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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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성한 사퇴, 4월 한·미 정상회담 앞두고 외교 공백 없어야

美 방문일정 조율 하자 책임진 듯
尹, 후임 안보실장에 조태용 내정
타당한 해명과 인적쇄신 서둘러야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어제 오후 전격 사퇴했다. 김 실장 교체설에 대해 대통령실이 사실무근이라 해명한 지 반나절 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 실장 사의 표명 1시간여 만에 조태용 주미대사를 신임 안보실장에 내정했다. 윤 대통령이 그제 김 실장과 전·현직 외교비서관 등 외교안보라인 참모들과 예정에 없던 오찬을 하며 한·미 정상회담 준비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격려한 걸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문제는 윤 대통령의 방일 직전 김일범 의전비서관, 그제 이문희 외교비서관, 어제 김 실장까지 사퇴하면서 사실상 외교라인이 초토화됐다는 점이다.

대통령실은 연이은 비서관 교체와 김 실장 사퇴에 대해 문책성이 아니라고 강변했지만 납득하기 힘들다. 다음달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 일정 조율 과정에서 중대한 하자가 있었다는 게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조 바이든 대통령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정상회담 국빈 만찬장에서 블랙핑크·레이디 가가 합동공연을 외교 경로로 최소 다섯 차례 요청했지만 대응이 늦어 한때 무산될 위기에 처했고, 이를 뒤늦게 인지한 윤 대통령의 질책이 사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김 실장이 사퇴 이유로 “저로 인한 논란이 외교와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한 게 오히려 논란을 키우고 있다. 귀책사유가 뭐든 간에 현 정부 외교안보라인이 삐걱대고 있음을 암시한 것과 다름없다. 외교안보라인의 어설픈 행태는 이번만이 아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조문차 들른 영국에서 ‘참배 취소’로 구설에 오르더니 유엔총회에서 추진된 한·일 정상회담은 저자세 외교 논란을 빚었다. 양국이 동시 발표하는 정상회담 관례를 깨고 홍보에 급급하다 사달이 난 적도 있다. 오죽했으면 ‘용산·외교부 마찰설’, ‘내부암투설’ 같은 억측이 나돌겠는가.

작금의 외교안보 상황은 엄중하다. 어제부터 미국이 주도하고 한국 등이 공동주최국으로 참여하는 제2회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다. 4월 한·미 정상회담 이후 5월 하순 7개국(G7) 정상회의 및 한·미·일 정상회담 등 중요한 외교일정이 줄줄이 이어진다. 모두가 윤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강조한 한·미·일 삼각공조의 내실을 다지는 핵심 일정들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과 핵실험 위협이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의 내년 총선 차출설까지 파다하다. 외교안보의 공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신속한 인적쇄신으로 외교안보 라인을 강화하고 사태에 대한 타당한 해명으로 국민 불안을 해소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