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 조정과 지난해 아파트값 하락세가 맞물려 올해 전국 17개 시·도의 공시가격이 일제히 하락했다. 특히 단기간에 공시가격이 급등했던 세종과 인천, 경기 등의 낙폭이 컸다.
정부가 22일 발표한 ‘2023년도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5곳에서 전년 대비 20% 넘게 공시가격이 하락했다. 2020년과 2021년 큰 폭으로 공시가격이 올랐던 세종은 지난해 4.57%, 올해 30.68%씩 2년 연속 하락했다. 지난해 29.32% 올라 상승률 1위였던 인천은 올해 -24.04%로 곤두박질 쳤고, 경기(-22.25%), 대구(-22.06%), 대전(-21.54%)도 20% 넘게 떨어졌다. 공시가격 상승 지역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서울은 17.30% 하락한 가운데 자치구별로는 송파구가 -23.20%로 가장 큰 하락률을 보였다. 노원구(-23.11%), 동대문구(-21.98%), 강동구(-21.95%) 등이 뒤를 이었다.
가격대 구간별로 따져보면, 9억원 이상∼15억원 미만 공동주택의 공시가격이 가장 크게 떨어졌다. 9억∼15억원 구간은 22.99%, 9억원 미만은 18.51%씩 내렸고, 15억원 이상 고가 공동주택은 15.24% 내려 하락 폭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2016년(5.97%)부터 2020년(5.98%)까지 5% 안팎의 변동률을 유지했던 공시가격은 최근 3년간 롤러코스터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전 정부에서 추진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에 따라 2021년과 지난해 각각 평균 19.5%, 17.20%씩 급등했다가 올해는 평균 18.61% 급락했다.
공시가격은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건강보험료, 기초연금 산정 등 67개 행정제도의 기준이 된다. 공시가격이 역대 최대 폭으로 하락하면서 보유세 부담도 대폭 완화된다. 정부는 부동산 보유세 부담을 2020년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이행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1가구 1주택 종부세 대상이 되는 주택도 지난해 45만6000가구에서 올해는 절반 수준인 23만1000가구로 줄어든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이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지난해 수준(종합부동산세 60%, 재산세 45%)으로 적용해 시뮬레이션한 결과, 서울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84.97㎡)를 소유한 1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은 772만원으로, 지난해(1372만원) 대비 43.8%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초구 반포자이(84㎡)의 경우는 지난해 1386만원에서 올해 882만5000원으로 36.3% 줄어들고,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82.61㎡)는 1050만원에서 439만원으로 58.2%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보유세 부담이 대폭 완화되면 주택 매매를 가로막던 심리적 문턱이 사라지는 효과는 있지만, 집값 상승이나 거래량 회복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일부 아파트에서 나타난 공시가격 역전 문제가 줄면서 공시가격에 대한 수요자 수용성이 나아지고 이의 신청도 다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주택 거래량이 회복되는 효과는 제한적이고, 대신 급하게 처분하지 않고 관망하려는 매도 움직임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전문위원도 “강남 등 고가 주택 밀집 지역에서는 부부 공동명의를 통한 ‘똘똘한 한 채 흐름’이 유지될 수 있으나 비강남지역 2주택 보유자가 종합부동산세 부담 때문에 주택 수를 줄이는 현상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