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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열차…중국과 동남아국들 열망의 교차점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해양부 동남아의 ‘뒤늦은’ 고속철 건설
인도네시아, 태국 초스피드 ‘붐’ 이루나
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 고속철 가능성
프랑스·독일 대신 중국·일본 뛰어들어
약한 지반에 선박·항공업 발달은 경쟁력 약점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와 서부 자바 반둥을 연결하는 고속열차가 7월부터 달린다. 애초 6월 개통 예정이었지만, 현재 예상대로라면 7월부터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2개 대도시 사이의 142km 거리를 고속철도가 주파하게 된다.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 건설은 중국의 참여로 가능하게 됐다. 우여곡절이 없었던 게 아니다. 콤파스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반둥 인근 건설현장에서 노동자 2명이 사고로 숨지기도 했다. 기관차의 제동장치 오작동과 기관사의 실수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을 수 있지만, 중국과 인도네시아 정부는 공식적으로 정비 차량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양국 관계자들은 이 사고가 차후 철도 개통에 불안전 요소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시내를 배경으로 해서 작성한 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 구간 고속철도 이미지. 세계일보 자료사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반둥 노선 7월 개통…태국·베트남도 적극적

 

고속철도 공사를 위한 컨소시엄 KCIC(중국·인도네시아고속철도)은 사고 이후 공사를 재개했지만, 인도네시아 철도청(KAI)은 사고 여파를 고려해 개통을 1개월 연기했다. 일부에서는 7월 개통에도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지만, 인도네시아 정부 안팎에서는 최고 시속 360km를 자랑하는 고속철도의 7월 개통은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자카르타와 반둥을 잇는 고속철도가 개통하게 되면 동남아 최초의 고속철도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두 지역의 이동 시간은 기존 3시간에서 40분으로 줄어들게 된다. 고속철도 건설 수주전에는 애초 일본 등도 뒤어들었지만, 중국이 비용의 상당 부문을 부담하기로 하면서 중국·인도네시아 컨소시엄이 공사를 맡게 됐다. 애초 계획보다 연기됐다가 2018년 6월 착공된 공사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게 됐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구간을 제2도시 수라바야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자카르타∼수라바야 구간은  750km이다. 

 

고속철도 건설 사업엔 태국 정부도 적극적이다. 태국에서는 수도 방콕과 북부 치앙마이를 연결하는 고속철도 건설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 사업엔 일본이 참여한다. 태국국영철도(SRT) 등 관련기관은 방콕∼치앙마이 고속철도 건설 사업성 등을 살피는 타당성 조사 결과를 검토한 상태다. 방콕과 제2도시 치앙마이를 잇는 구간은 688km이다. 사업은 2차례로 나눠서 진행된다. 1단계는 방콕∼핏사눌룩의 380km구간이며, 2단계는 핏사눌룩∼치앙마이 290km구간이다.

 

베트남도 내륙을 종단하는 고속철도 건설이 타당한지를 연구하고 있으며, 일본 등에 지원을 요청한 상태라고 지난 1월 베트남 언론이 전했다. 팜 민 친 베트남 총리 당시 자국을 방문한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에 투자를 요청했다. 베트남 정부는 하노이~빈, 호찌민~냐짱을 잇는 시속 320~350㎞의 종단 고속철도에 최대 648억 달러가 들 것으로 추산했다.

 

싱가포르를 찾은 외국 관광객들이 1월 27일 관광명소인 머라이언파크에서 머라이언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싱가포르=로이터·연합뉴스

◆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 구간 재추진 가능성

 

동남아에 고속철도가 들어설 곳으로는 물류와 교통의 요지라는 장점을 지닌 싱가포르도 손꼽히는 곳이다. 문제는 도시국가로 면적이 좁은 한계이다. 싱가포르로서는 이웃나라 말레이시아와 연결하는 고속철도를 건설하는 게 확실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양국은 이전에도 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 구간에 고속철도를 건설하자는 데 합의하기도 했다. 사업은 수년 전 말레이시아 정부가 경제성 등을 이유로 취소된 상태이다.

 

애초 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 고속철도 건설 합의는 10년 전인 2013년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와 나집 라작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 사이에서 이뤄졌다. 목표대로 2026년 고속철도 건설이 마무리되면 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 구간 350km 거리의 이동시간이 기존 6시간 30분에서 1시간 30분으로 단축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2021년 새해 벽두 양측은 사업을 취소했다. 당시 말레이시아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을 이유로 고속철도 건설과 관련해 일부 수정을 요구했지만, 싱가포르가 거부하자 보상금을 지불하고 계획 자체를 철회했다. 

 

이랬던 분위기는 최근 다시 바뀌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 고속철도 건설에 유연한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안토니 로크 말레이시아 교통부 장관은 지난 8일 기자들에게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가 고속철도 건설 논의에 문호를 개방한 상태라고 밝혔다. 정부 예산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면 어떠한 이야기도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가 정부 차원에서 고속철도 건설 재추진 방침을 확정하지도 보류하지도 않았지만, 민간 부문 등의 제안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확인한 것이다. 

 

8일 인도네시아 동칼리만탄주 누산타라 신수도 건설 현장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도 자카르타의 해수면상승과 인구 과밀 등을 문제로 누산타라로 수도를 이전하기로 했다. 누산타라=AP연합뉴스

고속철도 건설 사업과 관련, 구체적인 이정표가 마련된 것은 아니다. 말레이시아 측도 무히딘 야신 전 총리 시절 사업이 취소됐기 때문에 당장 급한 일정표를 가동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로크 교통부 장관은 “새로운 자금 조달방안과 이행 모델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2월 싱가포르 외교부 당국은 말레이시아의 재추진 방안이 확정되면 이를 검토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일련의 분위기로 볼 때 두 나라의 수도를 잇는 고속철도 건설 필요성에는 양국이 인식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지난 번 합의 이행 파기의 원인이 됐던 자금조달 방안이 어느 정도 확실성을 담보할지 여부이다. 특히 말레이시아가 민간 부문과 외국 투자를 어느 정도 유치할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속철 붐 확산엔 안전·경제성 해결이 관건”

 

동남아, 특히 대륙부 동남아의 고속철도 건설 사업엔 중국이 적극 움직이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의 일환으로 자국의 윈난성 쿤밍에서 싱가포르까지 연결하는 고속철도 건설 사업에 관심을 키워왔다. 쿤밍에서 출발하는 2개 노선을 고려하고 있다. 하나는 쿤밍에서 라오스와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로 연결하는 구간이다. 또 한 구간은 쿤밍에서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로 연결하는 것이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2022년 10월 13일 반둥 인근 고속철도 건설현장을 찾아 안전모를 착용한 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동남아 국가에서 고속철도 건설 여건이나 필요성이 긴요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KTX 같은 고속철도가 동남아 전역을 누비는 날은 가까운 장래에는 쉽지 않다는 전망이 지배적이기도 하다. 동남아, 특히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 해양부 동남아 국가는 도서국가라는 점 때문에 육상교통보다는 선박이나 비행기를 이용한 교통수단이 발달돼 있다. 제1도시와 제2도시를 잇는 철도교통 등도 그리 발달하지 않았다. 이들 국가의 수도들도 동아시아의 서울이나 베이징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가 아닌 경우가 많다. 수도에 비해 제2도시의 인구규모는 그다지 많지 않다. 가령 자카르타,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마닐라는 제국주의 혹은 식민시대 이전엔 도시 규모를 갖추지 못했다. 태국이 고속철도를 연결하려는 북부 치앙마이는 인구 수십만 명의 소도시 규모이다.

 

인도네시아와 태국 등에서 추진되고 있는 고속철도 건설과 관련, 동남아 전문가인 서명교 한국외대 교수는 안전성과 경제성 등의 측면에서 유럽 혹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상황과는 다르게 바라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이전의 사례로 미뤄, 한국 등의 고속철도 건설 수주전엔 프랑스와 독일 등이 경쟁력을 지닌 경우가 많았다”며 “이와 달리 인도네시아의 고속철도 수주전에 중국이 최종 선정된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유럽은 지반이 약한 해양부 동남아의 지형 특성 때문에 안전성과 경제성을 우려했던 반면에, 중국은 자국 영향력 확대를 위해 프로젝트에 적극 뛰어들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서 교수는 이어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회원국 다수는 자카르타∼반둥 고속철도 구간의 운영 상황을 지켜보면서 자국의 교통·물류 개선 사업 본격화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도 크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 고속철도 건설 재추진 가능성이 부각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서 교수는 “싱가포르는 리콴유 총리 시절부터 반도국 말레이시아를 관통해 대륙부 동남아로 진출하려는 꿈을 지녀왔다”며 “고속철도 건설 사업에 싱가포르가 적극 움직이면서 말레이시아의 입장 변화를 견인하려고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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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기자 bal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