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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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일하며 세금내는데… 외국인 차별 힘들어”

21일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이주 14년차 중국인 궈룽씨 일침
“주민센터선 혼자 서류 발급도 못해
검정고시 합격해 더 잘지내고 싶어”

“한국에서 일하며 세금도 내는데, 주민센터에서 혼자 서류 하나 발급받지 못하는 게 기분이 안 좋았죠.”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3월21일)을 맞아 지난 18일 이주 14년 차 중국인으로서 검정고시를 준비 중인 궈룽(郭榮·33)씨의 이야기를 들었다. 2010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중국 칭다오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그는 2016년 영주권자가 됐고, 현재 초등학생인 두 자녀를 키우고 있다. 지난 2월부터는 서울 성동구 샛별학교에 다니며 중졸 학력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에 온 지 14년 된 중국인 궈룽(가운데)씨가 두 딸과 함께 찍은 사진. 궈룽씨 제공

궈룽씨는 그동안의 한국살이에서 좋지 않은 기억으로 주민센터를 떠올렸다. 볼일이 있어 주민센터에 가면 담당 공무원이 남편에게 전화해 “아내가 지금 주민센터에서 서류 발급받으러 왔는데, 이 사실을 알고 있냐”고 확인했다. 궈룽씨는 “평범한 한국인처럼 응대받거나 무인발급기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 속상했다”며 “그 이후로 주민센터 갈 일이 있으면 남편이 대신 가 준다”고 말했다.

궈룽씨에게 한국은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이 잘살기는 쉽지 않은 곳”이다. 특히 한국에서 중국인을 바라보는 눈빛이 최근 양국 사이가 틀어지면서 달라졌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 유행할 때 공공장소에서 중국어로 말하면 눈총 받기 일쑤였고, “황사나 미세먼지가 심해져도 중국인을 미워하는 것 같았다”는 설명이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참관 수업을 가면 “학부모들과 인사만 겨우 나누고 도망치듯 나왔다”고 한다. 자신이 한국어 대화를 못 알아들으면 아이 흉이라도 볼까 걱정이 돼서다.

검정고시 도전을 결정한 것도 그래서다. 궈룽씨는 “국적 때문에 아이들에게 창피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며 “두 딸에게 한국에서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다문화센터의 안내를 받고 용기 내 샛별학교에 등록한 그는 평일 오후 7시부터 9시, 퇴근 후 2시간씩 국어·영어·수학·사회를 공부하고 있다. 궈룽씨는 “외국인이 저 혼자라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까 걱정이 많다”면서도 “합격해서 한국에서 더 잘 지내고 싶고, 아이들과 남편도 응원해 주니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