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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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원 인권위 상임위원 “여군 늘었지만, 군대 내 성평등 아직 멀었죠”

김용원 인권위 상임위원 인터뷰
‘형제복지원’ 최초로 세상에 알려
“학폭·장애인·군대 내 부조리 등
인권 이슈, 다양한 분야로 확장
男군인 성인지 감수성 과거 머물러
국방장관에 인권보호 대책 요청”

“과거엔 기초적, 보편적 인권이 주된 관심사였죠. 지금은 보편적 인권의 토대 위에 심층적이고 개별화된 인권 문제가 새롭게 대두했습니다. 이 두 측면의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할 때입니다.”

초임 검사 시절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 인권 유린 사건인 ‘형제복지원 사건’을 최초로 세상에 알리고 수사했던 김용원(사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지난 6일 서울 중구 인권위 사무실에서 “인권을 바라보는 관점이 역사적 맥락에 따라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민들이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했던 권위주의 시절과 달리 인권 이슈가 장애인, 직장 내 괴롭힘, 학교 폭력, 군대 내 부조리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점을 설명하면서다.

그에게 특히 각별한 분야는 군대 내 양성평등 이슈다. 인권위에서 군 인권보호관도 겸하고 있는 김 상임위원은 “여성 군인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남성 군인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과거 수준에서 크게 향상되지 못한 상태에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16일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이종섭 국방장관을 만나 성인지 감수성 제고를 비롯한 군내 인권보호 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요청했다. 군사경찰 수사관 1명을 인권위에 파견해달라는 요청도 했는데, 이 장관이 긍정 검토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김 상임위원이 양성평등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교 2학년 가을, 김 상임위원은 상속 재산을 아내보다 남편이 더 가져가도록 한 민법 조문의 부당성을 따지는 ‘모의 헌법위원회’ 개최를 주도했다. 1~4학년 재학생 400~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까지 하며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런데 당시 학생들 반응은 그의 예상과는 딴판이었다.

“압도적인 다수가 ‘현실적으로 남자의 역할이 있고, 여자의 역할이 있는데, 여성이 남성보다 적게 받는 게 당연하다’라고 설문에 답변한 겁니다. 심지어 여학생들도 당연하다고 했어요.”

김 상임위원은 김영란 전 대법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등 당시엔 대학생이던 모의 헌법위원회 위원들과 논의 끝에 해당 민법 조문에 대해 위헌을 선언했다. 양성평등을 논할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던 시절, 비록 대학생이었지만 시대를 앞서가는 결정을 공론장에서 이끌어낸 경험을 한 것이다. 김 상임위원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말이 너무 좋았다”며 “평등 문제를 제일 현실적으로 드러내는 재산 상속을 정면으로 짚어보고 싶었다”고 떠올렸다. 교정에서 모의 헌법위원회를 개최한 지도 48년이 지난 지금, 김 상임위원은 여전히 양성평등을 위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만족할 만큼 진전이 이뤄졌느냐는 별개로 하더라도, 많이 진전된 건 사실이죠. 그러나 앞으로 많이 심화해야 할 부분, 방향이 올바르게 설정돼야 할 부분이 많죠. 남자와 여자는 또 다르잖아요.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순 없는데, 한편으로는 다르다는 걸 무시하잖아요. ‘다르지만 평등하다’라고 해야지, ‘다르지만’ 부분을 자꾸 덮어버리려고 하면 안 됩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