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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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이 3년 전 거른 임성진,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2020년 10월 6일로 예정되어있던 2020~2021 신인 드래프트를 하루 앞둔 10월 5일, 현대캐피탈과 KB손해보험은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현대캐피탈이 전역을 앞두고 있던 미들 블로커 김재휘(現 우리카드)를 내주고, KB손해보험의 2020~2021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양도 받는 트레이드였다.

 

현대캐피탈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이튿날 열린 신인 드래프트 순서 추첨 결과 전 시즌 최하위로 35%의 확률을 갖고 있던 한국전력 대신 30%의 확률이었던 KB손해보험의 구슬이 먼저 나온 것. 이는 곧 현대캐피탈이 1순위를 행사하게 됐음을 의미했다.

 

2순위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1순위를 뽑게 된 최태웅 감독은 ‘타임’을 불렀다. 고민 끝에 최 감독은 당시 드래프트에서 최대어로 손꼽히던 임성진 대신 김선호를 뽑았다. 2순위 지명권을 가진 한국전력은 최대어로 평가 받았던 임성진을 품에 안았다.

 

임성진과 김선호의 포지션은 둘 다 아웃사이드 히터지만, 신장이 크게 차이가 난다. 임성진은 195cm, 김선호는 187cm. 그럼에도 최 감독이 김선호를 택한 이유는 리시브와 수비적인 능력을 고려한 것이었다. 당시 최 감독은 “임성진과 김선호 중 선택하기 쉽지 않았다. 고민을 많이 했던 선수 중 한 명이었고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우리 팀에 가장 적합한 선수를 찾자고 해서 기본 밑바탕이 좋은 김선호를 선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입단 첫 해부터 김선호는 군입대로 자리를 비운 전광인을 대신해 많은 기회를 부여받으며 주전 출전 빈도가 높았다. 28경기 출전해 185득점, 리시브 효율 35.60%를 기록한 김선호는 2020~2021시즌 신인왕에 올랐다. 반면 임성진은 주로 교체로 출장하며 67득점에 그쳤고, 리시브 효율도 28.64%에 그쳤다. 그렇게 입단 첫 해엔 현대캐피탈의 결정이 옳아보였다.

 

◆ 3년차 들어 엇갈린 김선호-임성진의 팀내 위상

 

김선호와 임성진이 프로 3년차를 맞이한 2022~2023시즌, 두 선수의 위상은 완전이 뒤바뀌었다. 임성진은 팀이 치른 36경기에 모두 출장했고, 28경기에 선발 출장하며 당당히 주전 아웃사이드 히터로 자리잡았다. 시즌 성적표는 306득점, 공격성공률 49.68%. 첫 두 시즌엔 20%에 머물던 리시브 효율도 올 시즌엔 37.01%로 끌어올리며 공수겸장의 아웃사이드 히터로서 성장할 수 있음을 알렸다.

 

반면 김선호는 35경기 출장하긴 했지만, 선발 출장은 단 2경기에 불과했다. 팀의 아웃사이드 히터 자리에 오레올과 전광인이라는 빼어난 선수들이 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주로 오레올과 교체되어 후위 세 자리를 소화하며 리시브를 강화하는 차원의 교체요원으로 뛰게 됐다. 리시브 능력은 여전히 준수했지만, 187cm 신장의 한계로 인해 전위에 세우기엔 공격이나 블로킹이 다소 아쉬웠다.

 

김선호(왼쪽)와 임성진

◆ 3년 전 현대캐피탈이 걸렀던 임성진,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3년 전 신인 드래프트에서 현대캐피탈이 임성진을 거르고 김선호를 선택한 것은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분위기다.

 

임성진은 지난 24일 열린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한국전력이 비록 2-3으로 패하긴 했지만, 팀내 최다인 22득점을 몰아쳤다. 공격 성공률도 54.5%로 시즌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 공격 점유율도 아포짓에서 뛰는 서재덕(21.4%)보다 더 높은 25.2%. 한국전력의 당당한 토종주포로 활약한 셈이다.

 

최태웅 감독 역시 임성진의 성장세를 인정했다. 그는 26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2차전을 앞두고 “임성진 선수가 성장을 많이 했다. 인정한다. 어리지만 과감하게 하면서도 안정감도 있더라. 전성기로 달려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감독의 말대로 임성진은 이제 잠재력을 만개하는 모양새다. 26일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도 임성진의 공격력은 식을 줄 몰랐다. 타이스(24점, 공격성공률 50%)와 함께 ‘쌍포’를 이룬 임성진은 팀 내에서 가장 많은 30개의 리시브를 받아야 했다. 현대캐피탈 서버들의 목적타 타깃이 되어 리시브 효율은 20%까지 떨어졌다. 아웃사이드 히터들은 리시브 폭탄에 시달리면 공격감까지 흔들리곤 하지만, 임성진의 멘탈은 흔들리지 않았다. 공격 성공률은 1차전보다 더 높은 57.58%로 더 높아졌고, 블로킹 3개와 서브득점 1개를 포함해 23점을 올렸다.

 

임성진의 활약 속에 한국전력은 현대캐피탈을 세트스코어 3-2로 잡아냈다. 2005년 출범한 V-리그에서 한국전력이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6연패 끝에 거둔 첫 승이라 그 감격은 더욱 컸다.

 

◆ ‘수원의 왕’으로 성장하고 있는 임성진

 

잘 생긴 외모로 프로 데뷔 이전에도 SNS 팔로워가 30만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임성진은 이제 ‘수원의 왕’으로 성장하고 있다. 1세트 공격 성공 이후 이날 수원체육관을 가득 메운 홈팬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세리머니도 선보였다. 한국전력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임성진의 세리머니에 수원체육관은 떠나갈 듯 함성으로 가득 찼다.

 

경기 뒤 한국전력의 권영민 감독 역시 임성진의 존재감을 인정했다. 그는 “(임)성진이는 이제 에이스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리시브나 서브, 공격 등 모든 면에서 성장했다”면서 “부끄러움도 많이 타고 하더니 팬들의 호응을 유도하는 세리머니도 하는 것을 보니 진정한 에이스가 되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 감독은 현역 시절 박철우(한국전력), 문성민(현대캐피탈) 등 V-리그를 대표하는 토종에이스들과 함께 뛴 적이 있다. 그들과 비교하면 어떤가 묻자 “(박)철우나 (문)성민이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했다. 아직 성진이가 그 정도는 아니지만, 70% 정도는 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수훈 선수로 인터뷰실에 들어선 임성진에게 2경기 10세트를 소화한 여파가 없냐고 묻자 “형들은 힘들텐데, 저는 젊은 피다 보니까 괜찮다. 남은 경기에서 형들을 도와야 할 것 같다”며 젊은 체력을 과시했다. 이어 “기술적으로 달라진 건 없고, 마음가짐을 다르게 먹었다. 후회없이 ‘모 아니면 도’라는 마음으로 과감하게 하다보니 잘 통하는 것 같다”고 맹활약 비결을 설명했다.

 

평소 소심한 성격이라고 밝힌 임성진은 이날 보여준 세리머니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그는 “자신감이 아직 100%라고는 말 못 하겠다. 100만점에 50점 정도다. 소심함을 티내지 않으려고 한다. 세리머니는 그런 제스쳐 하나가 팀 분위기도 바꾸고, 관중분들도 좋아해주시니까 하게 되는 것 같다. 소심한 성격 탓에 쉽지 않지만, 최대한 많이 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본인의 인기가 한국전력 내에서 어떤 것 같냐는 질문도 나왔다. 임성진은 당황하면서 “요즘 보면 (구)교혁이나 (장)지원이가 인기가 많더라. (서)재덕이형은 한국전력의 프랜차이즈 스타 아닌가. 저는 4위 정도라고 생각한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임성진은 도핑 테스트를 받아야하는 선수였다. 경기가 끝나고 1시간이 지난 상황에서도 수원체육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임성진의 수십명 팬들은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전력은 향후 10년은 책임질 수 있는 공수겸장의 아웃사이드 히터를 얻었다.


수원=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