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신촌 대학가에서 15평 규모 소형 주점을 운영하는 윤모(63)씨는 지난 2월 상가 재계약 의사를 밝혔다. 임대인은 “코로나19가 끝났으니 장사 잘되지 않냐”며 임대료 10% 인상을 요구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제11조1항)상 환산보증금 9억원 미만 상가는 임대료 5% 이내 증액이 원칙이나, 윤씨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3년 동안 손님 한 명 안 오는 날이 허다했는데, 이제 겨우 숨 돌리자 (임대료를) 10% 올리는 건 너무했다”면서도 “여기서 10년은 더 (장사)하고 싶은데 입바른 소리는 못 한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유행 감소세가 지속되자 임대인 임대료 인상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고물가·고금리 경제 불황에 실질적인 상권 회복을 체감하지 못한 임차인들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임대료 증액 상한선(5%)을 초과하는 인상 요구도 빈번해 소상공인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4일 소상공인연합회에 따르면 3월 9∼14일 소상공인(1430명) 대상 금융 실태 조사 결과, 10명 중 6명이 1년 전 대비 대출 잔액이 늘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매출과 수익 동반 하락’이 41%로 가장 많이 꼽혔고, 매출 하락(37%), 비용 상승에 따른 수익 하락(16%) 등의 응답이 뒤따랐다.
임대인들은 코로나19로 올리지 못한 임대료를 이제라도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강남구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손모(62)씨는 “코로나19 때문에 한동안 임대료를 못 올린 임대인도 많다”며 “세금이나 이자도 내야 하니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차인들은 속앓이 중이다. 노원구에서 혼자 미용실을 운영하는 박모(50)씨는 “전쟁이 끝나면 수습하는 기간이 필요하듯 코로나19가 끝난다고 (매출이) 당장 회복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입장 차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일보가 서울시 상가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가임대차분쟁 관련 상담 건수는 1만4045건으로 ‘임대료 조정’이 3068건(22%)으로 가장 많았다.
임대료를 5% 넘게 인상하기 위한 임대인의 ‘꼼수’도 등장했다. 2년 이상 계약 갱신 주기를 1년으로 줄여 매년 5%씩 인상하는 식이다. 5% 상한선이 사실상 하한선이 됐다는 지적이 따른다. 강남구 삼성동에서 프랜차이즈 커피 매장을 운영하는 최모(45)씨는 “건물주가 계약 갱신 주기를 2년에서 1년으로 당겨 임대료를 매년 5%씩 올리고 있다”며 “결국 10%를 올리는 셈인데 한 달에 아메리카노 1000잔을 더 팔아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부동산학과)는 “임대차보호법대로 임대료를 5% 이상 못 올리게 강제하고, 5% 이내 인상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상생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