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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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유행을 따라하지 말라”…홍여‘신의 한수’ [귀농귀촌애(愛)]

<5>전남 강진 ‘도두맘’ 홍여신 대표>
유행따라 재배했다가 2년만에 귀농자금 바닥
서울 토박이 부부, 부인 아토피로 정상적인 생활 못해
우연히 들른 탐진강 물안개에 꽂혀 인근 마을 빈집 덜컹 매입
귀농 2년간 유행따라 그라비올라·마키 밸리 작물 재배 낭패
귀농자금 바닥날 쯤 작두콩 ‘신의 한수’로 기사 회생
강진 특산물 장어 먹인 액비와 친환경농법 작두콩 재배
“귀농인은 누구나 먹고 재배 용이하고 저장기간 긴 작물 골라야”
6차 가공산업 치중···“강진 랜드마크 만들겠다”

농업회사 ‘도두맘’ 홍여신 대표, 그는 사진작가다. 2014년 5월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날 홍 대표는 남편과 함께 카메라를 메고 작품사진을 찍기위해 전남 영암 월출산에 가는 길이었다. 탐진강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남 강진군 군동면 석교 마을 앞에서 가던 길을 멈췄다. 강에서 하얗게 피어오르는 물안개 장관을 놓칠 수 없어서다. 그는 순간 “여기에 그림같은 찻집을 차리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월출산의 절벽에서 철쭉꽃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이 그해 한국관광공사 주관 대한민국사진공모전에서 금상을 받았다.

 

서울에 올라온 홍 대표는 ‘그 곳’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석교 마을 이장에게 “집이나 땅이 매물로 나오면 연락을 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후 연락이 왔다. 빈 집이 나왔으니 계약을 하라는 것이었다. 홍 대표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곧바로 계약금을 입금하고 집을 샀다.

 

3월 10일 농장에서 만난 홍 대표는 당시 집과 땅을 샀지만 귀농의 길은 그리 쉽지않았다고 회상했다. 남편을 설득하고 잘 나가는 회사를 그만두는 게 못내 아쉬웠다고 했다. 2014년 가을, 홍 대표는 남편에게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여행 목적지는 석교마을이었다. 그는 계약한 집에 도착해 남편에게 열쇠를 건넸다. 남편은 깜짝 놀랐다. 홍 대표는 왜 귀농해야 되는지 이유를 설명했다. 홍 대표는 15년 전 에 이사간 새 아파트에 살면서 아토피가 생겼다. 아토피는 그의 생활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하루 종일 온 몸을 긁었어요” 홍 대표는 한 여름에도 긴 팔을 입었다. 사람을 만날 때도 아토피로 흉칙해진 손을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 아토피에는 백약이 무효였다. 오히려 약에 중독되고 내성만 키워 증상이 더 악화됐다.  

 

홍 대표는 결국 남편과 함께 아토피 치료를 위해 귀농을 선택했다. 6개월간 귀농 준비를 했다. 2015년 8월 서울 토박이인 홍 대표 부부는 귀농생활을 시작했다. 홍 대표는 1년 전에 찍어뒀던 그 자리에서 귀농의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삽질 한번 해보지 않았던 홍 대표 부부의 귀농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모든 게 처음해보는 일로 낯설고 서툴었다.

 

귀농 첫해 가을에 홍 대표는 마을 사람들을 따라 양파를 심었다. 1089㎡(330평) 밭에 양파를 심는데 꼬박 석달이 걸렸다. 마을 사람들이라면 보름이면 끝낼 일이었다. 다음해 홍 대표는 3960㎡(1200평) 정도의 밭을 더 구입하고 집을 지었다. 홍 대표는 텃세를 부리지 않는 동네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어르신들의 눈에 든 홍 대표는 마을 일을 도맡아 하는 부녀회장이 됐다. 마을 사람들은 젊은 홍대표 부부에게 농사를 지으라며 밭 농사도 맡겼다. 임차한 밭만 3만3000㎡(만평)이 넘었다. 홍 대표는 1만1550㎡(3500평)에 양파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양파값이 폭락하면서 홍 대표는 큰 손해를 봤다. “양파 심고 수확하는데 들어간 인건비조차 못 건졌어요” 홍 대표는 농사 실패의 쓴 맛을 봤다.

 

홍 대표는 다음해 작목을 바꿨다. 당시 항암과 아토피 치료에 좋다는 그라비올라가 유행했다. 겁도 없이 7000만원을 들여 그라비올라 6000주를 심었다. 그라비올라는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식물로 온도에 민감하다. 기후 조건을 견디지 못한 그리비올라는 자고나면 고사하기 시작했다. 열매 한번 따보지 못하고 돈만 날렸다. 또 수익률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 마키 밸리를 심었다. 마키 밸리도 칠레 남부 태평양 연안 다우림 지역이 원산지다. 당시 농부들은 이런 재배 조건을 따지지 않고 한집 건너 마키 밸리를 심을 정도로 유행했다. 홍 대표도 5000주를 심는데 7000만원이 들었다.

 

나무는 물만 주면 그냥 자라는 게 아니었다. 역시 열매는 맛도 보지 못하고 실패했다. “묘묙 장사 좋은 일만 시킨 것 같아요” 홍 대표는 때 늦은 후회를 했다. “뭐가 잘된다”는 소문만 듣고 경험과 공부도 없이 뛰어든 게 잘못이었다.

 

하지만 마키 밸리 사이에서 ‘뜻밖의 보물’을 발견했다. 바로 작두콩이다. 마키 밸리 묘목을 살 때 공짜로 얻어온 작두콩을 심었는데, 수확이 괜찮았다. 작두콩은 무엇보다 재배가 쉬웠다. 초보 농사꾼에게는 안성마춤의 작물이었다.

 

홍 대표 부부는 곰곰이 생각했다. 귀농 후 2년간 연속된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 따져봤다. 귀농자금도 바닥날 지경이었다. 또 다시 실패할 경우 빚더미에 나앉게 될 처지였다.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작물을 선택할 때 다섯가지의 원칙을 정했다. 가장 큰 원칙은 누구나 재배할 정도로 키우기 쉬운 작물인지를 파악했다. 누구나 먹을 수 있는 맛과 보관이 용이한지도 중요했다. 저장 기간도 농부에겐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유행을 타지 않는 작물을 고르는 것이었다. 귀농 실패에서 얻은 값진 교훈이었다.

 

작두콩이 이 5대 원칙에 딱 맞았다. 홍 대표는 농업회사 ‘강진 도깨비 농장’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작두콩 재배에 나섰다. 천연 유기질 발효 퇴비를 직접 만들었다. 강진의 특산물 장어를 원료로 청초와 골분 액비를 제조했다. 큰 통에 약성이 가장 좋은 10월에 구입한 장어와 생선뼈 등 각종 부산물, 미생물을 넣고 6개월에서 1년간 숙성을 한다. 농장에는 크고 작은 액비 숙성 통이 20여개나 있다. “농약이나 다른 비료는 일체 사용하지 않아요. EM(유용미생물)농법으로 만든 액비로만 작두콩을 재배해요” 홍 대표의 말이다.

 

장어 먹고 자란 작두콩은 달랐다. 다른 작두콩과 달리 여린 깍지, 꼬투리 부분이 얇고 튼실했다. 당도가 과일 못지않게 나왔다. 홍 대표가 재배한 작두콩의 브릭스는 12∼13으로 과일과 비슷한 수준인데다 다른 작두콩(7∼8브릭스)보다 2배 가량 높았다. 작두콩의 수확 시기도 앞당겼다. 대개는 무게로 파는 작두콩은 콩이 여물 때까지 기다려 수확한다. 그래야 무게가 더 나가기때문이다. 하지만 콩이 여물게 되면 양분이 깍지에 남지 않는다. 차는 콩이 아닌 깍지를 달여서 마시기때문에 콩으로 양분이 가면 차의 효과는 떨어진다.

 

홍 대표는 처음엔 작두콩을 전남 화순의 가공 공장에 맡겼다. 하지만 ‘제 맛’이 나지않았다. 홍 대표는 어떻게 하면 좋은 작두콩 차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커피처럼 작두콩을 로스팅하면 되지 않을까”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쳤다. 그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다. 작두콩을 볶으면서 온도의 변화에 따른 로스팅 정도를 비교했다. 최적의 맛을 찾기위해서다. 8개월만에 답을 찾았다. 잘 우려나면서 비리지 않고 맛도 일품인 작두콩 차의 비법이 완성된 것이다.

 

장어 먹인 작두콩은 2018년 농림식품부 주관의 식품가공 경진대회에서 우수농가에 선정됐다. 우수 농가에 뽑힌 홍 대표는 중국 현지에서 홍보와 수출 기회를 얻었다. 이를 계기로 작두콩 차는 세계적인 온라인 판매 플랫폼인 중국 알리바바와 미국 아마존까지 진출했다. 작두콩 차는 국내를 넘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홍 대표는 작두콩의 유통과 가공산업에 목표를 두고 있다. 한 해 수확량은 25∼30t으로 매출은 2억원가량이다. 6차 가공산업에 초점을 둔 홍 대표는 작두콩의 직접 재배를 줄이고 있다. 대신 마을의 귀농한 농부와 청년농부 등 다섯 농가와 계약을 맺고 작두콩 재배를 위탁했다. “시간이 없어요. 가공식품에 매달리다 보면 직접 재배하는 면적을 줄여야죠” 홍 대표는 위탁농가에게 자신의 유기농 재배법을 그대로 전수하고 있다. 이 때 회사 이름도 ‘도두맘’으로 바꿔다. 연간 매출 목표도 10억∼20억원으로 잡았다.

 

홍 대표는 귀농 2년만에 아토피 약을 끊었다. 이제 아토피 흉터만 남아있다. 홍 대표는 “자연과 살고 작두콩의 면역 효과를 본 것 같다”고 했다.

 

홍 대표 부부는 공부하는 귀농인이다. 홍 대표는 강진에서 국가고시인 유기농기능사를 가장 먼저 취득한 1호 부부다. 지난해 한국방송통신대학 농학과에 입학했다. 또 매주 강진 귀농사관학교에서 유기농법에 대한 토론식 수업을 하고 있다.   

 

홍 대표의 목표는 자신의 농장을 강진의 랜드마크로 만드는 것이다. 1∼2년안에 작두콩의 가공 산업화와 이를 통한 관광 산업의 기반을 다지는 게 홍 대표 부부의 바람이다. “작물을 선택할때 절대 유행을 따라하지 말라” 홍 대표가 예비귀농인에게 들려주는 조언이다.

 


강진=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