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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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규칼럼] 거시경제여건과 출산율

수많은 대책에도 출산율 하락
주거·고용 불안 등 ‘압력’ 요인
단순 보육정책으론 장려 한계
거시경제 운용·고용 확대 필요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로 한층 낮아졌다. 1983년 인구 유지 가능 출산율 2를 기록한 이래 속절없이 하락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가히 ‘집단 자살 사회’라 할 만하다. 2005년 적극적 저출산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한 이래 280조원이나 투입한 효과가 전혀 없다. 2016년 이후 출산율 하락 속도가 가팔라지고 있는 것이 더욱 걱정스럽다.

그동안 출산장려금 지급, 돌봄 및 양육비 지원, 육아휴직 확대 등 다양한 대책이 나왔다. 관련 예산의 70% 이상을 보육에 지출할 정도로 보육을 중시하였다. 조만간 발표할 정부의 종합대책도 재택근무 활성화 등 육아대책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사실 이제까지의 저출산 대책은 혜택을 늘려 출산을 장려코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와는 다른 관점의 방안도 생각해야 하는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이종규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전 대구가톨릭대 초빙교수

무릇 어떤 일이 일어나는 데에는 성격이 전혀 다른 요인들이 작용한다. 사람들이 그것을 선택하도록 유인하는 자체의 매력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요인이 작용할 수도 있다. 출산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출산은 개인의 존엄성을 실현하는 일로써 그 자체의 매력은 엄청나다. 그럼에도 출산을 기피하는 것은 젊은 세대들이 아이를 낳을 수 없도록 만드는 요인이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자를 흡인요인(pull factor)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압력요인(push factor)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동안의 대책은 흡인요인을 강화하는 방식이었다. 반면 압력요인에 대해서는 과히 신경 쓰지 않았다. 흡인요인을 강화하는 그동안의 저출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낮아진 것을 보면 흡인요인으로는 상쇄할 수 없을 정도로 압력요인이 막강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제까지의 저출산 대책은 마치 밀려오는 성난 파도(압력요인)를 조그만 방파제(흡인요인)로 막으려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출산 압력요인은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주택가격 급등과 일자리 부족 등 거시경제여건 악화가 유독 도드라졌다. 졸업-취직-결혼-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라이프 사이클에서 소득원 확보와 주거 공간 마련이 핵심적이라는 점에서 그 논거를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실제 출산율이 빠르게 하락한 시기는 대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고용 사정이 악화된 때였다.

근래의 거시경제상황을 살펴보자. 2010년대 거시경제정책은 난맥상의 연속이었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수출 부진으로 경기가 위축된 것에 대하여 경쟁력 강화와 같은 산업정책이 아닌 저금리 등 내수 진작책으로 대응하는 엇박자를 내었다. 재정 운용에서도 인기영합주의식 지출을 되풀이하였다. 소위 개혁 추진으로 경제활동이 위축되자 재정으로 그 부작용을 메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기에는 재난지원금 등의 명목으로 더욱 많은 돈을 풀었다. 결국 무리한 확대 거시경제정책은 금융불균형을 심화시켰고 마침내 부동산 가격을 자극하고 말았다.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에도 불구하고 20~30대의 고용 불안을 피하지 못하였다. 2010년대 내내 젊은 세대 취업자가 늘지 않은 데다 이들의 실업률이 전반적으로 높아졌었다. 기본적으로 경기가 부진하였던 데다 기업 옥죄기, 소득주도성장 정책 등의 영향까지 가세한 결과였다.

요컨대 거시경제여건 악화가 출산율을 하락시키는 주요 원인 중의 하나였다. 앞으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거시경제 차원에서 저출산 압력요인을 발생시키는 일이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즉 거시경제운용 과정에서 젊은 세대에게 격랑이 되는 일체의 요인을 만들지 말도록 각별히 유의하여야 하겠다. 구체적으로는 수요 측면에서는 거시경제정책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공급 측면에서는 적극적 산업정책을 펼쳐 고용 확대를 도모하는 정책 조합을 구사하여야 할 것이다.

저출산 문제는 쉽사리 해결될 과제가 아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출산 우호적 환경이 충분히 조성되어야 비로소 해결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중에서 거시경제여건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결코 잊지 말기를 바란다.


이종규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전 대구가톨릭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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