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총선에 적용할 선거제 개편 논의가 시작도 전에 삐걱거리고 있다. 여야가 국회 전원위원회 개최를 위해 의결한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에 관한 결의안’을 국민의힘이 사흘 만에 뒤엎으면서다. 국민의힘은 결의안에서 ‘의원정수 50명 확대안’을 빼지 않으면 전원위에 불참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정치권이 충분한 검토와 당내 공론화 없이 선거제 개편을 졸속으로 논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20일 “국민들은 의원정수를 늘리는 것에 대해 반대가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우리 당은 애초부터 의원정수 늘리는 것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며 “우리 당 의원들의 의견이 반영된 안을 중심으로 논의될 수 있도록 (결의안을 수정)해야 전원위가 열릴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전원위 개최 여부를 다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앞서 정개특위 정치관계법개선소위는 지난 17일 전원위에 올릴 선거제 개편안을 세 가지로 압축해 결의안 형식으로 의결했다. △소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로 이 가운데 첫 번째, 두 번째가 의원정수를 총 350명(지역 253명+비례 97명)으로 증원하는 안이다. 비례의석을 50석 늘려 정당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간 비례성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그러자 여권 내에서 당론과 민심에 반하는 개편안이라며 철회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즉각 나왔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18일 페이스북에서 “어떤 경우라도 국회의원 증원은 결단코 반대해야 한다”며 “그럴 리 없지만, 여당에서 만약 그런 합의를 한다면 지도부 퇴진 운동도 불사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최다선(5선)인 조경태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오히려 비례대표 폐지와 선거구 개편을 통해 국회의원 수를 최소 100명 이상 줄여야 한다”고 했다.
여론이 악화하자 여당 지도부도 일제히 반대의 뜻을 밝혔다. 김기현 대표는 이날 최고위 회의에서 “(선거제 개편의) 근본 취지는 민주당이 앞장서서 비틀어놓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국적불명, 정체불명 제도를 정상 제도로 바꿔놓자는 데 있다”며 “의원 숫자 늘어나는 안은 아예 안건으로 상정할 가치조차 없다”고 말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저는 지금 현재 300명으로 규정된 국회의원 정수조차 헌법위반이라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여당이 전원위 불참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여야는 정개특위 전체회의가 예정된 오는 22일 전까지 결의안 수정안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국민의힘은 결의안에서 의원정수 확대 내용을 빼고 1안과 2안을 하나의 안으로 합치자고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도 의원정수 확대에 소극적인 입장인 만큼 수정안 마련에 접점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우리도 당연히 의원정수 늘리는 데 대해 대단히 신중해야 할 문제이고 국민 또한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여야가 충분한 숙의와 당내 소통 없이 선거제 개편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개특위 소속의 한 여당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지난 17일 의총에서 여야의 안이 아닌 제3의 국회의장 자문위 안으로 결의안을 만들자고 양해가 됐었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의원정수 확대에 반대한다면) 국민의힘이 의총에서 애초에 그 안을 올리지 말자고 결의를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치르느라, 우리 당은 여러 현안 때문에 선거제 개편안에 대한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했다”며 “김 의장이 내놓은 전원위 일정을 어떻게든 맞추려다 보니 정개특위가 실제 각 당 지도부 생각과 어긋나는 안을 올리게 된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