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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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근로시간 재편 보완 지시에 정부 “국민 소통 노력 부족. 청년 목소리 더 경청”

‘주 최대 69시간 근무 강제’ 인식에 청년층 반발 심해져
일각선 백지화 전망도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에 대한 보완 검토를 지시한 것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장시간 근로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개편안이 마치 '주 52시간제'가 '주 69시간제'로 바뀌는 것으로 잘못 인식돼 국정 운영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와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노동부가 지난 6일 입법예고한 법안과 관련해 "입법예고 기간 중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MZ 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정부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국민 소통 노력이 부족했다"며 "청년 목소리를 더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노동부는 지난 6일 일주일 최대 근로 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는 '주 52시간제'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개편안의 내용은 '일이 많을 때 일주일에 최대 69시간까지 몰아서 일하고, 일이 적을 때는 푹 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현재는 근로자 가운데 한 명이라도 일주일에 52시간 넘게 일하면 사업주는 범법자가 된다.

 

이런 불합리한 측면을 해소하는 동시에 근로자의 휴식권·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방안이 연장근로 단위를 '주' 외에도 '월·분기·반기·연'으로도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장시간 연속 근로를 막고 실근로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분기 이상의 경우 연장근로 한도를 줄이도록 설계했다. 이에 따르면 주 평균 최대 근로시간은 연장근로 단위가 '분기'일 경우 50.8시간, '반기'일 경우 49.6시간, '연'일 경우 48.5시간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이같이 복잡한 계산법이 대중에게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채 일주일에 일하는 시간이 52시간에서 69시간으로 늘어나는 것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여기에 더해 노동계에서 실제 일주일 최대 근로시간은 정부 계산법대로 69시간이 아닌 80.5시간 또는 90.5시간이라는 주장까지 내놓으면서 청년층의 반발은 더 심해졌다.

 

정부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를 통해 '제주 한 달 살기' 같은 장기휴가도 가능해진다고 홍보했지만, 많은 근로자가 '연차휴가도 제대로 못 쓰는데 장기휴가를 어떻게 가느냐'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정부가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등과 차별화한 노동단체로 주목하고 있는 MZ세대 노조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도 비판에 가세하고,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가 4주 만에 30%대로 하락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는 등의 상황이 잇따랐다.

 

IT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근로시간 제도개편안이 원안대로 시행될 경우 이른바 '크런치 모드'(게임 출시 직전 고강도 근무체제) 등 열악한 노동환경이 더욱 악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일주일에 120시간 바짝 일하고 마음껏 쉬어라"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노동부 개편안은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철학에 따른 것이지만, 윤 대통령은 노동부의 소통 노력이 부족해 정책이 국민에게 잘못 전달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는 비상이 걸렸다. 노동부는 입법 예고 기간에 근로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보완 사항을 제도에 반영할 예정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연합뉴스 통화에서 "MZ노조나 IT업계 등 제도 개편안에 특히 문제를 제기하시는 분들을 포괄적으로 만날 예정"이라며 "보완할 사항을 시급히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이 백지화·폐기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지만, 노동부 관계자도 "입법 철회는 아니다. 의견을 폭넓게 듣는 노력에 방점이 찍힐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정부는 다음 달 17일까지 40일간 입법 예고 기간을 거쳐 오는 6∼7월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노동부 관계자는 "개선할 사항이 많으면 입법 예고를 다시 할 수도 있다"며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