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계단을 오르고 있다. 얼마나 올랐을까. 몸이 기울어지더니 계단 옆으로 추락한다. 다행히 바닥은 트램펄린. 남자는 트램펄린 반동을 이용해 계단 위로 사뿐히 튕겨 오른다. 그렇게 다시 정상을 향해 오르던 남자는 또 중심을 잃은 듯 추락하고 튕겨 오르고, 추락하고 튕겨 오르고…. 그 과정에서 그는 더 낮은 칸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한 번에 돌아오지 못하고 계단에 닿으려 안간힘 쓰기도 한다. 그렇게 수차례 되풀이한 끝에 남자가 정상에 서자 숨죽여 지켜보던 관객이 박수를 보낸다.
SNS에 공유되며 화제를 모은 이 영상은 프랑스 안무가 요안 부르주아의 행위예술.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성공은 선형이 아니다(Success Isn’t Linear).’ 이 공연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다. ‘성공을 위한 도약’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었고, 실패를 털고 일어나는 ‘회복탄력성’을 언급하는 이가 있었으며, 트램펄린이 사회안전망이라고 언급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게도 공연의 감흥은 컸는데, 남자의 몸짓이 ‘인생 그 자체’로 다가왔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변화무쌍한 인생으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브렌던 프레이저를 보며 이 공연을 떠올렸다. 한때 할리우드 꽃미남으로 불렸던 사나이. 그러나 영화 ‘미이라’ 시리즈 후 부상과 이혼, 성추행 피해 등을 겪으며 오랜 침체기에 빠진 배우. 근육질이었던 스타가 후덕한 외모로 돌아왔을 때 대중은 그의 사진을 밈(meme)으로 소비하며 놀려먹기도 했다. 퇴물로 전락했단 조롱을 들어야 했던 프레이저는 그러나 272㎏ 초고도비만으로 소파에 파묻혀 살아가는 남자를 연기한 ‘더 웨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프레이저의 새로운 경력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양자경 역시 성공은 선형이 아님을 보여준 사례다. 부상으로 무용을 그만두고 연예계에 들어선 양자경은 영화 ‘예스마담’(1986)을 통해 액션 스타 왕좌에 올랐다. 어린 시절 무용으로 몸을 단련한 덕이었으니, 좌절을 기회로 바꾼 셈. 전성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결혼과 이혼으로 이어진 공백기 동안 그녀는 잊혔고, 복귀했을 땐 홍콩영화 화양연화가 끝나가고 있었다.
양자경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할리우드라는 계단 앞에 섰다. 첫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007 네버 다이’(1997)에서 본드걸로 발탁된 양자경은 기존 본드걸이 지니고 있던 유약한 이미지를 격파하며 호평받았다. 그러나 이후 그녀가 제안받은 캐릭터 대부분은 아시안 스테레오타입에 묶인 수동적인 인물들이었다. 긴 시간 편견에 맞서 온 그녀는 동양계 이민자 여성이 세상을 구하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여성 여러분, 당신의 전성기가 지났다는 말을 믿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오스카 트로피만큼이나 양자경의 저 말이 빛났던 건, 편견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에게 같은 한계를 견뎌 온 이가 전하는 진심의 응원이어서일 것이다. 삶을 클리셰로 만드는 건 어쩌면 숱한 선입견들이다.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이브 케이크’라든가 ‘서른 이상은 상폐녀’라고 말하는 선입견이 위험한 건, 그것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가두고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에게 양자경이 알려준 건 완전무결한 연기를 해내는 것만이 재능이 아니라, 편견에 매몰되지 않는 것도 재능이라는 것이었다.
낮은 바닥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걸음을 내디디고 있는 프레이저와 차별의 벽을 넘어 다시 전성기를 맞은 양자경의 행보를 보며 당장의 실패 앞에서 불안을 느끼던 이들은 위안을 얻는다. 우상향을 그리며 나아가는 게 인생의 정답이 아님을 깨닫는다. “60살이 돼도 인생을 몰라요.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 67살이 처음이야.” 2013년 ‘꽃보다 누나’에서 윤여정이 한 말이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8년 뒤 윤여정은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활동 무대를 넓혔다. 인생은 선형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