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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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당헌이 무슨 죄

2020년 11월3일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당 중앙위를 열어 당헌 개정안을 의결했다.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으로 이듬해 4월 치러지는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 위한 조치였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을 저질러 치러지는 재·보선에는 후보를 내지 않는다’고 규정한 당헌 제96조 2항에 ‘전 당원 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추가했다. 무공천 약속을 뒤집으려 ‘전 당원 투표’라는 꼼수를 통해 당헌을 고친 것이다.

이 조항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이던 2015년 정치 개혁을 명분으로 신설됐다. 기존 조항에서 ‘부정부패 사건’으로 한정됐던 무공천 사유를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확대했고, 권고 규정이던 조항도 의무 규정으로 강화했다. 개혁적이고 깨끗한 이미지를 보여주겠다는 의도였다. 정치 개혁 다짐이 5년 만에 없던 일이 됐는데도 당내에선 반성은커녕 “우리가 후보를 낼 줄 다 알지 않았느냐”는 적반하장식 발언이 나왔다.

민주당 정치혁신위가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를 정지하도록 한 당헌 80조 삭제를 검토 중이다. 대장동 의혹 등으로 기소될 가능성이 높은 이재명 대표에게 80조를 적용할지를 두고 논란이 일자 이 조항을 폐지해 아예 말썽의 소지를 없애겠다는 속셈이다. 개인 비리 혐의를 받는 이 대표 방탄을 위해 당 차원의 개혁 조치를 되돌리는 퇴행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정치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면 당무위 의결을 거쳐 달리 정할 수 있다’고 예외를 둘 수 있게 80조를 개정한 것만으론 불안한 모양이다. 흠결 많은 대표 탓에 애꿎은 ‘반부패 당헌’이 수난을 겪고 있다.

민주당은 2021년 4·7 서울·부산 시장 보선에서 참패했다. 정당의 헌법이자 국민과의 약속인 당헌을 개정했다가 명분도 잃고 민심도 잃었다. ‘20년 집권’을 자신하던 민주당이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것도 이런 행태 탓이 크다. 정치적 손익에 따라 마음대로 당헌을 삭제한다면 이 대표가 좀 더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민주당은 부메랑을 맞을 것이다.


원재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