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의 ‘깜깜이 회계’ 사태를 계기로 실태 점검에 나선 정부가 회계 서류 비치 여부를 보고하지 않은 노조에 시정기간을 부여했지만, 대상 노조 4곳 중 1곳은 여전히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대상 노조의 63%가 정부의 자료 제출 요구에 불응하는 등 조직적인 거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15일부터 미제출 노조에 대한 과태료 부과에 나설 방침이다.
1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까지 대상 노조 319곳 중 86곳(26.9%)의 노조가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상 노조는 조합원이 1000명 이상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334곳인데, 2021년 이후 해산 신고된 15곳은 제외됐다. 세계일보가 시정기한 내 자료 미제출 일부 노조에 직접 확인한 결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과 부산교통공사노동조합 등이 표지만 제출하고 속지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고용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14조와 제27조에 따라 지난달 15일까지 회계 서류 비치 여부를 보고하도록 했다. 세부적으로는 서류의 표지와 속지 1장을 제출하도록 했고, 속지에 민감한 내용이 있는 경우 가려서 제출해도 된다.
그러나 양대 노총은 정부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것이 노조 자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달 15일까지의 제출 시한에서 대상 노조의 36.7%(120곳)만이 자료를 제대로 제출했고, 나머지 207곳은 표지만 제출하거나 자료를 제출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고용부는 시정기간을 부여했지만, 최종적으로는 233곳(73.1%)의 노조가 자료를 제대로 제출했다. 나머지 86곳(26.9%)은 사실상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민주노총은 대상 노조 62곳 중 23곳(37.1%)만이 자료를 제대로 냈다. 민주노총과 함께 정부의 실태 점검을 비판했던 한국노총은 시정기간 상당수가 자료를 제출해 대상 노조 173곳 중 141곳(81.5%)이 제출을 마쳤다. 고용부는 “양대 노총이 지침을 통해 전면적으로 제출을 거부하도록 한 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고용부는 시정기간 내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86곳 노조에 대해 노조법 제27조 위반에 따른 과태료 부과 사전 통지를 할 계획이다. 당장 15일부터 사전 통지를 시작해 4월 초까지 완료할 방침이다. 과태료 부과 사전 통지가 이뤄지면 10일간의 의견제출 기간을 거쳐 최종적으로 과태료가 부과된다.
고용부는 과태료 부과 이후에도 현장 조사를 통해 노조의 회계장부 비치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현장 조사를 거부·방해하는 노조에 대해서는 해당 법에 따라 과태료를 부과하고, 폭행·협박 등 물리력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하는 등 엄정 대응할 방침이다.
이정한 고용부 노동정책실장은 “법상 의무를 확인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부 요구를 따르지 않는 것은 국민의 불신을 초래하는 것”이라며 “엄정 대응과 함께 현행법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민감 내용 제출 말라” 지침… 사실상 회계공개 조직적 거부
노동조합의 회계 투명성 강화에 나선 정부가 회계 서류 비치 여부를 보고하도록 지시한 지 40여일이 지났지만, 특정 노조를 중심으로 대상 노조 4곳 중 1곳은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공공성이 강한 일부 공무원노조까지 자료 제출 거부에 가세하면서 조합원의 알 권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이들 노조에 대한 과태료 부과 및 현장조사에 나서는 한편 노조의 회계 공시 의무화를 추진하는 등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공무원노조도 자료 제출 거부
1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까지 대상 노조 319곳 중 86곳은 여전히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특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자료 제출 거부가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지난달 15일까지의 자료 제출 시한에는 양대 노총의 자료 제출비율이 20∼30% 수준으로 모두 낮았는데, 시정기간을 거치면서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대상 노조의 81.5%가 자료 제출을 마쳤다. 이는 미가맹 노조의 자료 제출비율인 82.1%와 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민주노총은 대상 노조의 37.1%가 자료를 제출하는 데 그쳤다. 한국노총 역시 제출비율은 크게 올랐지만, 대상 노조가 173곳으로 가장 많이 속해 있어 여전히 32곳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고용부는 “양대 노총이 지침을 통해 전면적으로 제출을 거부하도록 한 것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체 대상 노조 319곳 가운데 79곳은 공무원·교원노조인데, 이들 중 일부도 여전히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의 한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속지는 내지 않고) 표지만 제출했다”며 “민주노총에서 공개할 건 공개하되 공개하지 않아도 될 건 공개하지 말라는 식으로 방침이 내려왔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도 요구할 경우 소송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공무원노조의 관계자는 “자료를 제출하되 민감한 내용은 내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다”며 “정부가 조치에 나선다면 저희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교통공사노동조합의 관계자는 “지난번에 표지만 제출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했다”면서 “(정부가) 저번에 미제출한 것을 제출하라고 했다는데 이 역시 따르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시정기한 내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던 곳으로 알려진 국가철도공단노조, 부산공무원노조는 이번에는 자료를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1차 제출 당시 미흡한 부분이 있어 시정기간에 보완해 자료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정부, 과태료·현장조사 방침
정부는 당장 15일부터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노조에 대한 과태료 부과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7조에서 ‘노조는 행정 관청이 요구하는 경우 결산 결과와 운영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제96조에서도 ‘제27조의 규정에 의한 보고를 하지 않거나 허위의 보고를 한 자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한다’는 규정에 근거한 것이다.
고용부는 이 같은 규정에 따라 15일 5개 노조를 시작으로 4월 초까지 과태료 부과 사전 통지 작업을 마칠 계획이다. 사전 통지 이후에는 10일간의 의견 제출 기간을 거쳐 해당 노조에 최종적으로 과태료가 부과된다. 다음달 중순부터는 질서위반행위규제법에 근거한 현장조사도 벌인다. 현장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 기피하는 노조에는 별도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만약 노조 측이 폭행·협박 등 물리력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해 엄정 대응하기로 했다.
정부와 여당은 노조의 회계 공시를 의무화하는 노조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앞서 ‘불합리한 노동 관행 개선 전문가 자문회의’가 내놓은 회계 투명성 강화 방안 중 하나로, 조합원 절반 이상의 요구가 있거나 노조 내 횡령·배임 등의 행위가 발생하면 회계 공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노조 회계 공시와 세제혜택을 연계하는 방안은 관계부처 간 협의를 통해 추진하기로 했다. 회계감사원 자격과 선출에 대한 사항도 노조 규약에 명시할 예정이다. 자격은 ‘회계 관련 지식이나 경험 등 직업적 전문성을 가진 사람’으로 규정하고, 일정 규모 이상 노조는 공인회계사의 자격을 요구하도록 했다. 회계감사원은 총회에서 조합원이 직접 비밀 무기명 투표로 뽑고, 임직원 겸직은 금지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