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중국 권력의 안정적 지속은 모두 당, 군, 국가의 삼위일체 체제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체제 및 제도, 즉 1954년 국가 제도를 결정하고 1956년 제8차 당 대회가 집권당의 바람직한 모습, 당과 국가의 관계를 확정했던 ‘54/56년 체제’는 60년 이상 계속 돼왔으며 현대 중국의 기본적인 정치 틀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 중국 연구자인 모리 가즈코(毛里和子) 와세다대 명예교수는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책 『현대 중국의 정치와 외교』(한울)에서 현대 중국 정치는 격심한 변동 속에서도 1950년대 형성된 공산당-군(중국인민해방군)-국가(정부 사법기관 등)의 삼위일치 제제가 60년 넘게 굳건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정책 결정은 통상적으론 문서 정치 방식과, 비상시에는 당 대회 등을 비롯해 전권 집중적 결정 방식으로 결정돼 왔지만, 텐안먼 사건 같은 위기 속에선 일부 권력 핵심들이 주도하는 ‘팔로정치’가 작동했다고 분석한다.
현대 중국 외교의 경우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엘리트 수가 증가하고 있고, 점점 계통화 제도화하는 가운데, 타이완과 티베트, 신장 위구르 등을 둘러싸고 ‘국가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을 최대 과제로 설정해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 외교의 방법으로 대외 군사행동 가능성을 검토한다.
모리 교수는 결국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 타이완 등에 작동하는 원심력 문제에서 현대 중국의 내정과 외교가 교착하고 있다며 ‘국가성 문제’가 최대 과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현대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 내정과 외교를 나누지 않고 통째로 분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컨대, 모리의 책은 현대 중국의 정치와 외교를 포괄적이고 유기적으로 검토할 가능성을 열어주는 데다가, 역사적 분석과 구조 제도적 분석을 동시에 이뤄냄으로써 현대 중국과 중국인들을 유기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중국이 1980년대 이후 가파른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국제 질서에서 급부상하면서 현대 중국에 대한 연구와 분석도 급증했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한국을 비롯해 세계에서 현대 중국을 이해하고 대응하기 위한 연구와 분석이 쏟아진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현대 중국 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과 이데올로기, 1972년 중일 국교정상화와 1980년대 냉전 해체 이후 해빙기, 2010년대 이후 중국의 대국화라는 세 번의 환경 변화 속에서 꾸준히 성장 발전해 왔다. 일본의 중국 연구는 근현대사 역사와 경제, 정치 분야에서 세계 선두 수준에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특히 과거 한학 및 동양학 외에 현대 중국에 대한 하나의 학문적 접근법으로서 1980, 90년대부터 가치중립적인 지역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진 점도 큰 주목을 받아왔다. 비판적인 시각 속에서도 최대한 객관성 내지 중립성을 유지하며 연구 분석하는 지역 연구의 대표적인 연구자가 바로 모리 교수이다. 신간 출간을 맞아서 모리 교수를 이메일로 만났다.
−책에선 현대 중국을 당-군-국가 삼위일체 체제로 보면서도, 당군 관계가 향후 아킬레스건이 될 가능성을 지적했는데.
“당-국가-군의 삼위일체 체제의 역사적 경험은 소련(1920년대-80년대)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1991년 소련 체제는 순식간에 붕괴했다. 가장 큰 계기는 군을 당이 통괄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소련군은 국영기업과 결합해 군산복합체를 형성, 당의 지배가 미치지 않는 기관, 거대한 이익 집단이 돼 있었다. 1991년 고르바초프의 개혁 노선에 반대하는 당의 보수파가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군이 전혀 응답하지 않아서 보수파 쿠데타는 불발로 그치고 소련 체제는 순식간에 붕괴해갔다. 소련의 경험을 배우고 있는 중국 지도부는 당이 군을 직접 통괄하는 것에 부심하고 있다. 1997년 3월 채택된 ‘국방법’에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당의 군대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당의 지도하에 있음을 재확인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의 당군 관계 악화나 군의 ‘국가화’는, 소련의 경험을 답습하는 게 아니라, 1930년대 중국 자신이 경험한 것처럼, ‘군의 군벌화’라는 방향으로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책결정 방식이 평상시 문서정치 이외에 긴급 시엔 집단 결정과 팔로정치 2가지가 있다고 했는데, 향후 위기 시에는 어느 방식이 재현될 수 있을까.
“1989년 5, 6월 텐안먼 광장에서 학생들이 모여서 권력에 이의제기를 했을 때, 중국 권력은 존망의 위기라는 강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팔로정치에 의존해 정치 위기를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덩샤오핑이 신뢰할 수 있는 동료와 혁명 제1세대 리더들이 건재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시진핑 시대 중앙 지도부에는 그가 신뢰할 수 있는 리더나 혁명 1세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팔로 정치와 같은 방식으로 위기 대응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외교로서 군사행동 가능성을 거론했는데, 실제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나 과제는 무엇인가. 중국의 ‘국가성 문제’ 향방은.
“중국의 국가 체제 자체를 위기로 내몰 수 있는 ‘국가성 문제’―티베트, 신강 위구르, 홍콩, 대만의 4개 문제는, 모두 중앙이 ‘외교로서 군사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높은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말로 하면, 4개의 문제는 모두 군사와 정치가 교차하는 매우 복잡한 과정을 따르게 될 것이다. 때론 강경한 외교 수단으로, 때론 노골적인 무력 수단으로 힘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이웃인 일본으로선 힘의 행사가 아닌 대화와 협의로 문제를 해결해 주면 좋겠다.”
−마오쩌둥 시대는 전체주의적이고 긴급 체제이고, 덩샤오핑 시대는 권위주의 체제였다고 분석했는데, 시진핑 체제는 어떻게 보야 하는가.
“마오쩌둥의 지배는 개인 전제였다. 덩샤오핑은 권위 있는 권력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정치국, 서기처, 군사위원회에 집중한 10명의 서브 리더들과 덩샤오핑 자신이 협의하는 의사와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부드러운 권위주의 체제였다. 시진핑 체제는 매우 강한 권위주의 체제다. 큰 위기에 빠지면 마오쩌둥 시대의 개인 전제 체제로 돌아가고 싶어할 지 모르지만, 지금의 중국은 그런 조건을 갖고 있지 않다. 많은 평론가들이 시진핑 권력은 개인 숭배적인 독재를 지향하고 있고, 언뜻 보면 시진핑 아래 모든 권력이 집중 돼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론 시진핑이 잡고 있는 권력은 매우 취약한 것이 아닐까 저는 생각한다. 관료형, 집단지도형 권력이 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서브 리더들(정치국, 서기국 멤버, 군사위원회 위원 등)이 확고하게 분업하는 체제이고, 특히 공산주의 청년단이나 거대한 지방(예를 들면 ‘충칭’과 같은)처럼 특별한 배경이 없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니까.”
−최근 국제무대에서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중국에 대해, 한국 정부가 취해야 할 정책이나 대응 방향은.
“2000년대 들어서 중국이 대국화해 ‘패권주의적으로 됐다’고 하는 상황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동서고금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상대를 위협으로 간주했을 때부터 상대는 ‘위협이 된다’. 위협론을 자제하고 침착한 분석적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이웃’에 대해서는 한국도 일본도 중국에 대해서 주로 세 가지 점에 유의해 대처하는 게 좋다. 첫째는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 중국의 안보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게 필요하다. 삼국 파워의 완만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둘째는, 삼국 관계도, 한일 관계도, 한중 관계도, 일중 관계도 유감스럽지만 매우 불안정하다. 양국 간, 삼국 간 네트워크를 제도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갑작스런 사태로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제도화함으로써 관계를 안정화시킬 필요가 있다. 셋째, 삼국 관계는 형제 관계인지, 친구 관계인지, 경쟁 상대인지를 규정하기 상당히 어려운 관계이다. 다만, 필수불가결한 게 하나 있다. 서로의 역사·문화·현재에 경의를 가지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존경을 가져야 아시아의 주요 삼국 관계가 안정적으로 될 것이다. 20세기까지는 그런 관계를 만들어낼 수 없었지만, 21세기에는 상호 존경을 바탕으로 온화한 이웃 관계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연구자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검게 그을린 시신, 입을 벌린 채 눈을 뜨고 있는 얼굴, 잘려서 꺾인 왼 발목⋯. 한때 마오쩌둥의 후계자로 꼽히다가 마오쩌둥과 마찰을 빚던 64세의 린뱌오(林彪)의 흉측한 시신 사진이 공개됐다. 1971년 9월13일 새벽, 린뱌오와 그의 부인, 아들 등 가족 3명과 측근 6명이 탑승한 트라이던트(Trident) 256기가 몽골 운도르한 근처에 있는 공항에 착륙하려다가 추락했다고, 중국 정부는 발표했다. 비행기는 산산이 부서졌고 린뱌오를 비롯한 탑승자 9명 전원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일본 국제문제연구소의 모리 가즈코 연구원은 이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다. “중국 연구를 해가는 중 가장 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과거 궁중의 추악한 권력 투쟁이 현대 중국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오차노미즈여대 시절, 소련과 다른 새로운 것을 모색하던 중국과 로맨티스트 마오쩌둥에 매료돼 현대 중국에 관심을 갖게 된 그녀였다. 지금이야 ‘암흑 시대’로 묘사되지만, 당시 젊은이들에게 대약진운동 등의 모습은 ‘탈근대’를 향한 새로운 시도로 비춰졌다. 그래서 졸업 논문과 석사학위 논문을 모두 중국 문제로 다룬 뒤, 1965년부터 일본 국제문제연구소에서 현대 중국을 연구해왔다.
모리는 이때부터 현대 중국에 대한 낭만주의로부터 버리고 현실주의로 선회했다. 의도적으로 미국식 기능주의적 접근법을 사용, 지역 연구와 중국 정치를 분석하려고 시도했다. 현대 중국 연구자 모리 가즈코의 원점이었다.
“중국 연구자로서 출발은 1960년대 초였는데, 당시 마오쩌둥의 중국은 소련에 비판적인 시각으로 자신들만의 사회주의를 막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에 막 들어간 저는, 새로운 것을 찾아 모색하는 중국과 로맨티스트 마오쩌둥에 매료됐죠. 하지만 1966년 시작된 문화대혁명, 특히 1971년 린뱌오 사건을 겪으며 중국에 대한 동경은 비참하게 부서졌어요. 추한 권력투쟁, 억압적이고 횡포한 권력정치만이 눈에 띄었죠. 이후 저의 중국 연구는 미국형 사회과학으로 냉정하게 중국을 분석하는 것으로 바뀌었고요.”
1978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그는 1981년부터 1983년까지 중국 상하이의 일본 총영사관에서 전문 조사관으로 근무했다. 상하이에 보통의 중국, 중국인을 접하면서 그때까지의 딱딱한 중국 연구에서 벗어나서 1980년대 중반 이후 중국 연구 방향을 결정할 수 있었다.
1940년 도쿄에서 태어난 모리 가즈코는 일본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1965-1987)과 중국 상하이 일본 총영사관 전문 조사관(1981-1983) 등을 거쳐서 시즈오카대학와 요코하마시립대학을 거쳐서 1999년부터 와세다대에서 현대 중국을 연구하고 강의해왔다. 2010년 정년퇴직한 뒤 명예교수로 활동 중이다.
그는 『중국과 소련』, 『현대중국정치』, 『현대중국정치를 읽다』, 『중일관계: 전후부터 신세대로』, 『중국 외교 150년사』, 『현대중국외교』 등 많은 책을 펴냈다. 마이니치신문사의 아시아태평양상,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기념상,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상, 후쿠오카아시아문화상 학술연구상, 국제중국학연구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일본현대중국학회 이사장과 새로운일중관계를생각하는연구자회 대표 간사 등을 역임했다.
−본인의 현대 중국 연구의 특징과 강점은 무엇인지. 연구와 학문 원칙과 방법은.
“제 자신의 연구 강점 등을 잘 모른다. 다만, 실증적인 연구를 계속하기, 안이한 예측을 하지 않기, 근거 없는 위협론에서 자유롭기 세 가지 점을 주의한다. 아울러 연구하는데 있어서 끊임없이 확인하는 2가지는 언어와 이론이다. 연구 대상 지역의 언어를 마스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정치학이나 경제학, 인류학 등 사회과학 이론을 하나나 둘을 마스터해 두는 것도 객관적 연구에 필수적이다.”
−중국이 급격하게 대두한 2012년 이후 일본 내 중국 연구 흐름은 어떠한가.
“2012년 센카쿠제도 문제가 큰 이슈가 된 이후 일중 관계는 악화해왔다. 그 배경에는 일본과 중국의 역학 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한 것이 있다. 중국의 GDP가 일본을 넘어서서 세계 2위가 되었다. 이후에도 중국 경제력은 점점 크고 그에 따라 정치적 영향력도 일본을 능가하게 됐다. 중국 외교도 점점 강해졌다. 중국 내에서도 ‘전랑 외교’라고 불릴 정도다. 그런 가운데 일본에선 시민의 대중 감정이 매우 악화했다. 매년 가을에 하는 여론조사에서 80%를 넘는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 친화감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70년대 처음에는 완전히 달랐다. 70년대~80년대에는 오히려 80% 이상의 사람들이 중국에 친화감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과 중국의 불화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일본 여론은 중국을 친한 이웃이 아니라 어려운 상대, 경쟁 상대, 큰 위협으로 인식하게 됐다. 당연히 중국 연구 상황에도 변화가 생겼다. 중국을 ‘위협’으로 자리매김하고 그 위협을 조사하고 분석하는 연구가 주류가 됐다. 매우 우려할만한 상황이다. 연구자도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다.”
오랫동안 현대 중국을 연구해온 연구자 모리 가즈코는 규칙적인 식사와 수면, 그리고 독서를 통해서 건강과 일상을 유지한다. 최근에는 나이토 고난(內藤湖南)이나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 등 어렸을 때 읽지 못한 ‘동양학’ 고전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고. 가끔은 숨을 돌리기 위해 미국 켄 폴릿(Ken Follett)과 마이클 코넬리(Michael Connelly)의 미스터리 소설을 펴들기도 한다. 책의 끝자락에는 노학자의 어떤 소망이 적혀 있는데.
“중국이 나아가고 있는 길은 알 수도 없고, 예측할 수도 없다. 통치의 방도는 매우 능란하다. 현재의 집권 체제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는 또한 예측하기 어렵지만, 주변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폭력 없는 레짐 변용의 길을 걷게 되기를 소망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