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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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 제자 정찬주 작가, 소설 ‘아소까대왕’ 펴내

‘피의 군주’에서 ‘이상적 군주’로. 

 

인도에 대제국을 건설하고 불교 확산에 공헌한 아소카왕(기원전 304~232년)의 일대기를 담은 장편소설 ‘아소까대왕’(1∼3권, 불광출판사)이 나왔다. 법정스님의 재가 제자로 불교 관련 소설과 산문집을 여럿 출간한 정찬주(70) 작가가 ‘작가로서 반드시 써내고야 말겠다’고 다짐한 필생의 역작이다. 

 

마케도니아 알렉산더대왕, 몽골제국 칭기즈칸과 더불어 인류역사상 위대한 왕으로 꼽히는 아소까대왕은 인도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융성케 하고, 외교 사신단을 통해 전 세계로 불교를 전파했다. 불교에선 그를 이상적 군주상인 전륜성왕의 현신이라고 부른다.

정찬주 작가. 불광출판사 제공

소설은 기원전 4∼2세기 고대 인도를 지배한 최초의 통일 왕조인 마우리아 왕조의 제3대 지배자로 잔혹한 피의 군주로 불렸던 아소카왕이 통치 수단을 ‘담마(Dhamma, 부처의 가르침·법)’로 바꿔 성군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역사적 사실에 정찬주 작가의 상상력이 버무려져 드라마틱하게 전개된다. 

 

아소카는 이복형제 왕자 99명과 반대파 신하 수백명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했다. 이후 지금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 제국 일부 등을 정복했다. 특히, 보병 60만명과 기병 10만명, 코끼리부대를 이끌고 인도 남동부 칼링가국을 정복함으로써 왕조의 시조인 찬드라굽타 시절부터 이어진 제국 건설의 꿈을 이뤘다.

 

하지만 자긍심보다 수십만 구 시체와 전장을 붉게 뒤덮은 피를 보며 회의감에 젖은 그는 부처의 정신에 깨달음을 얻은 후 칼을 앞세운 무력 통치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는 담마 통치로 전환한다. 소설에서 아소카왕은 대왕으로서 위엄을 지키기 위해 킬링가국 왕의 목을 벤 뒤 칼을 강물에 던지며 “나는 오늘 이후부터 칼 대신 담마로 세계를 정복할 것이니라. 담마는 우리 모두에게 기쁨을 주기 때문”이라고 선언한다.

 

정 작가는 20일 서울 종로구 한 음식점에서 열린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지금은 생명이 경시되고 평화와 반대되는 길로 가고 있다. 개인이나 국가의 이기주의로 공존을 파괴하는 시대”라고 진단한 뒤 “아소카의 통치 철학이 21세기 사상의 대안도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소카왕이) 북소리의 정복자가 아니라 담마의 정복자가 되겠다”는 발언을 한 기록이 있다며 ‘북소리의 정복자’는 칼(무력)을 상징하고, ‘담마의 정복자’는 부처의 정법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해 칼을 버리는 장면을 창작했다고 설명했다. 

1995년 2월 후배와 함께한 한 달간의 배낭여행이 정 작가와 인도의 첫 만남이었다. 작품을 구상한 이후 아소카왕의 발자취와 부처가 남긴 가르침을 작품에 투영하려고 15차례에 걸쳐 모두 250여 일간 인도에 머물렀다고 한다. 아소카왕을 중심에 둔 소설이지만 당대 인도의 종교·문화·생활 등 흥미로운 이야기도 많이 담긴 이유이다.

 

그는 “아소까대왕에 대한 장편 소설은 작가로서의 숙원이었다. 내 뇌리에서 떠나본 적이 없었다”며 “작가로서 나이가 70이 넘어가면서 아소까대왕을 쓰지 않으면 영원히 못쓰겠다는 조급함도 있었다”고 집필 동기를 소개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아소카’ 표기 대신 ‘아소까’라고 쓴 이유에 대해선 “‘아소카’는 영문식 표기를 전환한 것으로 보이고, 당시 민중은 ‘아소까’로 발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설에서 찬드라굽타를 ‘짠드라굽따’로, 칼링가를 ‘깔링가’ 등으로 적은 것도 마찬가지다.  

정 작가는 “아소까대왕은 기원전 당시에 벌써 평화의 가치를 알고 생명 존중이 무엇인지 아는 왕이었다”며 “국가 이기주의가 난무하는 21세기에 지도자들한테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지도자”라고 강조했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