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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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손마디·굳은살… 그의 손이 전통이다 [밀착취재]

국내 유일 전통 목침 기능전승자 김종연 명장
대한민국의 유일한 전통 목침 기능전승자인 김종연 명장이 목공 작업실 ‘목우헌’에서 평도를 이용해 십장생 부조 조각을 하고 있다. 세밀한 목공예 조각을 위해 340여개 각기 다른 모양과 크기의 조각칼이 사용된다.

전주 한옥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목우헌(木遇軒)’에 들어서자 진한 나무 향이 가득하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전통 목침 기능전승자이자 전북 무형문화재인 김종연 민속목조각장의 작업실과 전시장을 겸하고 있는 ‘목우헌’은 ‘나무와 우연히 만나는 집’이라는 의미로 이병천 소설가, 안도현 시인 등 친한 문인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43년째 목공예의 길을 걷고 있는 김종연 명장은 전통 목침 기능전승자로 고용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에서 인정한 ‘대한민국 명장’이지만 오로지 목침만 만드는 건 아니다. 전시장에는 나무를 깎고 세밀하게 조각한 아름답고 다양한 전통 목침과 십장생, 일월오봉도, 불상, 예수 십자가 목상 등 나무의 생명력을 살린 목공예 작품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고풍스러운 기와가 올려진 전주 톨게이트에 내걸린 나무 현판과 전라감영 복원 현판도 그의 손길을 거친 작품이다. 하지만 전통 목침 기능전승자로서 민속박물관 자료, 옛 문헌, 구전으로 전해지는 기록을 일일이 찾아보며 전통 목침 재현과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목재 고르고 새로운 목침 작업에 필요한 느티나무를 고르고 있다.
자르고 전기톱을 사용해 목공예에 사용할 은행나무를 알맞은 크기로 자르고 있다.
새기고 목공 작업실 ‘목우헌’에서 호랑이 목침에 조각을 하고 있다. 호랑이는 외부의 잡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종연 명장과 전통 목침의 만남은 우연히 찾아 왔다. “30년쯤 전에 골동품상 주인이 조선 후기에 제작된 호랑이 목침을 재현해달라며 세월이 느껴지는 낡은 목침을 들고 왔어요. 좌우대칭 호랑이 목침이었는데 너무 멋졌어요. 목침과 사랑에 빠진 순간이었죠.”

 

처음 보는 목침의 오묘한 아름다움에 반해 재현을 시작하고 목침을 연구하다 보니 나무를 다루는 기술적인 것만 아니라 전통 목침의 역사와 이론도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렇게 우연한 계기로 목침의 세계에 발을 들인 그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목침 중 가장 오래된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한 목침(두침과 족침)을 재현하는 등 여러 종류의 전통 목침 작업에 본격적으로 매진하였다.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도 진학해 전통 목침과 옻칠 등 목공예에 관한 전반적인 공부도 본격적으로 했다.

들기름칠 완성된 호랑이 목침에 나무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들기름을 칠하고 있다.
전주 ‘목우헌’에 전시된 목침들 ‘목우헌’ 전시장에 김 명장의 땀과 노력의 결과물인 전통 목침이 전시되어 있다.
부조 작품 일월오봉도 김 명장의 일월오봉도. 전주공예품전시관에 전시돼 있다.

우리의 전통 목침은 호랑이, 거북이 등 동물 조각이 좌우로 대칭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느티나무, 박달나무, 대추나무 같이 단단한 특수목을 사용한다. 기하학적인 무늬의 나무결을 지니고 시간이 지나도 색이 변하지 않아서 아름다움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단단한 나무를 세밀하게 조각하는 작업은 늘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항상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전통 목침을 제작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국내 유일 전승자로서 우리의 전통 목침의 명맥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책임감이 많이 따릅니다. 큰아들을 포함해 전수자 20여명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서 든든합니다.” 작업대에 올려진 호랑이 목침에 눈을 떼지 못하는 명장이 섬세한 마무리 조각을 하며 힘주어 말한다.

십이지목침
쌍사자목침
김종연 명장이 완성된 전통 목침을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굳은살과 조각칼에 베인 상처가 가득한 명장의 거친 손과 마디마디가 기형적으로 휘어 있는 왼손 손가락에서 전통 목침에 대한 식지 않는 그의 열정과 그동안의 노력이 느껴진다.


전주=글·사진 이제원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