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스페인의 연금개혁은 연금수급 시작 은퇴 연령이나 보험료율 인상 및 납부 기간 측면에서 국민연금 개혁에 착수한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55년 고갈될 것으로 보이는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더 내고 덜 받는’ 모수개혁 이외에 연금 납부 기간, 은퇴 연령, 기초노령연금 등과의 통합 등 ‘구조개혁’의 핵심 쟁점을 담고 있어서다.
17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는 애초 1월 말로 예정돼 있던 연금개혁 관련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연금특위 여야 간사가 현행 9%인 보험료율과 30%대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등 국민연금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모수개혁 이외에 고령층 소득보장과 관련한 기초연금과의 통폐합이나 공무원연금 등 다른 직역연금과의 형평성 조정에 관한 구조개혁까지 논의해야 한다고 합의해서다.
국회가 갑자기 모수개혁 대신 구조개혁을 화두로 꺼내면서 일각에서는 정치권이 내년 4월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연금개혁에서 발을 빼려 한다는 관측이 나왔다.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성을 위해선 보험료율을 지금보다 높이고 소득대체율은 더 낮추는 ‘더 내고 덜 받는’ 방안이 불가피한데 굳이 자기들이 득표에 도움이 안 되는 모수개혁의 총대를 멜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국의 연금개혁은 세대·계층·분야 간 이해관계가 첨예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김병덕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월 ‘금융브리프’에 게재한 ‘연금개혁의 방향 및 고려사항’에서 △연금 재정의 안정성 제고 △급여의 적정성 확보 △수급의 사각지대 해소 등이 연금개혁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연금개혁의 골든타임을 이미 실기한 측면이 있다”며 “연금개혁은 빠를수록 좋지만 그렇다고 졸속으로 진행되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공적연금 재구조화 방안 연구’ 보고서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보사연 보고서는 유럽의 연금개혁이 △1970년대 중반∼1980년대 후반(독일 등 부과방식 공적연금 개혁에 국한) △1990년대 초반∼2008년 금융위기 이전(스웨덴, 이탈리아 등이 모수개혁과 구조개혁 동시 진행) △금융위기 이후부터 현재(프랑스는 연금 납부 기간 연장 및 보험료율 인상) 등 단계별로 진행됐다고 소개했다.
보고서는 “국내에선 (노무현정부 당시) 2차 연금개혁 이후 대부분 모수개혁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모수개혁의 한계를 지적하며 구조개혁 방안을 제시하는 연구들이 늘었다”고 전했다. 이어 “어떠한 합의기구와 방법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나갈 것인지, 재정 안정성, 급여 적정성, 대상 포괄성 등 연금개혁 목표 중 어느 것에 초점을 두고 개혁을 진행할 것인지 등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