은 뒤 꼬박 5년을 체육부에서 생활한 뒤 2017년 1월 다른 부서로 옮겼다. 사회부와 경제부에서 6년을 보내고 다시 돌아온 체육부에서 느낀 여러 감정이 있는데,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체육부 1기(2012~2017) 시절, 스포츠 기자들은 여자배구의 별칭을 ‘한편’이라고 부르곤 했다. 하루에 남자배구와 여자배구가 1경기씩 열리는데, 지면에 6매로 배구 기사를 쓴다고 가정하면 5매를 남자배구에 할애한 뒤 여자배구는 ‘한편, OO에서 열린 여자부 경기는 □□팀이 △△을 3-1로 이겼다’라고 한 줄로 쓰고 끝맺음하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당시엔 남자배구의 인기는 물론 기자들 사이에서 위상이 훨씬 높았다.
배구 담당 기자들의 관심이 남자배구에 쏠려있던 그 시절, 나만의 ‘블루오션’을 개척하기 위해 다른 기자들보다 조금 더 여자배구에 관심을 갖고 취재했었다. 이런 나를 두고 타사 선배들이 “너는 왜 여자배구를 왜 이리 열심히 취재하느냐”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이제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식빵언니’라 불리며 걸크러시의 상징이 된 ‘배구여제’ 김연경(35)이 이끄는 여자배구 대표팀이 2021년 도쿄에서 올림픽 4강 신화를 써내면서 여자 배구는 명실상부 최고 인기 겨울스포츠가 됐다. 김연경뿐 아니라 김희진, 이소영, 박정아 등 도쿄를 불태웠던 선수들도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올 시즌 V-리그 매진 사례만 봐도 남자배구와의 차이가 극명하다. 여자부는 17번이나 매진된 반면 남자부는 단 2번에 불과하다.
다만 지금의 뜨거운 인기가 금방 사그라질까 두렵기도 하다. 여자배구 인기의 일등공신 김연경은 올 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고민하고 있단다. 17번의 매진 중 15번이 그가 소속된 흥국생명 경기였다는 점은 여자배구 열기가 김연경이라는 ‘브랜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김연경이 국가대표를 은퇴한 이후 여자배구 대표팀의 경쟁력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당장 내년으로 다가온 2024년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도 쉽지 않다. 지금의 인기가 사상누각이 되지 않도록 배구계가 ‘포스트 김연경 시대’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