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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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尹·기시다 정상회담, 한·일 협력의 새 시대 첫걸음 뗐다

만찬도 별도 갖고 84분 대화 나눠
양국 기업인 ‘파트너십 기금’ 합의
日 과거사 사과 없어 아쉬움 남겨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도쿄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84분간 정상회담을 갖고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윤 대통령은 “올해는 김대중·오부치 선언 25주년이 되는 해”라며 “(정상회담이) 공동선언의 정신을 계승해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한·일 간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첫걸음이 됐다”고 했다. 기시다 총리도 “이번 회담을 계기로 이제 일본과 한국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소통하게 됐다”고 화답했다.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박근혜정부에서 맺은 위안부 합의를 파기한 이후 최악으로 치달았던 한·일 관계가 회복되는 모양새다.

회담은 양국 공조가 절실한 사안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이뤄진 만큼 내용 면에서 큰 진전을 이뤘다. 무엇보다 북핵 고도화와 미·중의 첨예한 전략 경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맞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원의 한·일 경제안보대화를 출범시키기로 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조기 정상 가동하고, 일본의 반도체 부품 수출 규제 해제와 함께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취하하기로 합의한 것도 결코 의미가 작지 않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에 대한 명시적 사과가 빠진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 정부는 역사 인식에 대해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고 했을 뿐 사과나 사죄는 하지 않았다. 강제동원 제3자 대위 변제에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등 전범 기업들이 참여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한·일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가 ‘한일·일한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각각 창설키로 합의한 것은 위안거리다. 양국이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미래 과제와 양국 젊은 인재의 교류 증진을 위해 쓰일 기금 조성에 일본 기업 상당수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수혜를 입은 한국 기업 16곳이 참여한다고 한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 갈길이 멀다. 일본의 태도가 좀 더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민의 감정도 누그러질 것이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피해자가 만족할 때까지 하는 게 옳다. 미래를 열기 위한 길은 닦였다. 일본이 한국 정부에 ‘위안부 합의 이행’ 조치를 요구한 만큼 일본 역시 과거사에 대해 진정성 있는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