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광주·전남에 지난 12일 천둥까지 치며 5∼20㎜ 안팎의 단비가 내렸지만 최악의 물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는 힘들었다. 호남권을 대표하는 광역댐인 주암댐의 저수율이 지난 11일 기준 마의 20% 선이 무너지고 18%대를 보이고 있다. 50년 만의 최악의 가뭄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광주·전남에 하루 약 118만t의 생활·공업 용수를 공급하는 식수원이 바닥을 보이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광주시민의 주요 식수원인 동복댐의 저수율도 20% 아래로 떨어졌다. 광주시는 1993년 이후 30년 만에 제한급수 방안까지 다시 꺼내야만 하는 처지다.
영농철을 앞둔 농촌지역도 비상이다. 섬진강댐에서 물을 끌어다 쓰는 전북 서부 최대 평야지대인 김제와 정읍, 부안 등은 큰비가 내리지 않을 경우 모내기조차 못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당국은 다음달부터 본격적인 영농철에 돌입하면 물 부족 사태의 심각성이 커질 것으로 우려했다.
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경북 내륙지역은 산불이 나더라도 불을 끌 물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이다. 경북119특수대응단 119항공대 제해용(54) 기장은 가뭄에 저수지 담수량이 크게 줄어 헬기 물주머니에 퍼담을 용수 공급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농업용수 공급으로 1년 중 4∼5월에 저수지 물이 가장 줄어든다”면서 “이때 대형산불이 나면 헬기가 한꺼번에 저수지로 몰릴 수밖에 없는데,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에서 급수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광주시 5월부터 제한급수 불가피
광주시민의 식수원인 순천 주암댐과 화순 동복댐의 저수율이 20%가 무너지면서 제한급수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광주시 수돗물의 60%를 공급하는 동복댐의 유효저수량은 9200만t이다. 현재 저수량은 1905만t으로 마의 20%가 무너졌다. 지금 추세대로 가면 동복댐의 수돗물 공급 가능한 일수는 120일도 채 안 된다. 요즘처럼 강수량이 적을 경우 5월 하순쯤엔 제한급수 기준인 저수율 7% 이하로 뚝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광주시의 또 다른 식수원인 주암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남부지방의 심각한 가뭄으로 주암댐의 저수율은 현재 18%로 20% 선이 붕괴됐다. 지난해 12월16일 저수율 30%가 무너진 지 2개월 만이다. 주암댐의 저수율은 지난 1년간 날마다 0.1%포인트 수준으로 감소하다가 최근 0.5%포인트 수준으로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런 추세라면 주암댐 물 공급 가능 일수는 112일에 불과하다.
광주시는 대체 식수원 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최근 하루 3만t가량의 영산강 하천수 취수를 시작했다. 또 4월 말 원지교 가압시설이 완료되면 5월부터는 하루 5만t의 영산강 하천수를 용연정수장으로 공급할 수 있다. 동복댐 상류 주변 관정을 개발하는 등 취수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4월 말 준공 예정으로 하루 1만∼2만t의 물이 추가로 공급된다. 광주시는 지난해 말부터 30년 만에 제한급수 실시 방안을 추진해왔다. 광주는 1992년부터 1993년 6월까지 156일간 격일제 제한급수를 실시해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완도 섬 5곳 제한급수… 여수·광양산단 10% 절감 동참
전남 완도 등 섬 지역의 고질적인 식수난은 더욱 심각하다. 완도 노화 주민들은 평소에도 빗물을 정수해 식수로 사용할 정도였다. 지난해 3월부터 제한급수에 들어갔던 완도 노화·보길도는 ‘2일 급수에 4일 단수’, 넙도는 ‘2일 급수에 5일 단수’가 일상화했다. 지난해 9월 태풍 ‘힌남노’가 몰고 왔던 비로 한두 달 정도 제한급수가 해제됐을 뿐 완도의 제한급수일과 지역은 늘어만 갔다. 넙도, 소안, 금일, 보길, 노화 5개 섬은 지금까지도 제한급수 지역이다.
극심한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완도군은 보길도에 1100t 규모의 지하수 저류지를 설치하고 일부 지역에 지하수도 개발했지만 1일 1450t의 용수 공급에 만족해야만 했다.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자 전국 곳곳에서 가뭄 극복을 위한 먹는물 릴레이 기부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부터 3월 현재까지 완도군이 기부받은 병물만 106만5000병에 이른다.
여수·광양 국가산단에 있는 공장들은 최악의 가뭄 상황을 대비해 생산 일정 등을 조정했다. 주암댐과 수어댐을 이용하는 광양제철소는 하루 소요량 30여만t 가운데 약 10% 정도인 3만t가량을 해수담수화 설비를 통해 충당하고 있다. GS칼텍스 여수공장은 이달부터 4월 말까지 60일 일정으로 대정비 작업을 시작했다. 하루 평균 7만7000t의 물을 사용하는데 주로 열교환기의 열을 식히는 데 쓴다. 이번 정비 작업으로 약 10%(1만5000t) 정도의 물을 쓰지 않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GS칼텍스는 예상했다.
전남도는 광양만권 입주업체들과 가뭄 극복을 위한 업무협약을 하고 공동 대응에 나서고 있다. 산단기업 공업용수 10% 절감을 기본 내용으로 폐수의 친환경적 사용, 빗물·하수처리수 재이용 등 수원 확보를 위한 노력과 해수담수화 수요조사를 통해 적극 활용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전남도는 김영록 지사의 특별지시로 예비비, 특별교부세 등 가용재원을 총동원해 가뭄 해소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예산이 소진돼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나마 지난달 주암댐 가뭄 현장 점검에 나선 행정안전부 김성호 재난안전관리본부장에게 가뭄 극복을 위한 특교세 등을 요청해 72억6000만원을 확보한 상태다.
◆댐 메말라 급수 차질… 영농철 농촌지역도 비상
극심한 가뭄에 영농철을 코앞에 둔 농촌지역도 비상이 걸렸다. 전북 서부 최대 평야지대인 김제와 정읍, 부안 등은 일부 생활용수와 함께 농사에 필요한 물의 80%가량을 섬진강댐에서 끌어다 쓰고 있으나, 현재 총 저수율은 19.3%까지 줄어 농사에 차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13일 찾은 정읍시 산내면 섬진강댐 수위는 굳게 닫힌 수문에서 한참 아래에 머물렀다. 하류인 수문 쪽을 제외한 중상류 지역 대부분은 바닥을 드러내 육지와 쉽게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댐 상류인 임실군 강진면 용수리 옥정호 붕어섬 일대도 호수가 바짝 말라 마른 풀만 앙상히 남아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섬진강댐을 상수원으로 쓰는 정읍시는 지난해 말부터 생활용수로 하루 5만2000t을 쓰던 것을 2000t가량 줄이는 대신 용담댐 물로 이를 대체하고 있다. 섬진강댐을 관리하는 한국수자원공사는 전주·충청권 식수원인 용담댐과 부안댐에서 각각 하루 2000t, 1000t의 물을 끌어와 용수에 보태고 있다. 용담댐 저수율도 현재 39.1%로 전년 이맘때 53.5%의 3분의 2 수준에 그치고 있어 가뭄이 지속되면 이마저도 이어갈 수 없다. 섬진강댐 총 저수용량은 4억6600만t으로 용담댐(8억1500만t)의 절반 수준이다.
농어촌공사 등은 저수량 감소 원인으로 강수량 부족을 꼽는다. 기상청에 따르면 섬진강댐 유역 강수량은 지난해 총 926.6㎜로 2018년 이후 가장 적었으며, 특히 9월 이후 12월까지 누적 강수량은 220.2㎜에 그쳤다. 2020년 1927.2㎜, 2021년에는 1380.9㎜를 기록했다.
섬진강댐은 정읍시 생활·농업 용수와 함께 김제시, 부안군 지역 농업용수 공급을 책임지고 있어 다음달부터 본격적인 영농철에 돌입하면 심각한 물 부족 사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관계 당국은 요즘처럼 가뭄이 지속되면 6월 초쯤에는 섬진강댐 용수 공급을 전면 중단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부안지역 한 농민은 “다음달 중순부터는 연중 가장 많은 물이 필요한 모내기 등을 준비해야 한다”며 “하지만 지난해 가을부터 가뭄이 지속된 데다 용수 공급마저 어려울 것이라고 하니 앞으로 큰비가 내리지 않는 이상 농사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