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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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B 쇼크’ 국내 증시 타격…코스피는 떨어지고 가상화폐는 오르고 [한강로 경제브리핑]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파가 세계 금융시장을 타격했다. 14일 국내 금융시장도 코스피와 코스닥이 각각 2.56%, 3.91% 하락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원·달러 환율도 전날 대비 9.3원 오른 1311.1원으로 치솟았다. 반면 가상화페 시장은 중앙은행의 취약성이 드러나며 급등했다. 탈중앙화한 가상화폐 활용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이번 사태가 국내 금융시장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금융규제 당국의 예금자 보호 조치로 예금 접근이 가능해진 13일 오전(현지시간) 고객들이 예금 인출을 위해 SVB 본사 정문에 들어서고 있다.연합뉴스

◆SVB 쇼크에 2340선까지 밀린 코스피

 

14일 코스피는 전일 대비 61.63포인트(2.56%) 내려간 2348.97에 마감했다. 전날 SVB 사태에도 소폭 상승했지만 이날 상승분을 반납했다. 올해 최대 하락률이다. 개인과 기관 모두 순매수세였지만, 외국인이 6384억원이나 순매도 하며 코스피 하락을 주도했다. 코스닥도 이날 30.84포인트(3.91%) 떨어진 758.05에 마감했다. 코스닥 역시 연내 최대 하락률이다. 

 

미국 정부의 빠른 SVB사태 대처에도 금융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안감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코스피에서 은행주는 일제히 하락했다. 하나금융지주 주가는 전일 대비 3.86% 하락했고, KB금융(-3.78%), 우리금융지주(-3.42%), 신한지주(-2.64%)도 떨어졌다. 최유준 신한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코스피와 코스닥 양 시장 합산 상승종목 비중이 6%에 불과했다”며 “위험 회피 심리 고조로 매수세 부재 영향이 직접적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반면 가상자산시장은 크게 상승하고 있다. 금융 시스템 불안정성 확대로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거나 0.25%포인트 인상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되면서 그 기대감이 영향을 미친다. 골드만삭스는 연준이 이달 FOMC에서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내릴 것으로 전망했으며 노무라증권은 금리 인하를 예상했다.

 

가상자산 거래정보 제공 사이트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40분 기준 비트코인은 전일 대비 9.23% 오른 3206만원으로 3200만원 선을 넘어섰다. 이더리움도 4.89% 오른 220만원을 기록했다. 업계는 중앙은행에 대한 불안감이 탈중앙화한 가상화폐 강세를 이끌었다고 보고 있다. 가상화폐 전문업체 펀드스트랫의 디지털 자산 전략 책임자 신 폐럴은 “이번 상승 랠리는 일부 투자자들이 중앙은행 시스템의 취약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했다”며 “중앙은행의 취약성과 비트코인을 믿는 투자 집단이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4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전 거래일대비 61.63포인트(2.56%) 하락한 2348.97을 나타내고 있다. 뉴스1

긴축 기조 종료 전망이 나오면서 채권 금리는 크게 떨어지고 있다. 이날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5.4bp(1bp=0.01%) 내려간 연 3.381%에 장을 마쳤다.

 

시장 자체의 불안정성으로 변동성 장세가 계속되고 있는 형국이다. 김상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이번 사태가 시스템적 위기로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시장의 컨센서스이지만 과거에 시스템 위기가 ‘나 여기 있소’ 하며 친절하게 등장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신용위험 측면에서 리스크 프리미엄이 높아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14일 오전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가 참석한 가운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어 SVB 사태에 따른 국내외 금융시장 영향을 논의했다. 12일 오전에 이어 이틀 만에 다시 범경제부처 고위 공직자들이 SVB 사태를 논의한 것이다. 

 

추 부총리는 “현시점에서 SVB 사태의 여파를 예측하기 어렵다”며 “정부는 높은 경각심을 갖고 상황을 예의 주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까지는 국내 금융시장 영향이 제한적인 양상”이라며 “국내 금융 기관은 자산·부채 구조가 SVB와 상이하고 유동성이 양호해 일시적 충격에 견딜 수 있는 충분한 기초체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는 “다만 세계 경제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아직 통제하지 못한 상황에서 금융 시스템 불안 요인까지 겹치면서 향후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유가·환율 상승에 수입물가 다시 오름세

 

지난달 국제유가 및 원·달러 환율 상승의 영향으로 전월 대비 수입 물가는 4개월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2023년 2월 수출입물가지수’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2.1% 오르면서 지난해 11월 이후 4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한국은행이 14일 발표한 '2월 수출입물가지수'에 따르면 원화 기준 수입물가는 전월 대비 2.1% 상승했다. 수출물가 또한 지난 1월보다 0.7% 상승해 넉 달 만에 오름세로 함께 돌아섰다. 한은은 "국제유가와 함께 원·달러 환율이 동반 상승해 수출입물가가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시내 한 주유소의 모습. 뉴스1

원재료가 광산품(2.1%)과 농림수산품(2.8%) 중심으로 2.2% 상승했고, 중간재는 석탄·석유제품(5.7%)과 화학제품(2.1%) 등이 오르며 전월 대비 2.3% 올랐다. 세부 품목에서는 원유(4.0%), 나프타(7.3%), 프로판가스(36.4%), 부타디엔(30.5%)의 가격이 크게 올랐다.

 

지난달 월평균 두바이유 가격이 전월 대비 2.1% 상승하고 같은 기간 원·달러 평균 환율도 1.9% 오르는 등의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환율 요인을 제거한 계약통화기준 수입물가 상승 폭은 0.4%였다. 서정석 한은 물가통계팀장은 “유가와 환율 상승 영향으로 광산품, 석탄·석유제품 등이 오르며 수입물가지수가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서는 0.5% 하락했다. 지난해 국제유가 급등으로 인한 기저효과가 작용했다. 수입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하락한 것은 2021년 2월(-0.3%) 이후 24개월 만이다.

 

2월 수출물가지수(원화 기준)는 전월 대비 0.7% 오르며 4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한은은 반도체 가격 약세에도 원·달러 환율이 오르며 지수가 상승한 것으로 풀이했다. 이달 수입물가 전망에 대해 서 팀장은 “원자재 가격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으로, 변동 요인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전년 동월 대비로는 유가 급등에 따른 기저효과가 작용해 하락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 오락·문화 물가도 14년 만에 최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완화하면서 지난달 오락·문화 물가는 14년여 만에 가장 많이 올랐다.

 

14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지출목적별 소비자물가지수 중 오락·문화 물가지수는 105.86으로 지난해보다 4.3% 상승했다. 이는 2008년 12월 4.6% 상승을 기록한 이후 14년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2019년 4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감소세를 보이던 오락·문화 물가 상승률은 2020년 12월부터 오름세로 바뀌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해 2월까지는 상승률이 0∼1%에 그쳤고, 그 이후부터 점차 상승 폭이 확대됐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 중 오락·문화 물가 지수가 14년여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가운데 14일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 면세점에서 이용객들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오락·문화 항목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물가 상승을 기록한 것은 지난달 9.3% 오른 ‘단체여행’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해외 단체여행비가 13.3% 올라 작년 12월부터 석 달 연속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국내 단체여행비는 4.1% 올랐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늘어나면서 관련 제품 및 서비스 가격이 오른 것도 오락·문화 물가 상승에 기여했다. 지난달 반려동물용품 가격의 경우 9.4%, 반려동물 관리비는 4.4% 올랐다.

 

최근 뜨거운 인기 속 막을 내린 ‘더 글로리’와 같은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게임 아이템 등 온라인 콘텐츠 이용료도 3.1% 상승했다. 거리두기 해제로 늘어난 야외 활동으로 등산·캠핑 등 레저용품 가격이 6.1%, 운동용품 가격이 9.5% 각각 올랐다. 헬스장에서 이용하는 트레드밀 등 헬스기구 가격은 4.4% 올랐으며, 헬스클럽 이용료(3.4%), 놀이시설 이용료(9.3%), 영화관람료(7.4%) 등 스포츠·문화 서비스 가격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