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최모(31·여)씨는 당분간 결혼할 생각이 없다. 7년 동안 사귄 남자친구가 최근 프러포즈까지 했지만 결혼은 내년 혹은 내후년으로 미룰 계획이다. 그간 모은 자산에 비해 살고 싶은 지역의 집값이 여전히 높은 데다 금리도 올라 경제적인 측면에서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자신과 남자친구 모두 이직 혹은 전직을 계획하고 있는 것도 결혼을 미루는 이유다. 그는 “무조건 급하게 결혼을 하기보다는 물질적으로,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황에서 결혼하는 게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혼인 건수가 19만명대를 기록, 2021년에 이어 2년 연속 20만건에 미치지 못했다. 혼인 건수는 10년 전과 비교해 13만건 이상 감소했다. 향후 출산율 추이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지표가 혼인 건수라는 점에서 ‘합계출산율 0.78명’(2022년)으로 대표되는 저출생 위기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혼인·이혼 통계’를 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19만1700건으로 2021년(19만2500건)보다 800건(0.4%) 줄었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70년 이래 가장 적은 수치다.
혼인 건수는 2019년부터 4년 연속 역대 최소치를 경신하고 있다. 1996년(43만5000건)만 하더라도 40만건대에 달하던 혼인 건수는 1997년(38만9000건)에 30만건대로 내려온 뒤 2012년 32만7100건을 기록했다. 이후 2016년(28만2000건) 20만건대, 2021년 10만건대로 내려앉았다. 임일영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25~49세 연령 인구가 계속 줄어 인구 구조적 측면에서 혼인 건수가 감소하는 부분이 있다”며 “혼인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도 감소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혼인 연령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가 33.7세, 여자가 31.3세로 1년 전보다 각각 0.4세, 0.2세 상승했다. 남녀의 평균 초혼 연령 역시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았다. 연령별 혼인 건수는 남녀 모두 20대 후반에서 가장 많이 줄었다. 남자의 경우 20대 후반에서 3400건(8.4%) 감소했고, 여자도 20대 후반에서 4600건(7.2%) 줄었다.
초혼 부부(14만8000건) 중 여성이 연상인 부부는 2만9000건(19.4%)으로 1년 전보다 0.6% 늘었다. 외국인과의 혼인 건수는 1만7000건으로 27.2%(4000건) 증가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완화에 따라 입국자가 늘어난 결과로 해석된다.
지난해 이혼 건수는 9만3000건으로 1년 전보다 8.3%(8000건) 줄었다. 2020년부터 3년째 감소세다. 통계청은 혼인 건수가 감소하면서 이혼 건수도 줄어들고 있다고 보고 있다. 평균 이혼 연령은 남자 49.9세, 여자 46.6세로 1년 전보다 각각 0.2세, 0.1세 줄었다. 남녀 모두 이혼 연령이 감소한 것은 1990년 이후 처음이다.
혼인의 단념과 지연은 출산의 주요 선행지표라는 점에서 향후 출생률에도 경고등이 켜졌다는 분석이다. 혼외출생아 비율이 2.3%(2019년 기준)에 그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출생은 결혼을 전제로 이뤄진다. 또 초혼 연령의 상승은 초산 연령의 상승으로 이어져 임신 가능성을 낮추는 동시에 둘째 이상의 자녀를 출산하는 데에도 부정적인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절대소득보다 중요한 것이 상대소득이다. 그런데 대기업 청년의 임금은 7000만~8000만원인 것에 비해 비정규직은 2500만원에 불과하고 노동시간도 길어 데이트할 시간도, 자신감도, 인기도 없다”며 “게다가 주거비가 너무 올라서 저임금 청년들은 감당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동시장 양극화 해결에 나서는 동시에 주거 시장 안정화 및 신혼부부 주거지원 정책을 확대하는 등 다각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